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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리질리언스’ 전략을 위하여

道雨 2022. 1. 3. 13:12

한국형 ‘리질리언스’ 전략을 위하여

 

*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 논의를 주도함으로써 남북 관계에 물꼬를 트려 하고 있지만, 3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북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며 남북간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 2017년 11월12일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3척이 동해상에서 우리 해군 함정과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미국 7함대 페이스북 갈무리/연합뉴스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코로나 사태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더 높아졌다는 게 중론이다. 2021년 한국 경제는 3년째 세계 10위 자리를 고수했고, 수출은 세계 7위로 자리매김했다. 군사 부문에서도 세계 6대 군사강국으로 등극했다.

산업발전 동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혁신지수에서도 <블룸버그>와 유럽연합(EU)은 한국을 세계 1위로 평가했다. 간과하기 어려운 성과다.

 

지난달 서울을 방문했던 캐시 스티븐스 전 주한 미 대사는 한 세미나에서 이러한 지표를 인용하며, 한국을 ‘위기에 강한 나라'로 규정하고, 그 이유를 ‘리질리언스’(resilience)에서 찾았다. 한국이 외부 충격에 대해 남다른 지구력과 복원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국력의 규모에 비해 리질리언스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리질리언스’는 최근 미국의 주요 담론에서 떠오르는 화두다. 지난해 8월 가네시 시타라만 밴더빌트 법과대 교수가 <포린 어페어스>에 게재한 ‘리질리언스의 대전략’이라는 기고문이 화제의 중심에 있다.

그는 ‘리질리언스’를 커다란 내부 희생 없이 “외부의 도전을 견뎌내 원상을 회복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환경에 필요에 따라 적응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바꿔 말해 한 국가 혹은 사회의 회복력, 유연성, 기민성, 강인함 등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코로나, 기후변화, 사이버 위협, 중국과의 지정학·지경학적 경쟁 등 다양한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이에 대한 리질리언스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인프라의 결여, 양극화된 정치와 민주주의의 퇴행,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폐해, 군산복합체의 횡포, 그리고 국가 전략의 부재가 그 이유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혁신과 정치·경제·사회적 대전환을 통해, 국내적 차원의 리질리언스, 나아가 동맹국 및 우호적인 국가들과 집단적 리질리언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그는 주문한다.

 

한국은 과연 미국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는가? 자신하기 어렵다.

2022년 한국이 당면하게 될 도전은 만만치 않다. 당장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 문제도 심상치 않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 논의를 주도함으로써 남북 관계에 물꼬를 트려 하고 있지만, 3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북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것이고, 5월 새 정부 출범에 맞추어 긴장이 크게 고조될 수 있다. 대선 정국 이후의 국론 분열과 사회적 동요를 추스르는 일도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위협은 더 심각하다.

경제 양극화에 따른 구조적 불평등과 만성적 실업, 특히 청년 실업의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경제·사회·안보상의 취약성도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외부 환경 역시 예측불허다.

미-중 대결 구도의 심화에 따른 동북아의 불안은, 우리의 전략적 포석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동맹 강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중립을 바라는 중국 사이에서 기존의 균형 외교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고, 강대국 정치의 틈바구니에 낀 한국의 실존적 고뇌는 깊어질 것이다.

 

이렇게 볼 때, 2022년이야말로 한국의 리질리언스를 시험하는 결정적 한 해가 될 것이다. 안과 밖의 파고를 견뎌내며 유연한 적응력과 복원력으로 평화, 번영, 안정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물질적 하부구조의 확충만으로는 부족하다.

 

리질리언스의 상부구조가 튼튼해야 한다. ‘설마 그럴까’라는 빛바랜 관성에서 벗어나, 평소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모든 위기의 개연성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갖춰야 한다. 예지력은 정보력에 달려 있다. 국가와 사회의 정보력 증진에 각별히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군사, 경제, 생태, 사이버에 이르기까지 모든 안보 분야에서 정보력 확충은 필수적이다.

 

국가의 관리능력 또한 핵심 변수다. 제반 위협을 적시에 예측, 평가하고, 기민한 정책 결정을 통해 과감하게 대응하는 능력 말이다. 전통 안보와 신흥 안보 이슈가 동시에 불거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러한 총체적 위협을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총력 안보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그러나 총력 안보가 정권 안보의 도구로 전락했던 70년대의 악몽은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이를 떨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안보의 정쟁화를 피하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소통을 통해 대승적 목표에 대한 공감대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마련될 때라야 비로소 ‘한국형 리질리언스’(K-resilience)도 가능할 것이다.

 

문정인 | 세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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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5639.html#csidx34441f88cd0c8c496b129bfe90f8b7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