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민관협력, 민관유착, 공공성의 증발

道雨 2021. 11. 19. 09:19

민관협력, 민관유착, 공공성의 증발

 

 

 

 

 

 

민관협력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말이지만, 무슨 내용을 어떻게 집어넣느냐에 따라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야말로 양날의 칼을 품고 있다. 산업경제 발전과 혁신성장, 부동산 개발, 도시 개발과 재생, 임대주택이나 사회주택 등 제반 사업에서, 협력을 통해 민과 관의 장점이 보완재가 되어 시너지가 나올 수도 있다. 이건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못지않게 나쁜 소식도 있다. 민관협력에는 모두를 위한 공공성(공공복리)은 껍데기만 남고, 민과 관이 서로 이익을 사유화하는 결탁이, 공권력과 재벌, 공권력과 투기세력 간의 끈끈한 유착이 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어두운 민관유착 내지 결탁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적폐이자 기묘한 흑역사를 기록해 왔다.

 

무엇보다 규제 완화와 사유화 바람에 고삐가 풀리면서, 민관협력의 성격도 국가 주도가 아니라 민간자본 주도, 부동산자본 주도의 협력으로 변질되었다. 실질적 공공성은 희석된 채 공권력이 민간자본과 투기세력의 발호에 휘둘리거나, 이들의 동물적 돈벌이를 부추기며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사태가 전개됐다.

특수목적회사(SPC), 자산관리사 같은 것들이 부상한다. 토지 강제수용 또한 공익이 거세된 이익 사유화 수단으로 전락한다. 심지어 민간 부동산업자도 강제수용권을 갖고 자신들의 투기적 사익 추구 수단으로 삼는다.

 

한국은 여러 민관협력 방식을 경험했다. 정부가 선도산업에 생산적 투자를 하거나 수출 실적을 내도록 민간기업을 유도하면서, 금융 및 세제 면에서 특혜를 제공해 위험을 공유하는 방식은, 개발주의 민관협력의 대표적 형태다.

흔히 국가와 재벌의 성장연합이라고도 하는데, 이 방식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관건은, 특혜지원에 상응해 유망산업 투자나 수출 실적과 같은 성과에 대한 정부의 규율·강제가 얼마나 잘 먹히느냐, 기업의 부동산 투기를 어떻게 잘 규제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우리는 택지개발 및 주택공급 문제에서 한국형 민관협력의 또 다른 대표적 형태를 본다. 흔히 공영개발이라 불린다. 여기서는 택지개발촉진법에 기반해 정부가 토지 강제수용을 통해 택지를 개발한다. 정부는 확보한 토지를 비축하지 않고 민간 개발업자에 염가로 매각하고, 민간업체는 토지 분양으로 큰 이익을 챙기며 주택을 시장에 공급한다.

공영개발에서 토지 강제수용은 개발주의 금융통제에 비견될 수도 있겠으나, 사유재산권 침해, 나아가 거주의 권리를 박탈하면서, 부동산자본을 배불리는 수탈에 의한 축적의 요소를 갖고 있다.

 

국가와 재벌 간 성장 지향 민관협력에서는, 금융, 세제 등에서 대기업에 거대한 특혜를 퍼주어, 공룡 재벌을 키웠다. 재벌이 발전이익의 주된 부분을 차지하면서, 재벌 지배와 수도권 집중 등 이중구조적 불균형이 고착화됐다.

국가와 부동산자본 간 공영개발식 민관협력의 경우, 주요 특혜는 개발이익의 가장 큰 원천인 토지를 부동산 업체에 넘겨준 것이다.

또한 한국 주거체제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주변화되고 분양이 지배적 방식이 되었으며, 주거권 보장이 아니라 자가소유주의가 득세하게 된 것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업자와 함께 정부도 토지수용과 매각을 통해 개발이익을 공유했다.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위 두 가지 민관협력 방식이 압축성장과 압축적 주택공급을 위해 나름 큰 역할을 수행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지난날 압축적 산업경제 성장·성공은 특혜지원과 성과 규율의 상호성 원칙이 나름 작동한 때문이다.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 같은 조치도 중요했다. 그리고 공공에 의한 택지개발과 분양가 규제 등 공적 규제는 단기간에 압축적 대량 주택공급을 가능케 하고 중산층을 육성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한국은 민관협력의 성공 경험뿐만 아니라 지독한 실패 경험도 갖고 있다. 성과조건부 지대와 불로소득 지대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공권력과 대자본이, 공권력과 부동산자본, 투기 세력이 서로 손잡는 판에, 공공성 원칙이 순탄하게 관철될 리 만무하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 무엇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규제 완화와 고삐 풀린 자유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재벌과 투기세력의 힘이 훨씬 강대해지고, 민관협력의 성격도 변질됐다. 민주화의 역설이다.

세월호 참사 그리고 이어진 박근혜·최순실·이재용 3인방 주도의 국정농단은, 국가 공공성 붕괴와 민관유착 흑역사의 정점을 찍은 사태였다.

 

이제 도시개발에 집중해, 민관협력이 어떻게 부동산 투기세력의 이해에 부응하게 변질됐는지 살펴보자.

제도적 측면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도시개발법의 변천이다. 이 법은 2000년에 제정됐는데, 이는 지역 특성,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민간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취지도 있었지만, 주된 방향은 이 시기 분양가 자율화 등 부동산 분야 전방위적 규제 완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이후 투기세력 발호를 조장하는 가장 큰 퇴행은 이명박 정부 때 일어났다. 이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 출범 때, 민간이 개발을 주도하며 공사는 민간과 경쟁하지 말고 보완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엘에이치는 대장동을 비롯해 다수의 공영개발을 철회했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는 도시개발법 개악을 밀어붙였는데, 주요 내용은 이렇다.

 

△주택건설업자 외에 부동산 개발업자, 부동산 투자회사, 토지 소유자 등의 도시개발사업 참여를 허용한다. 단독이든 민관 공동출자든 전문 투기꾼들의 참여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관이 50% 초과 출자하는 민관 공동출자 법인의 경우 토지소유자의 동의 없이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하다.

△민관 공동출자 법인이 조성한 택지는 민간 택지로 분류되며 분양가 상한제 적용에서 제외된다. 민간 수익 상한의 제한도 없다.

△인구 50만 이상의 대도시면 시장도 개발구역 지정권자가 될 수 있다.

 

이리하여 민관결탁을 통해 부동산 투기 축적의 신세계로 가는 문이 활짝 열렸다. 지분 7%의 민간사업자들이 8천억원대의 분양·배당 수익을 쓸어간 대장동 개발은 이 신세계 판에서 벌어진 한 가지 오답이다.

화천대유의 실소유주는 누구인지, 투기세력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성남도시개발공사 관계자와 화천대유·천화동인 소유주 사이에 어떤 유착이 있었는지, 왜 초과이익 환수조항이 삭제됐는지, 부산저축은행과 하나은행에는 어떤 비리가 있었는지 등의 진실은 특검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

 

판교 대장동만이 대장동은 아니다. 3기 새도시 민간업자 개발이익이 8조원이나 되며 제2의 대장동 사태가 우려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삐 풀린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 민관협력의 갈 길은 멀다.

 

이 와중에 여야가 다투어 부동산세 깎아주겠다는 역주행 소식이 요란하다. 뭘 어쩌자는 걸까.

 

토지공개념 3법과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을 추진했던 죽은 노태우가 웃는다.

 

 

이병천|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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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9887.html#csidxc90df5c146b6850bff42164d9849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