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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성공과 실패의 가장 큰 변수 ‘최고 정책결정자’

道雨 2022. 8. 30. 11:48

정책 성공과 실패의 가장 큰 변수 ‘최고 정책결정자’

 

 

 

이창곤의 정담 06 _정책결정자 대통령1

 

 

*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8년 5월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한겨레> 창간 20돌을 맞아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치의 본질은 결정이다. 특히 제도의 틀을 만들거나 바꾸는 결정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또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와도 직결돼 “누가, 무엇을, 왜, 언제, 어떻게 결정하는가”는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기 십상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누가 결정하는가’다. 정치인들은 흔히 “국민의 뜻에 따르거나 국민이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정책을 “스스로 결정했다”고 여기는 국민은 거의 없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힘센 결정자는 누구인가? 대다수는 주저 없이 “대통령”이라고 답할 것이다. 실제 그렇다. 한국 정치 및 정책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은 ‘최상위 결정 권력’이다. 그의 결정은 국민의 삶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다.

 

 

복지와 보건 등 사회정책 부문에서 예를 들어보자. 한국 복지 발달사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드라마 중 하나는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의 이른바 ‘울산 발언’이 없었다면 “법 제정이 허사가 되었거나 표류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 이 경우 극빈층의 삶은 더욱 힘겨웠을 것이다.

 

1999년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운동을 벌였지만, 정작 법 제정 열쇠를 쥔 국회에서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보건복지부도 미온적이었고, 노동부와 예산부처는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해 6월21일 김 대통령은 울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생활보장기본법을 만들어 국민이 생활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이후 상황은 일사천리로 흘렀다. 그해 7월8일 관계부처 실무회의가 열렸고, 이틀 뒤인 10일 관계장관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부안이 마련됐다. 같은 달 30일 여야 및 정부 간 실무협의로 협의안이 도출됐다. 이어 8월12일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됐고, 2000년 10월부터 시행됐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상황이 일거에 뒤바뀐 셈이다. 유관부처는 물론 양당과 국회 상임위원회의 누구도 법안의 국회 통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현재 기준으로 보면 복지 사각지대 등 문제점이 지적되지만, 당시엔 획기적인 법안이었다. 도입 이후 한동안 “한국 복지의 새 장을 연” 개혁입법으로 높이 평가됐다.

이전 생활보호제도는 만 18~65살 미만은 노동능력 대상자로 보고 아예 수급자격을 주지 않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나이 기준이 사라지고,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는 원칙적으로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2008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재임 중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이 법 제정을 꼽았다. 자신도 생전에 “울산 발언을 통해 무산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던 기초생활보장법을 일거에 구원”(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한 일을 자랑스러운 성취로 여겼다.

 

 

정반대 사례도 있다. 역시 한국 복지 발달사의 뜨거운 쟁점이었던 의료보험 통합 이슈와 관련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대표적이다.

 

1989년 3월9일 제148회 임시국회에서는 여야 만장일치로 국민의료보험법이 통과됐다. 수많은 개별 조합으로 쪼개져 운영되던 의료보험제도를 국민의료보험공단이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일원화해 운영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으로, 일찍이 보건의료단체를 비롯해 여러 농민, 노동자단체 등이 치열하게 도입을 요구해온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거부 뜻을 밝혔고, 의료보험 통합은 11년 뒤인 2000년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당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없었다면, 건강보험 통합을 둘러싼 이후 11년간의 숱한 질곡과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편의상 역사적인 사례 두개를 콕 집어 거론했지만, 한국의 정치 및 정책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이 ‘최고의 결정 권력’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민주화 이후 국회와 정당, 재계와 시민단체 등의 자율성이 커지면서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결정이 쉽지 않게 됐다고 말하지만, ‘최상의 정책 영향자’라는 위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전하다. 대통령의 힘은 무엇보다 헌법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 수반이자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총괄해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헌법은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 대통령의 권한은 크게 “정책(결정)권, 인사권, 예산권”(강준식 작가)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에 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을 움직이는 사정권과 국가정보원 등을 통해 얻는 정보권이 더해진다. 때로는 여당을 움직이는 당권도 행사한다.

 

헌법은 이런 막강한 대통령 권한을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행사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와 다른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의 결정 권력이 개인과 특정 집단을 위해 사사롭게 남용되거나 기득권층이나 일부 이해관계자를 위해 편향되게 행사될 때 그 폐해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고, 훗날 이를 시정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국가적 역량을 투입해야만 했던 사례는 차고 넘친다.

 

1960년 80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3만4984달러로 400배 넘게 올랐다. 무역규모도 1965년 5억7095만달러에서 지난해 1조2595억달러로 2000배 이상 성장했다.(국가통계포털 KOSIS) 한마디로 ‘어메이징 코리아’다.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것은 사회 각 분야에서 이뤄진 헌걸찬 노력과 희생의 결과이고, 여기에는 역대 대통령들이 기여한 몫도 분명히 있다. 대통령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그들의 정책결정과 리더십이 정부 정책과 기업 경영활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이념과 지역 등에 따라 좋고 나쁨이 극단적으로 갈려 “모두가 인정하는 대통령이 없는”(함성득 경기대 교수)데다,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다.

한국갤럽이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잘못한 일보다 잘한 일이 더 많다”는 응답을 받은 대통령은 박정희·김대중·노무현뿐이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대통령에 대한 관심과 조명은 심리나 성격, 자질, 개인사 등 주로 인물에 맞춰져왔다. 여기에 학계 일부에서 리더십 등 조직 및 제도적 접근을 꾀한 연구가 나름 활발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두 복지정책 사례처럼, 정작 시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정책 생태계에서 대통령의 역할과 개별 정책결정 과정, 대통령실(청와대)의 역할 및 문제점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탐색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정책은 대통령의 중요한 통치 수단이자 목표다. 대통령의 3대 권한 중 인사권과 예산권도 결국 대통령이 지향하는 나라를 만들어가려는 (정책을 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철학, 정책에 대한 지식과 이해,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 등은, 정책의 성공은 물론 대통령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다.

 

대통령 권한이 큰 만큼, 정책 생태계에서 대통령은 개혁을 이끄는 전위가 될 수도, 정책 실패의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제의 딜레마이자 역설이다.

 

이 연재에서 정책결정자를 살펴보면서 대통령을 첫번째로 올려놓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