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세기말의 귀환?

道雨 2022. 8. 10. 10:47

세기말의 귀환?

 

 

 

 

 

요즘 들어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흔히 쓰인다. (구)냉전의 주요 참전국인 미국·중국·러시아가 다시 벌이는 패권 싸움이기에, ‘냉전의 귀환’과 같은 방식으로 개념화하기 쉬워서일 것이다. 한데 사실 ‘신냉전’이라는 말은 어폐가 심하다.

 

과거 냉전은 어디까지나 러시아혁명(1917년)과 중국혁명(1949년)의 연속이었다. 즉, 미국/서방의 반대쪽에 섰던 국가들은 고전적 자본주의와 다른 ‘대안적 근대’를 명분 차원에서나마 추구했다. 게다가 그들은 구미권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나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자급자족을 추구했다.

 

한데 오늘날의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대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율(37%)이 미국(24%)보다 높다. 그리고 중국 언론의 반미 선동이 아무리 심해도, 중국 수출품의 17%나 사주는 중국의 최대 해외시장은 여전히 미국이다.

중국식 일당제 국가는 대기업에 의한, 대기업을 위한 미국식 양당제 민주주의 국가와는 물론 다르지만, 그 차이는 ‘자본주의’라는 공통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냉전의 귀환’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소위 세기말, 즉 고전적 제국주의의 황금기였던 1870~1914년의 귀환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금이 미국 패권이 흔들리고 있는 시기라면, 1870~1914년은 영국 패권이 저무는 시대였다. 패권국가였던 영국보다 그 패권에 도전하는 독일의 국내총생산이 이미 1910년쯤에 더 컸던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상황에서는, 도전 국가인 중국이 위기의 패권국가인 미국의 명목상 국내총생산을 2030년쯤이면 추월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데 오늘날의 중·미처럼,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둔 영·독도 긴밀한 무역·투자 관계를 맺고 있었다. 오늘날 중국 수출의 17%가 미국으로 가듯이, 1910년 독일제국 수출품의 17%가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등을 포함한 대영제국으로 향했다.

오늘날 중국의 발전 궤도를 예시하듯이, 1914년 이전의 독일제국도 패권국가였던 대영제국에 비해 훨씬 강력한 관료국가를 구축했다. 독일 전체 근로 인구 가운데 공무원의 비율은 4%로, 당시 영국의 두배 수준이었다. 오늘날 중국의 전략 부문마다 국영기업이 많은 것처럼, 1914년 이전의 독일제국도 영국과 달리 많은 철도·은행 등을 국가가 소유·경영했다. 그 당시 독일도, 현재 중국도 추격형 발전을 하는 후발주자로서 국가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셈이다.

 

패권국가가 흔들릴수록 열강의 각축, 식민지 쟁탈전이 심해진다. 추격형 발전을 거듭하는 후발주자로서 과거의 독일도 오늘의 중국처럼 ‘자원 지대’를 필요로 했기에 아프리카에 눈을 돌리게 됐다. 단 차이라면, 1914년 이전 아프리카에서 일련의 식민지(토고, 부룬디, 카메룬, 나미비아 등)를 획득한 독일과 달리, 오늘날 중국은 주로 아프리카와의 투자·무역 관계 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한데 오늘날 주변부를 놓고 벌이는 강대국 사이의 갈등은, 20세기 초반 식민지 쟁탈전 못지않은 끔찍한 유혈사태로 귀결되기도 한다.

1904~1905년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와 조선의 주인 자리를 놓고 10만명 이상 사망한 제국주의 전쟁을 벌이지 않았는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식민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유럽연합의 경제 식민지가 될 것인지를 놓고 벌이는,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현장에서는 적어도 6만~7만명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사망했으며, 인명 손실은 늘어만 가고 있다.

 

전쟁의 시대는 늘 민족주의의 시대다.

20세기 초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대 민족을 “자본주의의 산물”로 규정하고, 민족주의를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라고 규탄했다. 오늘날 학계도 민족을 근대 이후에 생겨난 “상상의 공동체” 정도로 본다.

 

그러나 학계에서 비판적인 분석의 대상에 불과한 민족주의는, 거리에서는 갈수록 더 활개를 친다. 20세기 초반 민족주의를 전파하는 주된 매체가 황색신문들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국가의 지휘·감독을 거절할 수 없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들이 그 구실을 한다.

 

페이스북 같은 미국 에스엔에스들이 차단되고 러시아 정부의 통제를 받는 프콘탁테(VK) 같은 국내 에스엔에스만 허용되는 러시아에서는 국민 73%가 미국을 적대국이라고 보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대체로 국민의 70~75%는 러시아를 적대시한다. 역시 서방 에스엔에스의 접근이 차단된 중국에서 일본에 대한 비호감의 수준은 60~70%대에 달한다. 일본이라고 중국을 그보다 더 좋게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족주의와 배타주의에 기반을 둔 혐오는, 20세기 벽두처럼 21세기 초반에도 세계화와 제국주의적 경쟁의 격화를 수반한다.

 

이처럼 오늘날 세계에서 1914년 이전 세계를 방불케 하는 요소들이 적지 않지만, 차이도 크다. 가장 큰 차이라면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의 변화일 것이다.

1914년 이전 세계에서는 패권국가인 영국은 평시 징병제가 없었지만, 주요 열강들은 하나같이 대규모 징병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세계에서 ‘남성’은 동시에 ‘병사’여야 했다.

 

이와 같은 강경 징병제는 한반도를 포함한, 강대국 사이에 낀 일부 완충지대 국가에서만 남아 있을 뿐, 주요 열강에서는 이미 거의 없어졌다. 예컨대 잠재적 전장인 대만 이외에 한반도 주변에는 순수한 징병제 국가는 하나도 없다. 러시아도 이미 징병제와 모병제를 병행하는 혼합형 군대를 운영하며, 현재 우크라이나 침략 현장에 파견된 병력 대부분은 모병제 병사들이다.

 

핵무기 시대 열강들 사이 전면전은 불가능하거나 가능성이 낮기에, 앞으로도 열강 사이 군사적 갈등의 주된 형태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처럼 완충지대로의 침공과 침략 전쟁을 겸비한 열강 사이 대리전일 것이다.

한반도가 이런 전쟁의 현장이 되지 않게끔 외교적 노력을 미리 경주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국정 과제가 돼야 한다.

 

전쟁과 타자에 대한 혐오, 민족주의와 배타주의가 연속적으로 폭발하는 복합적인 지정학적·경제적·생태적 위기 속 세계에서는, 아마도 머지않아 민중의 인내력이 그 한계를 드러내 사회적 내파 현상들이 보일 것이다.

 

몇년 전 프랑스의 ‘노란 조끼’ 같은 자연발생적 반란들이 다시 일어나게 되면, 진보적 정치세력들이 그 저력을 이용해, 급진적인 탈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의 재건, 기후위기 대응에 최적화된 새로운 경제 건설을 어느 정도 진전시킬 수 있을지가 이제 주된 관심사가 될 것이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