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가 총리·장관 하면 안된다
흔하게 보지만 계속 없는 척하기. 한국은 공식적으로 로비스트가 없는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로비 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유일한 나라이다.(2017년 국회입법조사처) 그런데 그리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형 로펌(법률회사)이나 국내외 대기업에 고문, 전문위원, 임원 직함으로 고용된 전직 고위 관료들. 총리·장관·청와대 인사 때면 ‘회전문’을 한 바퀴 돌아 나와 다시 공직을 꿰차는 그들. 이번 조각에서 총리나 장관 후보로 거론된 인물 중 여럿이 대형 로펌 소속이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부터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 4년4개월간 고문으로 일하고 19억7천여만원을 받았다. 능력이 우선이라는 윤석열 당선자는 이해충돌 우려나 도덕적 흠결은 눈감고 가자는 식이다. 문재인 정부도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이들은 로비스트이다. 주업은 내밀한 정보 알아내기. 10대 로펌에서 파트너로 일한 변호사는 말한다. “힘센 부처의 동향을 파악해 오길 기대한다. 현안이 있는 기업은 당국의 생각이 궁금하다. 알면 대책을 세울 수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로펌이 고민 있는 기업을 찾아가 ‘이번에 이런 분을 고문으로 모셔 왔다’고 마케팅하기도 한다.”
직전 대법원장까지 법정에 서게 된 ‘재판 거래’ 사건도 로펌에 몸담은 전직 관료가 물어 온 정보가 발단이 됐다. 일제 강제노역 배상소송에서 일본 전범 기업을 대리하던 김앤장에 2014년 11월 ‘중대한 정보’가 입수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인의 청구권이 살아 있는 것으로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도록) 조처를 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고문으로 있는 현홍주 전 주미대사(2017년 사망)와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청와대 동향을 알아 와 보고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김앤장이 청와대와 외교부를 ‘동원’해 대법원 재판부를 유리한 쪽으로 바꾸려 무리수를 둔 게 이 사건이다.
법이나 시행령에는 모호한 구석이 많다. 관료의 재량에 남겨진 이런 회색 지대가 로비스트가 운신하는 공간이다.
‘먹튀’ 논란으로 번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에서도 확인됐다.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애초 은행 인수 자격이 없었다. 다만 은행법 시행령에는 ‘부실 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예외 규정이 있었다. 외환은행은 부실 금융기관이 아니었지만, 당국은 잠재부실을 고려할 때 예외에 해당한다고 해석해 허가했다.
어이없는 일은 시행령 해석을 정부가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던 김앤장에 의뢰한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예외 인정 가능’이란 김앤장 검토 의견서를 비공식적으로 받아, 금융감독위원회에 같은 내용의 공문을 보내 인수를 허가해줄 것을 요청한다. 김앤장이 선수 겸 심판인 셈이다.
그 무렵 김앤장에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을 지낸 한덕수씨가 고문으로 있었다. 조심스러운 공무원들이 이렇게 과감히 움직인 게 우연이었을까?
대기업, 지급능력 있는 사람 편에서 로비스트가 일을 만들어갈 때,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눈물짓는다. 로비스트들이 “밥 먹자, 운동하자” 하며 후배에게서 알아내는 ‘고급 정보’는 공공재이지 사익 추구에 쓰일 게 아니다.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민주주의는 보이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관료, 법률가 등 보이지 않는 전문가 권력의 비대화는 민주주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론 규제가 많아 로비 수요가 있고, 당국에 민간의 입장을 설명할 창구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로비 활동의 투명성이라도 높여야 한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입한 것처럼, 공무원이 외부인 누구를 만나 뭘 했는지 즉각 소상히 보고하는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견제 장치는 로비스트가 바로 공직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받는 수억원의 연봉은 현직이 돌아가는 얘기를 해주고 부탁을 들어주기에 가능하다. 현직이 엄정하게 처신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들은 로비스트가 장차관으로 돌아와 내 인사를 좌우할까 두렵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영선 의원이 1급 이상 공무원이 로펌 등에 몸담은 경우, 퇴직 후 2년 이내에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세청장 등에 임명될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회전문 방지법’을 발의했으나 입법은 불발됐다. 172석의 민주당이 이런 법 제정에 힘을 쓰면 국민이 박수 칠 것이다.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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