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윤석열 한달, 전임자들 전철 밟고 있다

道雨 2022. 4. 7. 09:18

윤석열 한달, 전임자들 전철 밟고 있다

 

대선이 지난달 9일이었으니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시간이 한달쯤 흘렀다. 취임까지 두달은 5년 국정을 준비하기에 빠듯하지만, 차기 권력으로 큰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시기다.

소탈하고 언론 친화적인 모습으로 나름 호평도 받았지만, 내용으로 보면 윤 당선자의 한달은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가만있어도 50점은 받을 텐데,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윤 당선자는 실패한 전임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 이른바 ‘승자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대선에서 이긴 이의 자신감과 만용이 부르는 궤도 이탈 조짐이 엿보인다. 정작 바꿔야 할 건 손대지 않고 엉뚱한 데를 긁적이는 식이다.

 

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 대표적이다. 합리적·민주적이어야 할 정책 수립·집행 과정이, 차기 권력 1인의 독단으로 진행됐다. 초보 대통령 당선자의 아집이 빚어낸 촌극에 가깝다. 여론조사에서 보듯 국민의 과반이 반대하고, 상당수 보수 오피니언 리더들조차 만류했다. 청와대를 빨리 개방하라는 국민 요구가 있다는데 금시초문이다.

용산 이전을 둘러싼 논점은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다. 공간적인 청와대 탈출보다 소통 방식이 더 중요하다. 굳이 집무실 이전이 필요하다면 못 할 건 없다, 용산으로 가더라도 질서 있게 하는 게 좋다. 용산 말고 세종시 등 근본 대책을 연구할 필요도 있다는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도 윤 당선자 고집에 물러선 만큼 공론과는 동떨어진 용산 이전이 강행될 모양이지만, 그 후과는 만만찮을 것이다.

용산 논란의 핵심은 윤 당선자가 오만과 독선이라는 전임자들의 전철을 되밟는다는 것이다. 과거에서 벗어나겠다면서 실은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무엇이 중한지 잘 모르는 것이다. 서둘러 거처를 벗어나면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극복된다는 착각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둘째,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 역시 과거 대통령들의 인사 행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국회 인준용이라지만 어떤 메시지도 찾기 어렵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였던 한승수, 정홍원 등에서 보인 안일함과 관료 중심주의가 엿보인다. 정치 경험 없는 윤 당선자에겐 행정의 달인이 필요하겠지만, 관료에 의지하면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윤 당선자와 한 후보자가 인선 발표 때부터 책임총리, 책임장관을 얘기하는데, ‘책임’이라는 두 글자만 덧씌웠을 뿐 달라진 건 거의 없다. 책임총리, 책임장관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인선 과정에서부터 책임과 역할이 주어지는 인물과 경로를 택해야 한다. 뚝딱 임명해놓고 책임총리 하라고 해서 되지 않는다. 책임장관다운 인선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권한을 줘도 알아서 기게 돼 있다. 역대 정부가 조각 때마다 내각에 힘을 싣겠다고 한 구두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셋째, 김정숙 여사 옷값 논란,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검찰 수사 등에서 ‘신적폐청산’의 함정이 어른거린다. 옷값 논란을 두고 명확한 근거도 없이 정권이 다 썩었다며, 물러나는 권력을 야비할 정도로 앞다퉈 물어뜯는 보수 언론 행태를 보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이 간다. 6월 지방선거 이후 찬 바람 불 때쯤이면, 검찰과 보수 언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론몰이, 적폐몰이에 나설 것이다.

 

윤 당선자가 문재인 정권을 반면교사 삼겠다면 진짜 배워야 할 게 있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 검찰개혁, 부동산, 조국 문제 등에서 합리적인 선에서 속도조절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지방선거 또는 총선 승리 이후 과유불급인 줄 알고 궤도수정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고 ‘이것은 꼭 해야 한다’는 집단 심리에 떠밀려오다, 결국 정권의 칼잡이에게 권력을 내줬다.

윤 당선자가 자의든 타의든 그 전철을 밟게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다. 윤 당선자는 검찰에서 휘두른 칼과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휘두르는 칼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당선자 주변에선 취임 전 기대치가 낮으니 취임 후엔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아첨 섞인 말들을 한다고 한다. 인수위 단계에서 이렇게 국민에게 외면당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윤 당선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승자의 눈이 아니라, 패배자, 못 가진 자, 잊힌 자의 눈으로 세상과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낮고 겸허한 자세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접을 수 있는 건 빨리 접어야 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백기철 | 편집인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