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대표하지 못했다... K-민주주의의 비극
[소셜 코리아] 독일에서 본 한국 정치 "포퓰리스트들의 결전, 마초들의 반격"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 20여 일이 지났습니다. 정치권은 바로 지방선거 준비 태세로 전환했고, 당선인과 인수위원회는 차기 정부의 출범을 준비 중입니다. 언론의 관심도 빠르게 전환되는 새로운 의제에 쏠리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 대한 충분한 평가와 논의 없이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셜 코리아는 우리의 대선을 평가하고 공론화하는 글을 준비했습니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정치학과의 하네스 모슬러 교수가 바깥에서 본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국의 대선을 되짚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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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의 대선을 규정한다면, 비극이라고 할지 희극이라고 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스펙터클이었다는 것에는 이의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스펙터클은 '관객 민주주의(spectator democracy)'의 본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관객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은 높지만, 참여와 헌신도는 낮은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광경을 독일 기자들도 놓치지 않았다. 서울이나 도쿄에 파견되어 있는 독일 특파원이 총동원 된 듯, 독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주요 일·주간지들은 한국의 현장을 비교적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전했고, 선거가 끝난 후에도 보도가 이어졌다.
독일의 언론들은 대체로 문재인 정부의 실망스러운 국정운영이 이번 대선 결과의 중요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선거기간 동안 정책 논쟁의 실종과 지나친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조명하면서, 두 거대 정당의 후보인 이재명과 윤석열의 특이성, 새 정부가 추구할 외교·안보정책뿐만 아니라 날로 짙어지는 반 여성주의를 주목했다.
▲ 독일 언론의 한국 대선 보도들. 독일의 주요 일·주간지들은 한국의 현장을 비교적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전했고 선거가 끝난 후에도 보도가 이어졌다. ⓒ 소셜 코리아
독일 언론은 문재인 정부를 대체로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대통령의 선의를 인정하면서도, 문제는 짚고 넘어간다. 예를 들면 혼란스러운 부동산 정책 때문에 집값이 오히려 계속 올랐던 사실을 보도했고, 소득주도성장과 공공일자리 확대 방식으로 경제를 촉진하려는 '제이노믹스(J-nomics)'가 끝내 별로 통하지 않고 오히려 청년 실업률이 높게 유지됐다고 지적했다. 대북정책도 처음에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지만 용두사미로 끝나버리고 실망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또 독일 언론은 부적합한 사람들이 정부 고위직에 임명된 사례를 지적했다. 그중에 가장 소란스러운 경우로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에 임명 강행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조국 가족을 둘러싼 비위 의혹 때문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결국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됐고, 마침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이런 실책은 겨우 8개월 만에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부터 대통령 당선인이 되는 '강남의 기적'의 기반을 닦아준 격이 되었다.
불과 8개월만에... 강남의 기적
지난 대통령 선거 운동은 건설적인 정책 논쟁이 거의 없었다. 특히 거대 양당의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서로를 비행과 추문으로 비난하는 이전투구의 모양새였다. 두 후보는 정치적 아웃사이더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인적인 논란들을 벗어버리지 못해, 유권자들이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역대급 비호감의 선거'가 되었다. 각 후보의 부인, 장모, 조카, 삼촌 등 가까운 친족에 관한 다양한 의혹도 혼잡한 선거를 더 진흙탕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특히 상대방을 무솔리니와 히틀러로 비유하는 것에 독일 언론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석열 당선인은 2월 17일 선거 유세 중에 문재인 정부를 가리켜 "자기가 지은 죄는 남에게 덮어 씌우고, 자기 죄는 덮고, 남에게는 짓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 선동하는 게,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들,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수법"이라고 발언했다.
