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측근) 비리

‘억울하다’는 정유라가 외면한 사실들

道雨 2022. 5. 9. 09:00

‘억울하다’는 정유라가 외면한 사실들

                 

* 정유라씨가 이화여대 1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2015년 7월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마장마술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필자는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한 특별검사팀에서 3년 가까이 일했다. 주로 최순실(최서원)씨의 딸 정유라씨 입시·학사비리를 수사한 팀에 있었고,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이와 관련한 재판을 담당한 실무자였다.

 

정씨는 ‘승마공주’로 알려졌던 체육특기생으로 한마리에 수억원을 호가하는 명품 말을 탔으며, 별다른 경쟁 없이 국내 여러 대회에서 입상했다. 경쟁자에게 밀려 2위를 차지한 2013년 상주 승마대회에서는 “정유라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투서가 접수돼, 경찰 수사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조사까지 이뤄졌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문체부 조사를 총괄한 노태강 당시 체육국장은 ‘나쁜 사람’으로 지목돼 공직생활을 접어야 했다.

정씨는 고3 시절 출석일수가 50일가량에 불과했지만, 승마협회를 통해 훈련에 참여한다는 허위 봉사활동확인서 등을 제출하고 졸업할 수 있었다.

2014년 가을 이화여대 입시 면접 때는 사전에 “총장이 뽑으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면접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아 승마특기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 뒤에는 교과목 담당 교수가 과제를 대신 하거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하면서까지 학점을 받아줬다. 정씨에게 학사경고를 한 교수는 지도교수에서 배제됐고, 첫 학기 0.11에 불과했던 정씨 학점은 다음 학기부터 수직 상승했다. 수강신청을 비롯한 정씨의 모든 학사관리를 도우며 교수들과 연락을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을 정도다.

이는 학교에 다니며, 과제를 하며, 도서관에서 밤새워 공부해 학점을 받는 수많은 평범한 학생을 비웃는 삶이었다. 정씨는 이화여대에 합격한 뒤인 2014년 12월께 에스엔에스(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란 글을 올려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이 모든 배후에는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로 알려진 그의 부모가 있었다. 또한 이 대학 총장과 단과대 학장이 교과목 담당교수들에게 학점이 잘 관리되도록 지시한 조직적인 교내 ‘권력형 비리’도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드러났다. 특검이 기소한 최순실과 이화여대 교수 등 9명 모두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최순실씨 1심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급기야 삐뚤어진 모정은 결국 자신이 그렇게 아끼는 자녀마저 피고인의 공범으로 전락시켰다. 자녀를 위해 많은 사람이 원칙과 규칙을 어기고, 공평과 정의를 저버리도록 만들었다. (…) ‘빽도 능력’이라는 냉소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마저 우리 사회에 생기게 했다.”

당시 정씨는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특검 수사기간 동안 유럽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정씨는, 특검 수사가 끝난 뒤인 2017년 덴마크에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다.

 

여기까지가 국정농단 사건에서 정씨 관련 부분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최근 정씨가 “검찰 단계에서 기소유예 처분으로 사건이 종결됐다”며, 자신에게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고소했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특검에 이은 검찰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도 불구하고 밝혀지지 않은 여러 의혹이 있었고, 반대로 일부 의혹이 부풀려지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상처를 입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기소유예’란 죄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을 참작해 검사의 재량으로 기소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구속기소된 어머니 최순실씨가 대법원에서 징역 21년이 확정된 만큼, 연관된 혐의로 부모와 자녀를 함께 엄벌하지는 않는 관행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들이 ‘부모 찬스’를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정씨가 갑자기 등장해 억울함을 호소한 게 국회 검증의 잣대를 낮추지 않을지 우려된다. 정씨의 입시·학사비리 사건은 이른바 ‘부모 찬스’ 논란의 대명사이면서도, 엄연한 불법행위로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일어서게 한 도화선이었다. 법적인 처벌은 피했을지 몰라도,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불법적인 특혜를 받아 생활해왔던 만큼,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남아 있지 않을까.

 

오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다. 앞으로 어린이들이 자라나 이끌게 될 이 사회와 교육제도가 좀 더 공정해지길 바란다. 같은 이유로 윤석열 정부의 첫 인사청문회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백민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