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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빈곤 증명시험’…우리는 왜 기초수급 신청 못 했나

道雨 2022. 8. 30. 12:48

한국의 ‘빈곤 증명시험’…우리는 왜 기초수급 신청 못 했나

 

 

 

 

[수원 세모녀 비극 그 후] 

빈곤 앞에 남겨진 사람들
근로능력평가 심사 앞둔 50대
병원 진단서만 네차례 떼다 내
당뇨병 달고 사는 60대도 좌절
“연락 끊긴 가족 서명 받아오라 해”

 

 

* 문신이 새겨진 김석진(가명·58)씨의 손.

 

 

 

2022년 8월21일 오후 2시50분께 경기도 수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어머니와 두 딸이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됐다. 18개월치 건강보험료 33만9830원이 체납됐다. ‘암 등 중증질환과 채무로 인한 생활고를 겪었다’고, 보건복지부는 파악했다.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 내역이나 수급을 받은 이력은 없었다.

복지부의 대책은 사각지대를 ‘발굴’하지 못한 모형(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획발굴 추진을 검토하고, 발굴 모형의 정확도 제고 등을 포함하여 사각지대 발굴지원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나흘 뒤인 25일 저녁 7시50분께,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박민선(가명·48)씨는 ‘수원 세 모녀 사건’을 막 전해 들은 참이다. 자신의 복지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손에 꾹 힘이 들어갔다.

그는 정부와 사뭇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왜 수급을 신청하지 못했을까요?”

 

법으로 보장된 ‘최저생활을 유지할 권리’에 닿기까지 가족이 겪었을 머뭇거림을 먼저 떠올렸다.

“수급자라는 단어를 욕처럼 말해요. ‘멀쩡한 사람이 수급받네’ ‘부정이다’ 하는 시선들. 그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요. 5년 전에 수급 신청할 때 저도 그랬거든요.”

 

 

 

2000년 10월 기초생활보장 제도가 시행됐을 때, 우리는 오래 유예한 헌법적 권리 하나를 구한 듯 여겼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지닌다.’(헌법 34조 1항) 빈곤은 국가의 책임이며, 시민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국가에 요구할 권리를 지닌다는 명제. 수급 신청을 결심하고, 행정기관으로 향하고, 급여를 받는 매 순간 구현돼야 할 권리다.수원 세 모녀의 죽음 앞에서 대표적인 공공부조인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중심으로 ‘빈곤’을 대하는 정부와 제도, 행정의 모습을 <한겨레>는 두 차례에 걸쳐 짚는다. 정부가 강조하는 차세대 사회보장 정보 시스템, 빅데이터를 넘어 ‘왜 국가에 인간다운 삶을 요청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가’ 하는, 민선씨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하는 여정이다.지난 25~26일 여정의 출발점인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3명의 수급권자, 1명의 수급 신청자가 각자의 손을 내보였다. 저마다 복잡하고 다양한 빈곤의 사정을 담고 있는 손이다. 그 손들이 만난 기초생보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제도의 틀에 맞춰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빈곤을 정부에 증명하는 과정은 늘 어렵고 혼란스럽다. 생계·주거·의료를 책임질 월 90만원이 안 되는 급여를 두고 합격과 탈락을 가늠하며 마음을 졸인 순간도 많다.휴대전화 문자를 꺼내 보이는 김석진(가명·58)씨한테도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여전히 권리라기보다 ‘시험’에 가깝다. 내 몸의 점수를 셈하고 불합격을 걱정하고 있다. 석진씨의 손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국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급여와 현물을 보조하는 공공부조 제도.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으로 나뉘며, 소득 수준, 재산, 근로능력, 부양의무자 등을 따져 대상자를 선정한다. 2022년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는 최대 58만3444원, 주거급여는 최대 32만7천원, 의료급여(1종)는 월 5만원 본인 부담 상한 의료 서비스.
 
 
 
 
 
문신이 새겨진 손 : 몸의 증명
 

‘면담이 필요한 경우 국민연금공단 지사 담당자가 연락드릴 예정…’

근로능력 평가 서류 접수를 알리고 면담을 예고하는 문자메시지가 석진씨의 낡은 폴더형 휴대전화 화면에 떠올랐다.

