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전쟁의 진정한 비용

道雨 2022. 4. 13. 09:26

전쟁의 진정한 비용

 

그동안 여기저기 총성과 테러가 끊이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다.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를 파열시키는 것들을 두고 목청 높이며 싸울 시간도 있었다. 독버섯처럼 자라난 불평등과 코앞의 일인데도 모르쇠 했던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도 따졌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지가 좋아졌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변변치 않은 것들마저 코로나 역병으로 휘청했다가 얼마 전 러시아의 총포로 사라졌다. 평화의 시기에 부자는 빈자를 노예로 만들고 전쟁 때는 강자가 약자를 노예로 만든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 다시 한번 얄미울 정도로 옳다.

 

비용 계산하면 못할 일이 전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야물딱지게 한번 따져보자.

우선, 군인이 죽는다. 아직 정확한 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대충 계산한 숫자만 봐도 섬뜩하다. 우크라이나에서 약 1300명의 군인이 죽었다고 한다. 러시아 쪽 사망자 수는 미궁 속이지만, 대체로 1만2000명이 넘는다고 본다.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1만5000명, 체첸 전쟁 때는 8000명이었으니, 이미 드물게 처참한 전쟁이다.

뭐든 화폐 단위로 계산하기 좋아하는 경제학자들은 러시아 군대의 ‘인명비용’이 40억달러를 넘었다고 추정했다. 모호하고 무모한 ‘나랏일’로 싸우다가 다친 사람은 여기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전쟁은 군인이 벌이는 일이지만, 총을 들지 않는 시민들이 더 많이 죽어나가는 것이 전쟁이다. 일주일 전에 나온 집계를 보면, 우크라이나에서 이미 1500명에 달하는 시민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그중에는 120명이 넘는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 건물 더미에 묻혀 있거나 은밀한 곳에 몰래 묻힌 사람의 수는 알 수 없다.

전쟁은 세상에서 가장 ‘사치로운 소비’다. 부수고 죽이는 일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다. 침공당한 나라는 파편 더미에 묻히고, 침략한 나라의 살림도 피폐해진다. 러시아는 체첸 전쟁에서 40억달러를 포연 속으로 날렸다고 하는데, 이번 전쟁에 이미 50억달러 이상을 썼을 것으로 본다.

보통 정부 지출은 경기를 살리는 데 그만이지만, 이런 ‘공격적인’ 정부 지출은 제 살 깎아 먹기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10% 정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곧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연례총회에서는 더욱 비관적인 전망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빈사 상태다. 적게는 30%, 많게는 50% 정도 생산능력을 잃은 것으로 추산한다. 지금 전쟁을 멈추어도 복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총탄을 피해 살아남아 침공에 저항하면서 ‘또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은 더 크다. 우선 먹고살 일이 막막하다. 탱크는 건물을 무너뜨리면서 기업과 일자리도 같이 파괴한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우크라이나에서 일자리의 30% 이상이 없어졌다. 미사일이 연일 쏟아지는 동부 지역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서부 지역 상황도 어렵긴 매 한가지다. 전쟁이 계속되면, 일자리 손실은 더 커질 것이다. 조만간 40%를 넘어설 것이다.

유엔개발계획은 현재 상황을 좀더 비관적으로 본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90%가 빈곤에 빠졌거나 그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우려하면서 30%는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뿐이 아니다. 이미 400만명을 훌쩍 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이웃 국가로 피난길에 올랐다. 10여년 전 시리아 내전으로 눈물겨운 피난민 행렬이 이어졌을 때 그 누적 숫자가 370만명이었다. 한달 만에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피난민의 대부분이 여성, 아이, 노인들이다. 이웃 국가들과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은 이번에는 다행스럽게 피난민을 ‘경계’하지 않고 ‘환영’하고 돕는 분위기다. 그동안 난민 문제에 유독 까칠했던 영국도 말투가 따뜻해졌다. ‘환영’의 이유는 여럿이지만, 적어도 피난민의 80% 이상은 전쟁 후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리라는 예상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그 따뜻한 마음도 다시 제 밥그릇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피난민들의 궤적에서 드러나듯이, 전쟁이 계속되면 피난처에서 생계를 찾게 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일하려 한다. 우리가 추정하는 바로는, 피난민의 40% 남짓은 전쟁 직전에 일자리를 가졌던 사람이고 학력이 높고 직장 경험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주하는 나라들의 노동시장 상황은 만만치 않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피난민들이 나서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하면 폴란드와 몰도바와 같은 나라들의 실업률은 두 배 이상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그리고 라트비아에서도 실업률은 이미 높다. 서유럽 국가에서 피난민들을 흡수하거나 우크라이나의 인접 국가에서 피난민을 위한 대규모 고용창출 사업을 하는 방법밖에 없어 보이는데, 기존의 정치적, 정책적, 제도적 걸림돌이 만만치 않다.

 

‘인간 탈출’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수십만명의 고급 인력이 러시아를 떠났다고 한다. 7만명 이상의 아이티(IT) 전문가도 탈출 행렬을 뒤따랐다. 떠나고 싶지 않지만 앞날이 불투명한 사람들도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로 온 이주노동자다. 그 규모가 엄청나서 수백만에 달하고, 그들이 자신의 나라에 보내는 송금은 국가경제의 근간이 될 정도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이주노동자의 송금액이 전체 지디피의 25%를 넘는다. 타지키스탄의 경우에도 16%에 달한다. 전쟁의 장기화와 러시아 경제의 악화가 겹치면, 이주노동자들이 ‘추방’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좌불안석이다.

게다가 전세계적으로는 연일 물가상승이다. 식품과 에너지 가격이 ‘거침없이’ 오르니, 그동안 힘겹게 얻어낸 임금인상의 효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득이 물가를 따라가기 어렵다. 개발도상국은 식량위기가 밀려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와중에, 선진국은 군비경쟁에 나설 태세다. 독일은 군비지출을 지디피의 2%로 올리겠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재정 규모는 유지하겠다고 하니, 다른 ‘긴요한’ 지출은 줄어들 판이다.

방위예산은 대표적인 ‘비생산적’ 항목이다. 군비지출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교육과 의료 분야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전쟁이란 살아남기도 힘들고 살아내기도 힘들다. 생존도 생계도 힘들다. 오스카 와일드가 어그러진 사랑에 빗대어 말했듯이, 전쟁이란 시작은 쉬우나 끝내기는 힘들고 그 끝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도 없다. 이 참혹한 불확실성의 비용은 어느 누구도 계산하기 힘들다.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