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보수 정부에 거는 기대

道雨 2022. 3. 30. 09:33

보수 정부에 거는 기대

 

1997년 평화적 정권 교체가 처음으로 이루어진 뒤, 2007년과 2017년에 이어 세번째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정권 교체인 만큼, 핵심 요직 인사들에 대한 전면적 교체와 함께, 정치, 사회, 경제 정책 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분야는 대외정책 부문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난 수천년간 한국의 역사였다. 당의 압박 속에서 고구려가 멸망했고, 그 자리에 안동도호부가 들어섰으며, 원의 압박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명에 대한 대의명분은 삼전도의 굴욕으로 이어졌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세계가 서로 연결되면서 그 위기는 더 심해졌다. 청은 자신들이 위기에 몰리자, 평화적 조공관계라는 관례를 깨고, 위안스카이를 파견해 용산에 사령부를 세우고 조선을 식민지화하고자 했다. 불평등조약에 시달리던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용산에 일본군사령부와 총독관저를 세웠다.

이 위기 속에서 조선 정부는 친일, 친청, 친러파로 나뉘었다.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다가, 왕비가 살해당하고 왕이 외국의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어느 나라에도 기댈 수 없게 되자, 조선에 대해 1도 관심이 없는 미국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 그 시점에 미국은 조선과 필리핀을 교환하는 밀약을 일본과 맺었다.

1945년 이후 냉전은 한국에는 오히려 외교적 고민을 줄여주었다. 중국과 러시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과 공산권의 몰락은 19세기 이전의 고민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그리고 그 고민은 이제 정점에 와 있는 듯하다. 특히 과거에 없었던 고민거리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북핵 문제이다.

 

이 시점에서 과거 성공했던 보수 정부의 외교정책을 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1988년 노태우 정부의 수립과 공안정국은 민주화의 물결을 다시 되돌리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상 북방정책은 우리 역사를 바꾸어놓았던 큰 성취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언급될 정도로, 노태우 정부의 7·7선언과 대북정책은 매우 전향적이었다. 비핵화선언도 이루어졌다. 아울러 탈냉전이라는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소련,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졌다. 어쩌면 2000년대 이후 경제 성장의 초석을 놓았던 전향적인 외교 정책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었던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미국에도 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대통령 중 하나가 닉슨이다. 그러나 닉슨은 중국의 문을 열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미국이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고육지책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데탕트와 중국 방문은 이후 중국과 소련의 미래를 바꾸어놓았고, 독일의 통일을 앞당김으로써,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수 있는 주춧돌을 놓았다.

만에 하나 케네디나 존슨 대통령이 중국의 문을 열었다면 미국 사회가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까? 대내적으로 진보적 정책을 실시했던 존슨 대통령에게 왜 베트남에 전격적으로 개입했는가를 물었을 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제2의 매카시즘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 정치인 중 가장 보수적이었던 닉슨이었기에 마오쩌둥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7·7선언을 처음으로 내놓았다면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까? 그나마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있었기에, 김영삼은 취임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얘기할 수 있었고, 김대중은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탈냉전을 전후한 시기보다 더 큰 위기라 할 수 있다. 미-중 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한-미 동맹은 한국 안보의 가장 중요한 축이고, 중국은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이다. 북-미 간의 대화가 더는 진전되지 않으면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고 있다. 핵무기가 고도화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유가의 급등은 무역뿐만 아니라 가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새로 들어서는 보수 정부가 현명한 선택을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진보적인 김대중 정부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한-일 관계의 새 지평을 열었고, 보수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던 노태우 정부와 닉슨 정부의 선택이 역사를 바꾸었다. 새로 출범하는 보수에서도 보수 정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성취를 달성하기를 희망해본다. 

 

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