▲ '부스터슛' 대 '어퍼컷' 지난 2월 19일 유세도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전북 전주시 전주대학교 구정문앞에서 코로나19를 물리친다는 의미로 '부스터슛 세레모니'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경남 김해시 김수로왕릉앞 유세 도중 '어퍼컷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 이희훈/유성호
이런 맥락에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정치 초보자(politischer Neuling)" 윤석열 후보는 단순한 시장 법칙만을 믿는 "우익 포퓰리스트"와 "K-트럼프(K-Trump)"로 독일 언론에 소개되었고, 가난한 가정 출신인 이재명 후보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변덕스러운 포퓰리스트"로 보도됐다. 이들의 선거운동은 "포퓰리스트들의 결전(Clinch der Populisten)"으로 묘사됐다. 특히 윤석열 후보에 대해서는 무속, 미신, 항문침 등이, 이재명 후보의 경우엔 사회복지 정책, 탈모 공약, 행동가의 이미지 등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었다.
아울러 독일 언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범한 두 후보의 망언도 놓치지 않았다. 또한 기존 대북정책에 대해 "친절함이 끝났다(Ende der Freundlichkeiten)"라며 "힘을 통한 평화(Frieden durch Macht)"를 강조한 윤석열 후보의 외교정책 기조를 보도하며, 향후 변화를 예측했다. 그리고 이런 외교 정책을 "베이징과 대결의 길을 걷는다(auf Konfrontationskurs auf Peking)"라고 분석하고 "한반도에서 냉전시대의 새 단계 (neue Phase des Kalten Krieges)"로 접어들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마초들의 반격"
무엇보다 독일 언론의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이른바 '젠더 전쟁'이었다. 독일 언론들은 이에 대해 설명하고 배경을 분석했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 나온 여성 혐오적 발언들에 대해 "마초들의 반격(Die Machos schlagen zurück)"과 같은 헤드라인으로 압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독일 언론은 한국에서 구조화된 가부장주의 논리에 따라, 여성에 대한 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남녀 소득 격차, 유리 천장, 정액 테러(Sperma-Terrorismus), 여자 화장실 몰카, 데이트 성폭력, 여성 살해(페미사이드) 등의 여성혐오 범죄를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한국 여성이 극도로 불리하고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와 취재원의 진술을 소개했다.
이런 보도를 접한 독일 현지인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비교적 활발하고 성공적이었던 한국의 미투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이런 만행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 놀랍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당선인은 한국에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성차별이 없으며 오히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심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는 최근 일부 세력에 의해 '페미니즘'이 욕설로 오용된다는 현실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 2일 20대 대통령선거 법정 TV토론이 끝난 가운데 부산 여성단체들이 3일 부산시청에서 페미니스트 부산 주권자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2022.3.2 ⓒ 김보성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교각살우(矯角殺牛)식 공약과 한국 '저출산은 페미니즘 때문'이라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과 같은 발언 때문에, 독일 언론은 그를 "노골적으로 여성을 경멸하는(verachtet Frauen)" "반페미니스트(Antifeminist)"로 규정한다.
이렇듯 독일 특파원들은 한국 대선의 특징, 과정, 결과를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했는데, 외신보도인 만큼 더 자세하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 대한 독일 언론의 보도에서 'K-정치(K-politics)'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에 더해 필자도 한국 바깥에서 대선을 지켜본 소회를 몇 가지 공유하고자 한다.
독일 현대사가 사면 정국에 주는 교훈
첫 번째는 이번 대선 때도 어김없이 머리를 내민 역사 왜곡의 문제다. 보수진영 후보 윤석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역을 찾아 독재자의 공적을 기리고, 역시 독재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제 성과를 칭찬하며 보수표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진하는 모양새였다. 상대 후보 이재명 역시도 이따금 연설에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국가 발전을 위한 공적을 의미심장하게 언급했고, 역시 박정희와 이승만 묘역까지 참배했다.
전직 대통령들을 언급하거나 예방하는 것이 선거운동 때 워낙 익숙한 모습이어서 너무 과한 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사왜곡은 꼭 역사교과서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교묘한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내란죄와 반란죄, 국정농단이라는 엄중한 죄목으로 천문학적 벌금형과 종신형과 다름없는 징역형을 받은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 사건도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일부 보수 정치인과 보수 신문들은 전직 대통령이 수감된 사실이 국격이 걸린 일이라고 피력하곤 한다.
