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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상품(商品)인가 공공재(公共材)인가

道雨 2022. 6. 14. 09:41

교육은 상품(商品)인가 공공재(公共材)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교육부의 첫번째 의무는 산업 인재 공급”이라며 “교육부가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재공급이 교육부의 첫 번째 임무다. 잠재성장력 제고를 위해선 인재양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교육부가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면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과학기술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대통령이 평소 ‘자유’니 ‘시장경제’를 강조해 친자본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에 취임한지 한 달도 채 안 돼 노골적으로 ‘교육상품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학교가 길러내겠다는 인간상은...?>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 2조는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이러한 목적은 1945년 미군정 하에서 ‘조선교육심의회’에서 교육이념을 다루면서, 고조선의 건국신화에서 홍익인간이라는 말을 끌어내어 교육이념으로 삼게 되었는데, 그 후 1948년 미군정이 폐지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다시 「교육법」이 제정되었을 때 「교육법」 제1조의 교육이념으로 확립하게 되었다.

<‘인재(人才)’인가 인재(人材)인가?>
 
인재(人才)란 “‘재주가 아주 뛰어난 사람(人才)’, 혹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어딘가에 공헌하는 사람(人材)’을 뜻한다. 후자의 인재(人材)란 ‘업무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자구적으로 해석하면 「人」은 사람이 팔을 뻗치고 서 있는 옆모습을 본뜬 글자로 人類(인류), 人品(인품) 등에 쓰이고, 「材」는 나무 목(木)에 바탕 재(才)를 짝지어 놓은 글자로, 집을 지을 때의 바탕이 되는 나무 즉 “재목”을 뜻하고, 나아가 “재주”의 뜻으로도 쓰이며, 材料(재료), 木材(목재) 등에 쓰인다. 윤석열대통령이 말하는 ‘인재(人才)란 제목을 뜻하는 인재(人材)에 가깝다. 윤대통령은 왜 학교가 헌법 10조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존재가 아닌, 材料(재료)나 食資材(식자재)처럼 소모품을 길러내야 한다고 하는가?
 
학교가 길러낼 인간상이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교육,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교육이 아니라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재(人材)라니... 사람이 자본의 소모품인가? 백번 양보해 국제경쟁력시대 산업발전에 필요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인재(人材)라고 할 수 있는가?... 윤대통령의 교육관이 아니더라도 7차교육과정은 수요와 공급으로 자본이 필요한 인재(人材)로 보고 있다. 상품은 수요자가 대가를 지급한 반대급부로 받는 상품인데 왜 자본이 필요한 인재(人材)을 수요자가 학비를 부담해야 하는가?

<교육을 상품으로 규정한 7차 교육과정>
 
우리나라는 1954년 1차 교육과정 고시를 시작으로 총론만 9차례 개정했다. 그나마 1997년 말 고시된 7차 교육과정까지는 1~7차로 ‘차수’를 구분하며 적어도 5년 정도는 기간을 뒀다. 그러다 2007년 개정부터는 아예 교육과정 명칭에서 차수를 빼고 ‘년도’로 표기했다. 명목상으론 ‘수시 부분 개정’이지만 사실상 짧게는 2년 단위로 ‘수시 전면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또 바뀌는 교육과정. 2009 교육과정이 길러내겠다는 인간은 ‘글로벌 창의 인재’였고, 2015 교육과정의 비전은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었다. 대한민국 교육기본법은 홍익인간이나 자주적 생활인, 민주시민 등을 ‘교육이념’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기본법에도 없는 인재상이 명멸하고 여기에 맞춰 교육과정 개정을 개정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교육기본법은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한다.”고 했는데... 학교가 길러낼 인간상이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교육,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교육이 아니라 왜 자본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가? 놀랍게도 2001년 2001년 1월 29일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여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확대·개편하면서. 정부조직법 제28조(교육부) ①항에는 “교육부장관은 인적자원개발정책, 학교교육ㆍ평생교육, 학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부로 바꿨지만 학교는 역시 인재를 길러내는 ‘인적자원개발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교육개혁의 핵심이 ‘산업인재 양성’...?>
 
중앙대 김누리교수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해 “우리나라 교육은 비교육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교육에 가까웠다. 지난 100년 동안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교육,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 30년 일제시대는 황국신민을 기르는 것을, 해방 후 40년 독재 시대는 반공투사 혹은 산업전사를 키우는 것을, 30년 민주 시대조차 ‘인적자원’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일제의 제국주의 교육, 독재 정권의 국가주의 교육, 민주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으로 점철된 한국 교육 100년은 그대로 반교육의 역사였다.”였다며 “사람을 위한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교육다운 교육을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인간을 자본이 필요한 소모품으로 보는 교육관으로 어떻게 헌법과 교육기본법이 기르겠다는 인간을 양성할 수 있겠는가?

 

 

[ 김용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