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원희룡의 제주판 론스타 사건

道雨 2022. 4. 14. 09:33

원희룡의 제주판 론스타 사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 지명으로 ‘론스타 사건’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두 후보자의 연루 여부 때문이다. 이 사건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인 뒤 하나은행에 되팔아 4조6천억원의 차액을 챙긴 데 이어, 우리 정부에 5조6천억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을 건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잘못하면 국민 1인당 최대 10만원에 이르는 세금이 투기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

 

‘녹지병원 사건’은 론스타 사건의 지방정부 판본이라 할 만하다. 2018년 12월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는 중국 부동산 개발 자본인 녹지그룹에 국내 최초로 영리병원 허가를 내줬다. 그런데 녹지가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제한한 것을 문제 삼아 문을 열지 않자, 제주도는 3개월 뒤 의료법 위반을 들어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는 이를 취소하라는 소송에 이어, 허가 조건도 취소하라고 소송을 냈다. 앞의 소송은 올해 초 녹지가 최종 승소했고, 뒤의 소송도 이달 초 1심에서 녹지가 이겼다. 이마저 녹지가 최종 승소하면 꽃놀이패를 쥐게 된다. 아무 조건 없이 영리병원을 개설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해 받아내거나.

 

영리병원은 진료비도 마음대로 정하고 외부에 이익배당도 할 수 있어, 한국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원 전 지사는 2018년 재선에 도전하면서 영리병원 허가를 공론조사로 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오차범위를 한참 벗어난 공론조사 결과를 내팽개치고 허가를 강행했다. 내국인 진료를 막을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국내 의료자본의 불법 우회투자 의혹도 아랑곳하지 않더니, 결국 중국의 땅장사에게 호구 잡힌 셈이다. 원 전 지사는 도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에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녹지병원 허가를 앞두고 <중앙일보>엔 그가 공론조사 결과를 무시해야 큰 정치인으로 성장해 중앙정치로 돌아올 수 있다고 조언하는 칼럼이 실렸다. 대단한 예지력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됐고, 섬의 일개 영리병원이 아니라, 뭍 전체의 부동산을 상대로 더 큰 뜻을 펼칠 기회가 대기하고 있다.

이제 녹지병원 사건의 뒷감당은 제주도민 몫이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