시사, 상식

과거 청산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道雨 2021. 11. 3. 10:08

과거 청산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오른쪽)씨가, 유족인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을 위로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시대를 막론하고 과거사 청산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는 없다. 특히 불행했던 시기를 겪고, 정의로운 전환의 과정을 거친 사회에서는 모두 과거사 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전근대 역사 속에서도 원나라의 간섭,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오랜 기간 전란을 겪었던 한국의 역사 속에서는 과거 청산의 문제는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나치와 파시즘, 그리고 군국주의에 의해 불의의 세계전쟁을 겪은 이후, 과거사 청산 문제는 모든 국가에서 핵심적인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나치에 협력했던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위한 프랑스의 노력,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 재판’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과거사 청산을 위해, 헌법에 규정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설치되었다.

 

1945년 이후 냉전질서의 출현은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 청산을 어렵게 했다. 또한 냉전 체제하에서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는 오랜 기간 전체주의가 들어섰다.

그리고 전체주의하에서 수많은 인권유린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아르헨티나·칠레·스페인 등과 함께 한국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거사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개발도상국과는 다른 경우이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오랜 인종차별로 인한 인권유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가 취해졌다.

 

그렇다면 이렇게 과거사 청산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과거 불의의 사건들을 제대로 밝힘으로써, 앞으로 더 이상 그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안이 강구되었다.

 

재판을 통해 불의의 전쟁에 협조했던 사실과 인권유린 상황을 밝히고, 이에 대해 처벌하는 것이 대표적인 조치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조사와 재판이 이루어졌지만, 정부에 의해 모든 조치가 물거품이 되었다.

 

과거 청산의 또 다른 방식은 진실을 밝히되 처벌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는 주로 ‘진실’과 ‘화해’라는 이름 하에서 진행되었다. 불의를 행한 인물들이 정의로운 전환 이후에도 특권을 유지하는 구조가 계속되거나, 과거 청산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분열이나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경우,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통해 억울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해주는 방식이다.

 

한국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하다.

우선 일제강점기 과거사의 경우 관련자들이 대부분 사망한 상황이다. 따라서 처벌이 불가능하다.

둘째로 냉전시대의 인권유린과 관련된 과거사가 정치화되면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내재화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은 민주화 이후에도 10여년이 지나서야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통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중심으로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가해자의 반성이다. 피해자의 진실을 밝힌다고 하더라도 가해자가 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면, 과거사는 또 발생할 수 있다.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행위였다고 깨닫지 못한다면, 또는 한국 사회가 가해자의 반성이 필요하지 않다고 인식한다면,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라를 팔아먹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전쟁범죄에 협력하더라도, 반공을 명분으로 인권을 유린하더라도, 그러한 상황은 재차 발생할 수 있다.

 

몇년 전 한 언론 매체에서 소위 ‘친일파’의 후손에 대해 분석한 적이 있다. 해당 언론에 의하면 1177명의 후손을 찾았다고 한다. 그중에서 한국을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는 163명에 달했고, 국적을 포기한 후손은 346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단 3명만이 선조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물론 후손들이 친일을 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살아오면서 친일 후손으로서 그다지 시달린 바도 없고, 정신세계에서 먼 조상의 존재가 차지하는 부분도 많지 않습니다.” “한번도 제대로 그 양반이 왜 그랬을까 생각 안 해봤고….”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광주 학살을 비롯한 과거사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손이 조상의 과거 잘못에 대해 반성했다는 것은, 과거사 청산을 통한 정의로운 미래를 위한 또 다른 발걸음이 될 수 있다. 불행했던 과거가 또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진실과 화해가 필요한 지금, 과거에 대한 사과에 박수를 보낸다.

 

박태균ㅣ서울대 국제대학원장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7677.html?_fr=mt0#csidx9cd03fcb4ee6950829e051090f1b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