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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보는 대통령”의 가벼움, 나토 초청장의 무게

道雨 2022. 6. 17. 08:47

“처음 해보는 대통령”의 가벼움, 나토 초청장의 무게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는 특별한 ‘파트너’들이 초청장을 받았다. 나토 30개 회원국 외에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뉴질랜드 정상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스웨덴과 핀란드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정상 최초로 나토의 공식 초청을 받아 참석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에서는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지, 김건희 여사가 동행할지에 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번 회담의 무게는 훨씬 무겁다.

이번 정상회의는 1949년 소련에 대항해 창설된 이래 유럽 안보에 집중해온 나토를, 러시아와 중국 ‘2개의 위협’에 대응하는 ‘글로벌 나토’로 변화시켜 나가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나토의 새 전략개념이 채택될 예정인데, 나토의 군사 태세를 강화하는 것과 활동 범위를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6월 나토는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동시에 견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중국이 계속 감싸면서, 중국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경계감이 더욱 높아졌다. ‘강군몽’을 내걸고 군사력을 강화해온 중국이, 대만 무력 통일에 나설 가능성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

 

지금 국제질서를 둘러싸고 세 가지 흐름이 부딪치고 있다.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를 규합해 중국 견제·포위망을 겹겹으로 짜고 있다.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와 오커스(미국, 영국, 호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을 출범시켰고, 한·미·일 군사 협력과 나토의 역할 강화도 추진한다.

이에 대항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월 글로벌안보제안(全球安全倡議)을 내놓았다. 내정불간섭, 주권 존중·영토보존 원칙을 강조하면서 미국 일방주의에 대항하겠다고 한다. 중국, 러시아, 북한의 공조를 다지면서,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남아공) 협력을 강화하고, 남태평양·중앙아시아·남아메리카·중동에서 중국 편에 설 국가들을 최대한 규합하려 한다.

이 두 진영 사이에서 국토의 크기나 석유 에너지 자원의 영향력을 이용해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인도나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있다. 요동치는 국제 정세의 끝에서 어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 전반이 흔들리고 있고, 잘못 대응할 경우 대혼란 또는 세계대전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다.

 

* 15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루마니아를 방문한 가운데 나토군 병사들이 콘스탄차 인근 군 기지에서 사열을 기다리고 있다. 콘스탄차/EPA 연합뉴스

 

민주주의 체제의 수출 주도 제조업 강국이라는 한국의 정체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강화라는 도전을 고려하면, 한국이 세 가지 흐름 가운데 미국 주도의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지난해 “한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기는 외교’만으로는 더이상 어려운 시대가 오고 만 것이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미국의 대전략과 일체화된 듯 보인다. 한국의 능력과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한 고유한 전략과 신중함이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에 “국민이 중국을 싫어한다”고 혐중 정서를 자극했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쿼드 내의 미묘한 세력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쿼드에 가입하겠다고 나섰다가 “지금으로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답을 받았다. 이번 나토 정상회담 참석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보다 닷새나 앞서 서둘러 발표했다.

 

미국은 중국·러시아와의 경쟁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규정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국내에서 억압적 통치를 강화하고, 국제적으로는 ‘제국의 복원’을 염두에 둔 강대국 중심의 위계적 질서를 추구하는 부분을 분명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중간선거와 대선 등 국내 정치 변화에 따라 동맹을 방어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이 흔들리지 않을지도 묻고 점검해야 한다.

한국은 국제질서의 혼란을 막고, 한반도와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지 않도록 역할을 하되, 미-중 사이에서 완충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최근 중국 외교관들은 한국과의 회의에서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비난하고 북한과 러시아를 옹호하며, 한국이 대만 문제에 간섭하지 말고, 미국 전략핵무기를 들여와서는 안된다는 요구를 “북한 아나운서가 성명을 읽듯” 하고 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친미 외교에 대한 중국의 경직된 대응이다.

‘중국이 보복을 할 것인가’라는 두려움에 얽매여 한국이 할 일을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어려움이 예상되는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고 만일에 대비할 방안은 더욱 철저해야 한다. 미국통 일색의 외교안보팀에 중국통 전문가들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세계 6위 군사력,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 나토와의 안보 협력에 나서는 것은, 국제질서의 균형추를 바꾸는 역사적 무게가 있다.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라는 경솔함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박민희 | 논설위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