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툰베리의 ‘블라 블라 블라’

道雨 2021. 11. 18. 10:22

툰베리의 ‘블라 블라 블라’

 

 

 

미국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대사 중에 ‘블라 블라 블라’(blah blah blah)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어쩌고저쩌고’ 정도의 뜻이다. 누군가 허튼소리를 계속할 때 그것을 조롱하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이 말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세계적인 유행어가 됐다.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총회 개회 한달여 전인 9월28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청소년 기후정상회의’(Youth4Climate Summit) 연설에서 이 말을 쓰면서다.

툰베리는 당시 연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주요 국가 정상들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행동은 하지 않고 ‘말잔치’만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30년 동안 ‘블라 블라 블라’만 외쳐왔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희망은 그들의 공허한 약속에 빠져 익사할 지경”이라는 뼈 있는 농담도 던졌다.

 

2주간 열린 글래스고 총회 기간에도 이 말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됐다. 지난 5일 기후운동단체들이 세계 지도자들에게 ‘기후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글래스고에서 벌인 ‘기후 파업’ 집회에는 “더 이상 ‘어쩌고저쩌고’ 하지 마라”(No more blah blah blah)라고 적힌 팻말이 등장했다.

총회 의장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도 총회 개막식 연설에서 “행동이 없는 약속은 ‘블라 블라 블라’일 뿐”이라며, 툰베리의 말을 인용했다.

 

툰베리의 ‘블라 블라 블라’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기성세대와 달리 기후위기를 ‘발등의 불’로 여기는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은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외쳐왔다. 이들이 이끄는 ‘글로벌 기후 파업’의 단골 구호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인 이유다.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글래스고 총회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합의문 초안에 담겼던 석탄의 ‘단계적 퇴출’은 ‘단계적 감축’으로 뒷걸음질 쳤고, 개발도상국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금 마련도 1년 뒤로 미뤄졌다. “종말시계가 자정까지 1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존슨 총리의 개막 연설이 무색할 정도다.

 

툰베리는 트위터에 이번 총회를 한줄로 총평했다.

“블라 블라 블라.”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9682.html?_fr=mt3#csidx95b635cba4c3045b9ff29f1cdd022f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