하지만 애초에 전직 대통령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고, 그에 상응한 벌을 받는 것이 법치국가의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따라서 국격 때문에 풀어줘야 한다는 얘기는, 적어도 바깥에서 봤을 때 성립되기 어려운 전도된 논리로 보인다.
특히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전격 특별 사면한 것은, 역시 잘못된 역사의식을 유발하는 위험천만한 사건이므로, 현 정부의 지금까지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안타까운 화룡정점으로 남을 것이다. 1997년에 15대 대통령 당선인 김대중의 건의로 김영삼 대통령이 일명 "광주의 도살자(Schlächter von Kwangju)"로 묘사된 전두환과 노태우를 특별사면했고, 그 결과 그들의 만행으로 생긴 어두운 역사의 매듭을 아직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이 사후에도 여야 대통령 후보로부터 찬가까지 듣는 것을 볼 때, 조건 없는 사면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과거사를 직시할 때만이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독일 역사를 포함한 인류사가 주는 깨달음이다.
최근 이명박 사면에 대한 논의를 보면, '과거를 망각하는 사람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라는 말이 새삼스레 와닿는다.
'K-정치'의 K는 '카르텔(Kartell)'이다
필자가 한국 대선에서 발견한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절실하게 요구되는 정치개혁 과제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였다. 특히 국민의힘은 마치 기본값으로 개혁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고, 윤석열 당선인은 권력구조 개편 등에 관해서 후보 중 가장 소극적이었다. 물론 제도 개혁이 만병 통치약이 아니지만, '87체제'라는 고루한 틀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기본이라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윤석열 당선인은 별다른 법 개정 없이 '하면 된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곤 했지만, 정치 동물들의 야심을 조금이나마 구조적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곧 '제왕적 대통령'과 '동물국회'라는 웃지 못할 광경이 재현될 것이 뻔하다. 윤 당선인이 불도저식으로 추진하는 청와대 이전에 대해, 한 독일 언론은 "매우 특이한 종류의 부동산 문제를 처리한다(Immobilienproblem der ganz besonderen Art)"라고 꼬집으며, 앞으로의 문제를 감지하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다.
특히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폐쇄적 담합 행태는 한국 정치의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즉, K-정치의 'K'는 한국(Korea)을 뜻할 수도 있지만, 카르텔(Kartell)을 가리킬 수도 있다. 지금 주어진 당면 과제는 이런 담합 정치를 해체하는 것이다.
비결은 없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소위 적폐 청산이라는 접근은 상대를 제거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서로를 공격하는 악순환에만 이바지하는 필패의 방식이라는 것이 충분히 확인됐다. 이와 달리 '권력을 갖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다.
구체적으로는 정치 엘리트의 야심을 정치체제의 혁신으로 제한하고, 성숙한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 참여로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최대화하는 배타적인 이기심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하는 시민교육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교육 제도의 전반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남녀·세대·지역·계층 간의 갈등으로 소모되는 비용을 정치 참여와 개혁에 쓸 수 있다.
정부 구조와 선거제에 대한 개혁도 시급하다. 의원내각제가 아직까지 너무 획기적이라면, 결선 투표제를 포함한 4년 임기 대통령 중임제와 책임총리제를 고려해보자. 또한 국회 전체 의석 중 적어도 3분의 1 이상으로 확대된 권역별 연동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와 같은 개헌과 정치관계법 개정을 통한 제도 혁신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진영에 속한 정치인과 전문가들의 묵계이기도 하다. 여태까지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할 때다.
정치 계급을 제도적으로 견제하고, 교육 혁신으로 민주 시민성을 함양해야, 관객 민주주의를 탈피해, 숙의가 가미된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 하네스 모슬러 /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 하네스 모슬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하네스 모슬러는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University of Duisburg-Essen) 정치학과와 동아시아연구소(IN-EAST) 교수이며, 관심 분야는 한국정치와 사회다. 최근의 연구주제는 선거제도, 개헌, 기억의 정치, 시민교육, 포퓰리즘 등이며, 최근의 저서로는 <Politics of Memory in Korea>(편저), <South Korea's Democracy Challenge>(편저), <The Quality of Democracy in Korea>(공편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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