 

2010년부터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시행된 근로능력 평가는, 수급자 가운데서도 일할 수 있는 몸과 일할 수 없는 몸을 점수로 구분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18~64살 수급자 중 소득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 근로능력이 있는지를 따져(근로능력 평가) 있다고 판단되면 자활 사업에 참가해야 한다(조건부 수급자). 정상적인 노동 시장으로 이행을 암묵적으로 요청한다. 수원 세 모녀 역시 수급 신청에 나섰다면, 우선 ‘근로능력 없음’을 인정받아야 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수급자 10명 중 9명은 스스로가 생계·의료 급여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생계·의료급여 수급 가구 가운데 노인이 포함된 가구는 33.9%, 장애인이 포함된 가구는 41.4%, 만성질환자가 포함된 가구는 92.9%에 이른다.(보건사회연구원, ‘2020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및 평가연구’)

 

그런데도 ‘일을 통한 탈수급’ 또는 ‘근로능력이 있으면 부정수급’임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강해졌고, 그럴수록 평가 과정은 점차 개인의 사정보다 서류에 바탕한 복잡한 기준과 점수에 의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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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 순수하게 살지를 못했어요. 폭력단도 하고, 감옥도 드나들고. 술도 많이 마셔서 몸도 많이 상하고.” 석진씨의 몸은, 많이 상했다. 혈관이 괴사돼 양쪽 고관절에 인공관절을 달았다. 바닥에 앉을 수도 없고 오래 걷지도 못한다. 척추 세 개가 “나간 상태”이며, “교통사고로 한 번 배 수술을 한 뒤, 올봄에 또 한 번 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도저히 일할 수 없는 몸을 증명해 내는 건 석진씨의 몫이다. 석진씨는 네 차례나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어 동 행정복지센터에 가져다줬다. 서류가 부족해 계속 반려당했다.

진단서를 끊는 일은 쉽지 않다. 2~3개월 이상 꾸준히 병원을 다녀야 진단서가 나오는데, 의료급여가 없는 최초의 수급 신청자였다면 병원비 역시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접수를 마치고 나니 국민연금공단 심사가 남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던 근로능력 평가는 객관성을 이유로 2012년부터 국민연금공단이 맡는다. 이후 ‘근로능력 있음’ 판정은 이전의 5%에서 2013년 15.2%, 2014년 14.2%로 3배 정도 늘어났다.

“동사무소 사람들은 맨날 얼굴 보니까 내 몸을 잘 아는데….”

애석하게도 석진씨의 근로능력을 판단할 곳은 얼굴 모르는 ‘기관’이다.

 

지금보다 건강했을 때 그도 제대로 일하고 싶은 꿈을 품었다. 그럴 수 없었다. “교도소 나와서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를 했는데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동장님이 환경 미화원으로 추천해 줬는데 떨어졌어요. 전과 때문에요. 그거 말고 제대로 해보려고 한 일은 버스 운전이었는데, 여름에 더우니까 장갑을 벗었는데 문신이 보였나봐요. 수근대길래 며칠 하고 나왔어요.” 석진씨가 겪은 빈곤의 이유는 늘, 일할 수 있는 몸 너머에 있었다.

 

 

* 약 봉지를 든 민병우(가명·63)씨의 손
 
 
 
약봉지를 든 손 : 고립의 증명

민병우(가명·63)씨는 약봉지를 잔뜩 쥔 손을 내밀었다. 당뇨약이다. 10년 전까지 공사 현장에서 일했지만 병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지난해 겨울 쪽방촌에 들어와 한동안 고립의 시간을 지냈다.

“처음 여기 들어와서는 이불 뒤집어 쓰고 쥐죽은 듯이 티비만 켜놓고 종일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다가 여기서 1200원짜리 밥을 줘서 먹었는데 왜 그렇게 맛있던지. 그때부터 조금씩 나와서 사람들 만나고 하면서 수급자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 전엔 몰랐죠. 아무도 안 알려주니까.”

 

그에게 기초생보를 알려준 건 공공이 아닌 이웃들이다. 국민기초생활 보장 신청 경로로 ‘공공’(주민센터, 시군구청 등)의 도움을 꼽은 수급권자는 6.8%에 그친다. ‘본인 및 가족, 스스로’인 경우가 72.5%, ‘이웃들의 권유’가 7.8%다.(2018년 국민생활실태조사) 근로장려세제(EITC),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다른 복지 제도에서 정부가 직접 대상이 될 시민에게 우편을 보내 안내하는 것과 대비된다.

