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우영우 ‘팰린드롬’의 메타포

道雨 2022. 7. 27. 09:29

우영우 ‘팰린드롬’의 메타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처음 보는 상대 누구에게나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곧바로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같은 낱말을 나열한다.

이처럼 어느 쪽에서 읽어나가도 배열이 같은 경우를 고릿적부터 서양에서는 ‘팰린드롬’(palindrome)이라 했고, 한자권에서는 ‘회문’(回文)이라고 했다. 사례를 찾아보면 차고 넘친다.

 

극 중에서 우영우는 단순명사만 제시하는데, 범주는 그보다 훨씬 다양하다. ‘내 아내’와 ‘다들 잠들다’처럼 구나 절, 문장이 될 수도 있다. 소릿값이 같아도 문자에 따라 팰린드롬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스웨덴 혼성그룹 ‘아바’는 팰린드롬이 아니지만, ‘ABBA’는 팰린드롬이다. 음소를 조합해 음절 단위로 표기하는 한글과 달리, 로마자는 음소 단위로 표기하는 데서 오는 차이다.

 

팰린드롬은 노래 가사나 시로 구현되기도 한다. “아 많다 많다 많다 많아/ 다 이쁜 이쁜 이쁜이다/ 여보게 저기 저게 보여/ 여보 안경 안 보여.” 그룹 슈퍼주니어의 <로꾸거>는 모든 가사 구절마다 팰린드롬을 활용한 언어유희의 종합판 같다.

고려시대 문필가 이규보의 8행시 ‘미인원’은 끝에서부터 글자 순서까지 거꾸로 읊어도 뜻이 통하는 ‘회문시’다. 이를테면 맥락적 팰린드롬이다.

 

날짜도 팰린드롬의 소재다. <비비시> 보도를 보면, 2020년 2월2일은 전세계의 수학을 좋아하는 괴짜들이 정한 ‘팰린드롬의 날’이었다. 이날은 문화권이나 나라 따라 각기 다른 표기 순서(연도-월-일/ 월-일-연도/ 일-월-연도) 가운데 어느 순서로도 팰린드롬이 성립한다. 이런 날은 자주 오지 않는다. 역사상 전례로는 1111년 11월11일이 있고, 가장 가까운 미래는 2121년 12월12일이다. 살아서 두번 맞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영우>의 팰린드롬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 흥미만을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다만 드라마 시작과 함께 ‘특정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하다’는 자막이 뜰 때, 시청자는 청개구리가 되기 마련이다. 우영우와 가운데 이름 초성 하나 다른 전 민정수석만을 이르는 게 아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 사회적 약자들에 관한 ‘역지사지’의 메타포가 이 드라마에는 차고 넘친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