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불복종을 위한 교육

道雨 2022. 4. 27. 08:56

불복종을 위한 교육

 

“어른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한국의 어른들은 절대 믿지 마세요. 그들은 여러분의 미래에 관심이 없습니다.”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요즘 자주 하는 말이다.

“어른들을 믿어서는 여러분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도 무책임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어른들처럼 젊은 세대에 대한 책임감이 박약한 이들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지난해 9월 독일 연방의회 선거와 올해 3월 한국 대선을 지켜보면서 더욱 굳어진 확신이다.

지난 독일 총선에서 가장 큰 정치적 쟁점은 생태, 기후변화 문제였다. 선거 뒤 이뤄진 조사를 보면, 전체 선거 쟁점 가운데 무려 46%가 생태, 기후변화 관련 이슈였다. 그 결과 선거의 최대 승자는 녹색당이었다. 한마디로 지난 독일 총선은 ‘미래를 위한 선거’였던 것이다.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 ‘미래 생명에 대한 책임’이 선거판 전체를 압도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대선을 돌아보라.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책임의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2세기는 오지 않는다’, ‘현재의 인류가 최후의 인류가 될 것이다’라는 생태적 묵시록의 준엄한 경고가 번져가는데, 한국의 어른들은 관심조차 없다. 기후·생태 문제는 티브이 토론 주제로도 오르지 못했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문제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여서가 아니라 미래의 비전이 없는 ‘과거 선거’였다는 점이다.

 

한국의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미래’에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고통에도 너무나 무감각하다. 한국의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프랑스의 권위지 <르몽드>는 한국의 교육을 집중 취재하고 나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학생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다. 한국의 교육이 가장 경쟁적이고, 가장 고통을 주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국영방송은 한국 ‘교육’을 취재하러 왔다가, 학생 ‘인권’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냈다. 한국의 교육은 ‘일상적인 인권유린이자 학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 지옥’이 계속되는데도, 교육 문제는 이번 대선에선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다.

 

대한민국이 젊은이들의 지옥이 된 것은 이처럼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기성세대 때문이다. 세월호의 비극은 전형적이고 상징적이다. 침몰하는 배 안에 아이들을 ‘가만히’ 남겨두고 자기들만 구조선에 오른 8년 전의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의 어른들은 파괴되는 지구와 망가지는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눈앞의 정치적 이해득실에만 골몰해 있지 않은가.

이제 더는 젊은 세대는 ‘가만히 있으라’는 복종의 명령에 굴복해서 안 된다. 복종의 노예도덕을 미덕이라고 가르쳐온 잘못된 교육을 따라선 안 된다. 세월호의 비극이 대한민국호의 비극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생태지옥, 입시지옥으로 몰아대는 세상을 향해 이제 젊은 세대는 확실하게 ‘아니요’라고 외쳐야 한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교육을 위해 불복하고, 저항하고, 분노하고, 비판해야 한다. 정치의 세계를 전복하고 정복해야 한다. 아버지 세대가 큰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의 광장에서 맘껏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 노예의 굴종을 걷어차고, 자기 자신을 자유인으로 해방하는 것, 이것이 한국의 젊은 세대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다.

 

이제 우리에게도 ‘불복종을 위한 교육’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히틀러 파시즘의 뿌리에는 복종 교육이 있었음을 깨달은 독일인들은 ‘불복종을 위한 교육’을 과거청산의 핵심 문제로 보았다. 어려서부터 학생들에게 비판교육, 반권위주의교육, 저항권교육, 선동가판별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한 결과, 오늘날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의식을 가진 국민이 되었다.

“복종의 문화를 깨부순 것이 독일 68혁명의 가장 중요한 업적”(페터 슈나이더)이었던 것이다.

 

‘불복종을 위한 교육’이 가장 필요한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단히 무책임한 어른들이 여전히 이곳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복종은 교육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다. 기성세대에게 불복하고, 저항하고, 대결하는 비판정신을 가져야만 야만적 경쟁교육을 넘어, 참혹한 생태지옥을 넘어,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고 건강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복종하지 않는 능력, 거짓 권위에 도전하는 능력, 사악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이야말로 이 거대 위기의 시대에, 이 대전환의 격변기에, 이 땅의 젊은이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