수원 세 모녀 역시 별다른 공공의 안내를 받지 못했다. 지인들은 그나마 “사촌이 기초생보 급여를 신청해 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겨레>에 전했다.

 

병우씨는 올해 봄부터 기초생활보장 신청에 나섰다. 이번에는 복잡한 가족 관계가 문제가 됐다. “동생과 어머니와는 연락이 끊겨서 어디 사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어머니의 부양 능력을 조사하겠다고 서명을 받아 오라는 거예요.” 무작정 동생 가게를 찾아 경기도 안성까지 갔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옆 가게에서 제가 온 걸 들었는지 안 와요. 전화도 안 받고. 손 벌리러 갔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그게 아니었는데.”

 

다시 고립을 실감한 속상한 날이었다. 소득 수준은 의료급여 대상자가 되기에 충분하지만(중위소득의 40% 이하), 부양의무자 문제 등으로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은 73만명(48만가구, 2018년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급권자가 아닌 가족의 소득과 재산을 바탕으로 수급 여부를 판단하는 부양의무자 제도는 그동안 기초생보 사각지대를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2018년 주거급여의 부양의무자 제도는 폐지됐고, 지난해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제도도 완화됐다. 다만 건강과 직결된 의료급여에 부양의무자 제도는 남아 있다.

 

* 독촉장을 든 유상현(가명·58)씨의 손
 
 
 
독촉장을 든 손 : 숫자로 볼 수 없는 빈곤

“속상해서 뜯어보지도 않았어요.” ‘채무변제 최후 통고장’(독촉장)이라고 적은 글씨가 굵직한 우편물을 유상현(가명·58)씨가 내밀었다. 상현씨의 독촉장은 수원 세 모녀의 부채 문제처럼 데이터가 정확히 그릴 수 없는 빈곤의 단면이다.

지인들은 수원 세 모녀가 빚 문제로 고민했다고 전했지만, 고위험 가구를 발굴하기 위한 정부 시스템에는 그 흔적이 없다. 정부의 위기정보에 잡힐 수 있는 금융 연체 기준은 ‘과거 2년간 연체된 금액이 100만원 이상 1천만원 이하’이기 때문이다. 빚이 포착됐더라도 빚에 담긴 사정까지 숫자만으로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현씨의 독촉장에는 주요 통신사별로 400만~500만원의 미납요금이 적혀 있었다. 그의 앞으로 체납된 수천만원의 사업장 관련 세금까지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헤픈 씀씀이, 실패한 사업가로 상현씨를 그리기 쉽다.

아니다. 상현씨는 2017년 명의를 도용당했을 뿐이다. 상현씨 이름으로 술집이 차려졌고, 휴대전화가 개통됐다.

“25만원을 준다고 해서요. 그때 돈이 필요했어요. 그 사람이 검은 차에 태워서 세무서에 갔는데 저는 뒤에 가만히 서 있었어요. 그때는 이럴 줄 몰랐어요.”

 

경찰서에 신고하고 소명했지만, 세금과 부채가 사라지지는 않아 여전히 그의 몫이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과학화하고 효율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제도들이 사람들의 복잡한 사정 앞에서 자꾸 실패한다면, ‘데이터를 통해 더 잘 발굴하자’가 아니라, ‘왜 가난한 이들이 더 빚에 쉽게 노출되는지, 주소지를 감출 수밖에 없는지’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 복지카드를 쥐고 있는 박민선(48·가명)씨의 손

 

 

 

조현병을 앓고 있는 민선씨의 사정에도 객관적인 조건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빈곤이 숨어 있다. 민선씨는 2019년 쪽방에서 엘에이치(LH) 전세임대로 좀 더 나은 주거 환경을 구했다. 상향 이동이라 할 만했는데, 이사한 뒤로 혼자서 약을 잘 안 먹다보니 병이 악화돼서, 많이 힘들었다.”

옮긴 주소지에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공무원을 만나지 못했다. “주민센터에서 두 분이 나왔지만 그냥 한번 보고 가셨고요. 제가 병이 심해지면 좀 많이 시끄러워서 경찰이 왔었는데 그냥 가셨어요. 벌금만 50만원 날아왔어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쪽방촌 활동가들과 이전에 알던 사회복지사가 설득해 병원 입원 등 1년여를 보내고 쪽방촌으로 돌아왔다.

