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취임 100일도 안 된 대통령의 비극

道雨 2022. 8. 2. 10:38

취임 100일도 안 된 대통령의 비극

지지율 28% 자처한 '대통령의 품격'

 
 

"한 이틀 고생하셨네."

위로였을까 격려였을까. 이른바 '내부 총질' 문자 파문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건넸다는 말이다. 두 사람은 대선 전부터 친분을 자랑해온 오랜 친구 사이다. 이 사적 관계는 권성동 대행이 '윤핵관'이 된 근간이다.

복수의 매체가 보도한 대로, 28일 정조대왕함 진수식 참석차 울산 현대중공업과 서울을 오간 대통령 전용기에서 나눴다는 이 대화를 언론에 전한 이는 동석한 국민의힘 관계자였다.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상된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권 대행에게 농담도 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다 같이 잘하자"며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해당 관계자는 단순히 취재에 응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러한 위로나 덕담 자체가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애초 논란의 출발은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는, 대통령의 부적절하고 품위 없는 문자 내용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격려가 맞았던 것 같다. 다음날인 29일 오전, 국민의힘 배현진 최고위원은 직을 내려놓았고, 배 최고위원을 포함한 초선 의원들 사이에선 당의 '비대위 체제'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내 '이준석 축출' 움직임이 구체화되는 형국이다.

언론에 문자 내용이 공개된 권 대행의 의도는 차치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이준석 당 대표 징계 및 축출에 힘을 실었다는 분석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대선 전부터 충돌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과거 등 일련의 과정으로 미루어 볼 때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한 이틀 고생하셨네"란 격려마저도 '내부총질=이준석 축출'이란 대통령 의중의 연장선상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리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문자 파문' 해명에 나선 대통령실은 "사적 대화 유출"에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는 "국민과 언론의 오해" 운운하며 '남 탓'을 했다. 이와 달리 대통령의 말과 글은 그 자체로 한 국가의 품격과 동일시된다. 그 한마디의 파장과 무게를 가벼이 여기는 국민들은 없다.

비극은 아직 취임 100일도 안 된 대통령의 한없이 가볍거나 공허한 말과 글 그리고 그 '품위 없음'이 대통령 개인의 문제도 아닐뿐더러 예견돼 왔음에도 끝없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실언은 지엽일 뿐 
 
윤 대통령 지지율 폭락의 원인 중 하나로 주요하게 꼽히는 것이 바로 출근길 문답이다. 건들건들한 자세 등은 개인의 습관이라 치자. 하루가 멀다고 "전 정권 탓"을 일삼는다.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는 어록도 탄생했다. 주요 현안을 '패싱'하기 일쑤다. 그마저도 내키지 않으면 중단한다.

실언만이 아니다. 국민들이 졸지에 매일 카메라 앞에 선 대통령의 태도 및 자세를 검증하게 됐다. 이를 두고 <한겨레21>은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을 빌려 윤 대통령이 "아침마다 기자들 만나는 걸 낙으로 생각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논란을 자처하고 지지율을 까먹은 것이 윤 대통령 본인임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들도 윤 대통령의 이런 실언에 익숙해졌다. "주 120시간 노동", "저출산 원인은 페미니즘의 정치적 악용", "전두환,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 등등 대선 후보 시절 그의 입은 논란 제조기라 불릴 만했다. 그리고 그 발언들이 집권 직후 고스란히 정책에 반영되는 중이다.

최근 윤 대통령은 "여가부 폐지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 도저히 대통령이 여당 권한대행에게 보낼 만한 표현이라 여겨지지 않는 "내부 총질"이란 문자 또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적 신뢰를 잃기 마련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말과 글에서 정부의 국정철학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계속되는 중이다.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언론과는 긴장 관계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매달리는 것이 '대국민 홍보'다. 김건희 여사가 지속적으로 논란을 자처하면서도 '인스타그램 정치'에 매몰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지지자들에게 '좋아요'를 받고, 우호적인 언론이 쏟아내는 단발성 기사가 여론의 전부라고 여겨선 곤란하다. 김 여사가 소셜 미디어에 전시하는 명품 의류나 우아한 일상을 '영부인의 품격'과 동일시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나. 많은 국민들은 대선 전 공개됐던 <서울의 소리> 녹취록 속 김건희 여사의 목소리와 거침없는 주장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문자 파문'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인 '윤핵관' 권성동 대행은 어떤가. 사적 채용 의혹을 해명하며 쏟아낸 연이은 실언은 국민들에게 오만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윤핵관' 쌍두마차라 할 수 있는 장제원 전 당선인 비서실장이 18일 양자 회동에서 "말씀이 거칠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막중한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라며 저격에 나섰을까.  

여기에 극우 정당을 이끌며 과격한 주장과 막말을 일삼던 정치인이 권 대행 의원실에서 일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권 대행은 자신은 몰랐다는 취지로 "대통령실이 추천했다"고 해명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대통령실의 추천 자체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실이 명명백백 밝혀야 할 사안이다. 

아울러 문자 파문의 출발이 이준석 대표 성상납 의혹이었다는 사실도 암담하긴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위시해 현 집권여당이 자랑 중인 '통치의 품격', '정치의 품격'이 이 정도다. 

 
 
예견됐던 지지율 참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까지 적대적인 언론이나 야당이 덧씌운 '막말 프레임'에 시달려야 했다. 때로 과한 발언도 없진 않았으나 소신 발언이나 국정 철학을 설파하는 언어조차 막말이란 프레임에 휩싸인 측면이 크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와중에 자주 소환된 2003년 '검사와의 대화' 현장 발언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의 경우는 그 반대다. 취임 100일도 되기 전에 우호적인 언론들조차 실언 및 불통, 독선을 지적하고 나섰다. 오롯이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스스로 불러온 난맥상이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언론들도 우려를 표명 중이다. <조선일보>조차 28일 "경제 안보 위기인데 평지풍파만 일으키는 정권"이란 사설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예견된 참사가 현실화됐다. 29일 대통령 지지율 부정 평가가 28%를 돌파했다(한국갤럽 지난 26~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조사, 응답률 11.1%). 일반적으로 20% 지지율은 레임덕 수준으로 평가된다. 다수 여론조사 추이로 볼 때 문자 파문이 30%를 간신히 유지하던 지지율에 결정타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아랑곳없이 윤 대통령은 이날 '경찰국 신설' 논란을 염두에 둔 듯 일선 경찰서를 찾았다. 취임 100일도 안 돼 피로감을 넘어 절망감을 호소 중인 국민들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현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의 다음 주요 일정은 여름휴가다. 언론 노출이 최소화되고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과 글을 최대한 접하지 않는 기간이다. 이 여름휴가가 과연 윤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그게 바로 민심의 바로미터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