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비전 없는 보수 정치의 민낯

道雨 2022. 7. 27. 09:35

비전 없는 보수 정치의 민낯

 

 

윤석열 대통령 취임 두달 만에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율이 30%로 추락했다. 정당 지지율도 더불어민주당이 상당히 앞선다. 임기 초에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더구나 특별한 사건이나 큰 실정(失政)이 없었는데도 이렇다는 것은, 정권 전반의 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10년이 탄핵으로 끝나고 두 전직 대통령이 법정의 심판을 받은 역사의 맥락에서, 현 정권이 반복할 조짐을 보이는 위험들이 있음을 우려한다. 아직 윤석열 정부를 규정하기엔 이르지만,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경계하는 것은 나라와 국민에게 중요하다.

첫째는 국민 여론과 불통 위험이다. 인사 불공정, 북풍몰이, 민생정책 부재 등을 비판하는 국민 여론을 경시하는 태도는 상황을 악화시킨 주원인이다. 정치는 여론만 좇아선 안 되지만,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하고 다수가 반대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멈추지 않고 달리면 걸려 넘어진다.

둘째는 강권 정치의 위험이다. 연일 뉴스에 ‘엄중’, ‘단호’, ‘칼 빼든’ 검찰 소식이다. 이명박 정부 때 검찰이 정치의 수단이었고, 박근혜 정부 때는 국정원과 군이 그러했다. 국가 강제기구를 동원하여 힘으로 누르고 겁박하는 정치는 그만큼 강한 집단적 저항을 초래했다.

셋째는 측근 정치의 위험이다. 박근혜 정부 때 ‘문고리 삼인방’, ‘정윤회’, ‘최순실’(최서원), ‘친박’, ‘진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 ‘윤핵관’이라는 말의 존재 자체가 불길한 징후다. 이렇게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면 부패하고, 통치 참여 집단이 극히 좁아져서 넓은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

넷째는 권력의 사유화 위험이다. 권력이 소수에 독점되면 권력 핵심인물들과 사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공적 지위를 획득하는 일이 잦아진다. 대통령의 인생 친구, 영부인의 옛 동업자, 대통령 측근의 친척 등 ‘지인 정치’의 정실주의가 대의정치, 법치, 관료적 합리성을 모두 밀어낸다.

다섯째는 기득권 편향의 위험이다. 고소득·고자산층 감세, 부동산 탈규제, 기업을 위한 노동정책 등은 모두 힘 있는 자를 위한 정치다. 저소득층 지원, 비정규직 보호, 세입자 주거안정, 지역격차 완화 등 사회통합에의 따뜻한 관심이 안 보인다. 이런 편향은 민심의 분노를 누적시킨다.

 

하지만 이전 보수정권들과도 구분되는 윤석열 정부의 최대의 결함은, 대선 때도, 인수위 때도, 출범 후에도 그 어떤 국정철학과 미래의 비전도 제시한 바 없다는 사실이다. 이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없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안티테제가 유일한 정체성처럼 보인다.

무엇이 문제였나? 윤석열 대통령 개인이나 ‘윤핵관’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보수 정치가 탄핵 이후 어떠한 반성과 혁신도 없었다는 사실이 문제의 근원이다. 5년 동안 보수 정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문재인 정부보다 더 나은 정치를 준비하지 않았다. 정권교체를 이룬 지금, 이제는 비전 없는 보수 정치의 민낯을 숨길 수 없다. 정권 초에 보수 핵심 지지층이 이탈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무능에 대한 실망의 표현 아니겠는가?

보수의 새로운 정치엘리트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선에선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 출신들에게 의탁했고, 우익 청년들이 여성, 장애인,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혐오정치도 묵인했다. 보수는 품위와 고귀함을 잃었다. 사회적 화합, 겸손과 포용, 약자에 대한 존중, 나라의 미래에 대한 책임 같은 존경스러운 가치로 공동체의 난관을 극복하는 보수 정치를 지금 기대할 수 없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감염병 위기로 세계가 공포에 휩싸인 것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핵전쟁과 3차 대전 발발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세계적인 물가 상승과 식량위기가 확산되고 있고, 유럽에 40도가 넘는 폭염이 닥치면서, 기후위기가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이미 도래한 재난임을 절감케 했다.

이처럼 보건, 경제, 군사, 환경 등 지구적 복합위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인류를 거대한 재난으로 끌고 가고 있다. 세계의 정치지도자들과 각계 전문가, 당사자들이 이 긴박한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재난은 자비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시간은 멈춰 있다. 변화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