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경찰이 왜 독립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나

道雨 2022. 6. 16. 11:07

경찰이 왜 독립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나

 

윤석열 정부의 기본 방침이 ’에이비엠(ABM, Anything But Moon · 문재인 정부 정책을 모두 뒤집는다는 뜻)이라고 해도,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부활하겠다는 구상을 보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역사의 경험을 손쉽게 무시하고 지금의 문제를 퇴행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의 극치로 읽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 권한의 확대에 따라 경찰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결과로 경찰은 60여년 만에 1차 수사권을 갖게 됐다. 또 앞으로 예정대로라면, 물론 이것도 뒤집힐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 권한이 2024년 1월 경찰로 넘어오게 된다.

이에 대응해 경찰청은 국가수사본부를 설치해서 정치적 중립과 독립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과연 그에 걸맞게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찰 권한 확대가 국민 신뢰에 기반해서 이뤄진 게 아니라, 검찰의 힘을 빼기 위한 방편으로 추진된 측면이 큰 탓이다. 그 점에서 경찰을 제대로 통제하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 방향이 30여년 전 폐지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경찰국의 부활이라니, 거꾸도 가도 한참 거꾸로 가는 처방이다.

현재 전선은 경찰의 과도한 권한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행정안전부와 이에 반발하는 경찰 사이에, 또는 경찰보다 검찰에 힘을 싣는 윤석열 정부와 검찰 권한을 제어하려는 민주당 사이에 그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게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막강한 권한의 경찰을 정치권력이 통제하느냐 아니면 국민과 시민사회가 통제하느냐가 논란의 본질이다.

14만 경찰력을 정부, 곧 정치권력이 통제할 때 그건 ’통제’가 아니라 ’지휘’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질서와 안전을 내세워도 정권의 경찰 지휘가 시민 기본권을 어떻게 유린하고 권력 입맛에 맞게 수사와 정보 수집을 변형시켰는지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보여준다.

검사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은 ’칼의 위험성은 누가 칼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경찰을 통제하면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싶다. 그러나 그 칼이 얼마나 권력의 이해에 흔들리는지는, 윤 대통령 자신이 수사하고 구속한 전직 대통령을 스스로 사면하려 애쓰는 데서 이미 충분히 드러난 거 아닌가.

1948년 정부수립 직후 내무부 산하기관으로 경찰이 출범했을 때 미 군정청 경무부장을 맡았던 조병옥은 “지금 남조선의 사태는 정상적이 아닌 것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며 “중앙집권제의 강력한 경찰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옹호했다. 하지만 당시에 꼭 그런 의견만 있었던 건 아니다. 경무부 차장을 지낸 변호사 최경진은 <조선일보> 기고에서 “해방 후 혼돈된 사회를 정리하겠다는 공은 매우 크지만 ‘치안 치안’하는 구호로 인권을 유린하며 치안 지상주의로 나갔다. 경찰권력은 민중을 위한 치안이 되어야 하고 민중의 공복이란 뚜렷한 지도이념을 내세워 치안과 인권 옹호가 평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전두환 정권까지 경찰 역할이 조병옥의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면, 1991년 경찰청을 내무부 외청으로 독립시키고 형식적이나마 경찰위원회 통제를 받게한 건 최경진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경찰위원회 통제가 부실하다면 그걸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지, 다시 정부 통제와 지휘를 받도록 하겠다는 건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다. 그런 시대착오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멀리 가지 않고 박근혜 정부만 돌아봐도 알 수 있을 터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국 부활이 경찰 독립성을 해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정치적 중립은 모든 공무원이 하는 건데 왜 경찰만 독립을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공무원이 경찰처럼 수사를 하고, 정보 수집을 하고, 공공 안전을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이런 행동에 정치적 이해가 개입하는 순간, 경찰의 힘은 언제든지 국민을 향한 비수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게 과거의 경험이고 교훈이다.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고 한다,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행이 비극이었다면, 지금 윤석열 정부의 모습은 희극인 걸까. 이상민 장관의 발언을 들으면, 지금 상황이 희극처럼 보여도 결과는 잔인한 비극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박찬수 | 대기자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