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어쩌다 대통령’의 시대

道雨 2022. 3. 30. 09:06

어쩌다 대통령’의 시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어쩌다 대통령이 된 ‘어통령’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이 “그야말로 ‘어쩌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고 칭했고, 윤 당선자 스스로도 누누이 “국민이 불러냈다”는 말로 어쩌다 대선에 나선 상황을 설명했다.

 

‘어통령’이 됐다는 건, 윤 당선자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아 당선된 건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가 국정 운영을 잘할 거라고 믿어서 지지한 국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 2월3~4일 케이스탯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윤 후보 지지층의 64.8%는 지지 이유로 “정권교체를 위해서”를 꼽았다.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서”는 4.1%, “정책이나 공약이 마음에 들어서”는 9.7%에 그쳤다. 실제 투표 결과도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1차적으로 강경 보수층의 정권 탈환 욕망이 그를 유력 대선 주자로 띄워 올렸고, 여기에 현 정부의 집값 폭등과 세금 인상, ‘내로남불’에 성난 민심이 가세해, 어쩌다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윤 당선자가 드러내고 있는 난맥 또한 대부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준비되지 않은 ‘어쩌다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은 물론 그에게 투표한 지지층마저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윤 당선자가 자신의 첫 국정과제로 집무실 용산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은, 그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엄중함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안보는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본연의 서비스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초적 ‘서비스 마인드’ 역시 안보에는 한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어야 한다. 국방부·합참 연쇄 이전의 문제점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의 사장 등 곳곳에서 제기되는 우려를, ‘일단 청와대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다’는 기이한 논리를 들어 거듭 일축하고 있는 것은, 윤 당선자가 대통령의 기본 책무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겠다며 ‘탈청와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졸속과 불통의 제왕적 행태를 드러낸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일이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애초 윤 당선자가 “경호 문제나 외빈 접견 문제는 충분히 검토했다. 당장 인수위 때 준비해서 임기 첫날부터 광화문 집무실에 가서 근무가 가능하다”고 장담해놓고, 당선된 지 사나흘 만에 경호와 시민 불편 등을 문제 삼아 용산으로 이전 장소를 바꾼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지 않을 수가 없다. ‘말 바꾸기’를 넘어 처음부터 용산을 염두에 둬놓고, 선거 기간 중에는 국민들에게 듣기 좋은 ‘광화문’을 얘기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윤 당선자는 흔한 유감 표명조차 없이 “결단”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추켜세우고 있을 뿐이다. 이 역시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투명한 논의를 거쳐 국가적 의제를 결정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지도자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보는 경험을 갖지 못한 채 ‘어통령’이 됐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윤 당선자가 용산 이전에 집착하며 당선 뒤 첫 3주의 ‘골든 타임’을 날려버린 것은, 이걸 빼면 그가 국민에게 내놓을 수 있는 뚜렷한 비전이나 국정과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을 잡긴 했지만, 정작 어떤 나라와 정부를 만들어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것인지는 스스로도 오리무중이기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속이 텅 빈 ‘정권교체’ 구호만으로 당선된 ‘어통령’의 근본적 한계다. 그가 국민의 실제 삶과 직결된 국정 분야에서 약간의 준비만 돼 있었다면, 지금처럼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며 귀중한 국정 동력을 허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윤 당선자 주변에 직언을 서슴지 않는 ‘레드팀’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어통령의 시대를 맞는 불안과 우려를 더욱 깊게 한다. 정치 초보의 불통 행보를 말리기는커녕 “권한을 포기하겠다는 굳은 의지”(권성동),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결단”(김기현) 운운하며 칭송하기에 급급한 사람들뿐이다. 계속 이 상태로 간다면 언젠가는 국민들이 소리치게 될 것이다.

 

 

손원제 | 논설위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