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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과 우크라이나 위기는 무관한가

道雨 2021. 12. 17. 10:12

종전선언과 우크라이나 위기는 무관한가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이 베이징 시내 쇼핑몰의 전광판에 비치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무거운 질문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에 나서는 동시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에서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에 10만명 가까운 병력을 배치하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강력한 경제 제재’를 경고하며, 러시아가 선을 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푸틴의 도박을 예의주시하는 것은 중국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대만을 통일할 것이고, 평화통일이 불가능할 경우 무력통일에 나서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미국과 동맹들이 러시아의 공세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중국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진다.

 

물론 당장은 중국 국내 정치, 경제적 상황이나 군사 능력이 충분치 않다. 그러나 중국군의 현대화 계획이 완수되고, 시진핑 주석이 4번째 임기 연장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2027년이나, 중국 경제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 무렵, 중국과 러시아가 공조해 대만-우크라이나에 대해 동시 행동에 나선다면, 또는 두개의 전선에서 ‘우발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국제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나라의 전략가와 전문가들이 이런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고 있다.

 

대만은 한국에 강 건너 불구경일까. 대만 문제는 애초부터 한반도와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마오쩌둥은 대륙에 대한 통제권을 확고히 한 뒤 대만으로 도망친 국민당 정부를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1950년 중국은 소련과 함께 북한의 남침을 지원했고, 미국이 7함대를 대만해협에 급파하면서 중국의 대만 점령은 무산되었다.

 

오병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은 “냉전 초기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본토 수복’을 내걸고 전투기들을 중국 대륙 곳곳으로 보내 비밀작전을 벌였는데, 종종 군산의 주한미군 기지를 중간 기착지로 이용했다”면서 “한반도는 늘 지역분쟁의 복판에 서게 되므로, 열강의 첨예한 갈등을 완화시키면서 한국의 정치력을 관철시키는 틀을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강조한다.

 

다시 대만 문제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민감한 안보 문제가 된 지금, 청와대와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이라는 문구가 처음으로 들어갔고, 지난 3일 한-미 국방장관 연례 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도 ‘대만해협 안정’이 명시되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을 의식해 이것이 ‘원칙적 언급’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대만을 둘러싼 미-중 무력충돌이 벌어질 경우, 한-미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은 작전 구역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한국이 중국과의 군사적 대치의 최전선에 서지 않으려면, 중국이 ‘통일’을 명분으로 지역의 평화를 깨는 것을 방지할 다자 외교에서도 역할을 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미국 편도, 중국 편도 아닌 한국의 국익이기 때문이다.

 

‘G10(주요 10개국)’의 일원으로서 한국 외교가 국내 정치와 한반도를 넘어 역할과 발언권을 확대해야 한반도 비핵와와 평화의 문제도 더 효과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 정부가 최근 몇달 동안 ‘종전선언’에 힘을 쏟아왔지만 이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반도에서 70년 가까이 계속되어온 정전 상태를 극복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정표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곳까지 어떤 길을 만들고 나아가야 하는지도 그만큼 중요하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 딜’로 끝난 이후 미-중 갈등까지 깊어지면서 길은 훨씬 복잡해졌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외교력은 얼마 남지 않은 현 정부 임기 안에 종전선언을 초고속으로 추진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하면서 중국 편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논란이 커졌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중국의 공세적 외교는 당연하다”고 강조하는 식의 외교에 미국 내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미국도, 중국도 한국을 자기 편으로 더 가까이 잡아당기는 데 종전선언을 이용하고 있을 뿐, 남·북·미·중이 합의할 의미있는 종전선언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강대국 갈등이 첨예해진 격랑의 시대를 헤쳐가려면, 비슷한 입장의 국가들이 힘을 합쳐, 리스크는 줄이고 협력은 늘려야 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해 희토류 공급망 다변화와 안보협력 강화,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강조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국제질서의 주요 사안에 대한 관심과 원칙이 외교력을 키운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의 평화, 첨단기술 공급망 재편, 민주주의와 인권의 개선 등이 지금 그런 과제다.

 

박민희 | 논설위원

minggu@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3592.html#csidxd775ecd8e1dbcfca779e4b9b828b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