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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삼춘은 바당에서 무사 법이 됐수꽈?

道雨 2022. 6. 23. 09:34

춘희삼춘은 바당에서 무사 법이 됐수꽈?

 

                                     * 티브이엔(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중 해녀 춘희삼춘(고두심)의 물질 전후 모습.

 

잔잔한 감동을 전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옴니버스에 맞게 다양한 감흥을 던져줬다. 그중 ‘춘희삼춘’(고두심)이 되새김질됐다.

춘희삼춘은 토속적 옛 할머니지만, 현대적 조직에 필요한 리더십 요건을 다 갖춘 듯하다. 제주 바다마을 푸릉의 왕삼촌 해녀인 춘희삼춘은 ‘나를 따르라’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위세를 떨지 않는다. 그렇지만 거친 해녀들이 모두 “바다에선 춘희삼춘이 법” “나는 무조건 삼춘만 따를 거야”라고 한다.

무엇이 그를 이리 만들었나. 역사다.

춘희삼춘은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을 바다에서 구해냈다. 그의 덕을 입지 않은 이가 없다. 춘희삼춘에 대한 믿음은 오랜 현장 경험, 여전히 탄탄한 실력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70 나이인데도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춘희삼춘이 다 구해줄 거라” 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또 실력 없이 마음만으로 신뢰를 줄 순 없다.

병아리 해녀 영옥(한지민)이 전복 욕심을 부리다 그물에 발이 걸려 죽을 위험에 처하자, 그를 구하러 혜자(박지아) 해녀가 들어갔다가 그가 그물에 걸리자, 춘희삼춘이 다 끊어내고 모두 물 위로 올려준다. 마치 “단 한명도 내 뒤에 남겨놓지 않겠다”고 병사들에게 말한 베트남전 용사 핼 무어 중령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권위는 희생에서 나온다.

그러면서도 규칙을 어겨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 영옥에게 “개 같은 게”라는 상욕을 해대기도 하고, “내일부터 물질 나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아닌 엄격한 리더십이다. 그러면서도 12살 때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영옥의 말에 흠칫하며, 금세 눈빛이 노여움에서 가여움으로 바뀐다. 엄정하되 연민한다. 둘 다 쉽지 않다.

춘희삼춘은 또 ‘육지 것들은 (해녀로) 받음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해녀학교를 받아들였다. 변화의 흐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오랜 리더는 늘 녹을 닦아야 한다.

 

마지막 회, 어머니가 숨진 자리에서 동석(이병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춘희삼춘에게 전화하는 것이다. 울음이 터질까 봐 입술도 못 떼며 “삼춘, 춘희삼춘, 저 동석이여”라며.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다. 땅이 꺼지는 놀라움과 슬픔 속에서도 당황치 않고, 남들에겐 자신이 연락할 테니, “넌 어멍(어머니) 옆에 고만(가만) 있시라”라고 정확하게 ‘지시’하며 상황에 대처한다. 나 울음은 그다음이다. 며느리에게 “의사가 (의식 없는 아들) 맹줄(명줄) 떼자고 하면 떼라이”라고 냉정히 말할 때도 그랬다.

춘희삼춘은 어찌 이리될 수 있었을까. 상처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신 이추룩 더러운 팔자”라 하듯 남편과 아들 셋을 잃었고, 친구들도 숱하게 바다에 잃었다. 그 거친 팔자 때문에 위기 국면에서 어찌해야 하는지, 뭣부터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겪지 않은 리더, 아픔 없는 어른에겐 마음 주기 힘들다.

그리고 춘희삼춘에게 옥동(김혜자) 언니가 있다. 강하디강한 춘희삼춘도 옥동 언니에게는 “언니 죽으면 나도 언니 따라갈 거라”며 우는 아이가 된다. 춘희삼춘에게도 언니가 필요했나 보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언론사 리더십 진단과 평가>(김영주·송해엽·정재민)라는 연구서를 펴냈다. 그 안에 대표, 편집국장, 부장 등 10명의 각 언론사 리더들의 익명 인터뷰가 있었다. 회사는 달라도 고민의 색깔은 비슷했다.

“의사 결정과 판단의 주기가 굉장히 짧고 많다.” “세대·젠더 문제가 얽히면서 잠재적 갈등 요소도 많아졌다.” “배의 방향을 트는 것처럼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건 조직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멀리 보고 조금씩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에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평온이 계속되면 시간이 갈수록 조직 분위기가 시니컬해지고 불안해지는 현상을 여러번 목격했다.” “요즘 국장들의 능력이나 자질이 옛날에 비해 형편없어져서 그런 걸까? 아니다. 갈수록 요구되는 역할이 쌓여만 가는 ‘미션 임파서블’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한 사람씩 올렸다 흔들어 떨어뜨리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리더십을 길러주기에 앞서 이런 불가능한 조합부터 손봐야 한다.”

 

뉴스룸은 일반 기업과 달리 경영 이득이 아닌 저널리즘을 우선 구현해야 한다. 동시에 성과를 내야 한다. 또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은 독자성이 강해 납득하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 경향이 많다. “어떵해도 하자느냥 할 거라”(어떻게 해도 하자는 대로 하겠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춘희삼춘은 뉴스룸엔 없다. 춘희삼춘 없이도 “해녀는 한 몸이라”는 ‘푸릉’을 구현해내는 게 드라마 밖 뉴스룸의 숙제다.

 

 

권태호 | 저널리즘책무실장 겸 논설위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