“너무 간섭당하는 것도 싫지만 아플 때 병원에 같이 가주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여기 있어서요.”

결국 사람 때문에 민선씨는 불편을 감수하고 쪽방에 산다. 민선씨는 “좋은 사회복지 공무원 선생님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수원시 공영장례로 치러진 수원 세 모녀의 발인이 있던 26일, 쪽방촌에도 빈소가 차려졌다. 전날 밤 “마음이 따뜻하고 진솔한”(부고장) 쪽방촌 주민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유명 정치인의 방문도, 떠들썩한 정부 대책도 없는 조용한 장례식이었다. 동네 장례 위원을 맡고 있는 석진씨만 가지런히 무릎 위에 손을 올린 채 빈소를 지키고 있다.

“믿고 맡겨줘서 해봤는데 잘 보내드리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요. 내일은 벽제 화장터에 갑니다.”

 

아직 최소한의 삶을 누릴 권리를 환영하지 않는, 복잡한 제도 앞에서,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 내야 하는 고단한 걱정을, 석진씨는 내일까지만 잠시 내려 두기로 한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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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급여 대상자 34만명 ‘비수급’ 왜?

 

 

[수원 세모녀 비극 그 후]
기초생활보장제 여전히 좁은 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읍·면·동 주민센터에 방문하면 언제든 신청할 수 있다. 주민등록 주소지와 다른 곳에 살아도 실제 거주지의 주민센터에서 신청 가능하다. 그럼에도 생계급여 대상자(기준중위소득 30% 이하) 중 34만명(22만가구, 2018년 기준)이 ‘수원 세 모녀’처럼 비수급자로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2018년 국민생활실태조사에서 ‘기초보장급여를 신청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34%가 “선정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제도를 모르”거나(11.9%), “신청 과정이 번거로워서”(10.3%)라고도 했다.

 

실제로 수급권자들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알게된 경로가 대부분 공공이 아니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 경로로 ‘공공’(주민센터, 시군구청 등)의 도움을 꼽은 수급권자는 6.8%에 그친다. ‘본인 및 가족, 스스로’인 경우가 72.5%, ‘이웃들의 권유’가 7.8%다.(2018년 국민생활실태조사) 근로장려세제(EITC),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다른 복지 제도에서 정부가 직접 대상이 될 시민에게 우편을 보내 안내하는 것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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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할 때 기본 필요 서류는 간단하지만 추가 서류가 복잡한 편이다. 예를 들어 일용직처럼 소득이 일정하지 않아 행정 전산상으로 확인이 어려우면 증빙 서류를 내야 한다.

18살 이상 64살 이하는 자활근로를 해야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부상 등으로 일할 수 없다면 의료진단서가 필요하다. 일정 이상 소득·재산을 가진 부모·자녀·배우자가 있으면 교류가 끊겼더라도 그 사정을 알리도록 한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필수 서류가 아닌데 1년치 통장 거래 내용을 떼거나 신청자 명의로 된 모든 통장을 제출하라는 경우가 있다”며 “유독 기초생활보장제를 신청할 때 (서류 제출)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번거로운 신청 절차를 밟아도 기초보장급여는 소수에게만 보장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복지패널조사’ 자료를 보면, 2020년 수급 신청을 한 가구 중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를 모두 받은 가구는 2.7%뿐이다. 79.4%는 일부만 받았고, 17.9%는 탈락했다. 소득인정액을 초과하거나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의료급여 이외 부양의무자 기준을 2017년 11월부터 원칙적으로 폐지했지만, 부모나 자녀가 소득 1억원이 넘고 9억원을 초과하는 재산이 있으면 생계급여 대상자에선 제외한다. 2022년 1인 기준 소득인정액은 생계급여 58만3444원, 교육급여 97만2406원이다.

 

기초보장급여 수급자가 되면 정부가 정기적으로 관리에 들어간다. 분기별 조사를 통해 소득인정액 기준을 초과하면 급여 지급을 중단한다. 월급뿐 아니라 가구원이 달라지거나 차량을 구매할 때도 소득인정액이 달라지는데, 이를 개인이 계산하기 어려워 수급 자격을 잃는 경우가 생긴다.

한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수급자가 탈락하면 위기 사유로 봐서 긴급복지지원제도로 연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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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가난…기초생활보장 22년

 

 

 

[수원 세모녀 비극 그 후] 

 

‘사후약방문’ 써온 공공부조 22년

2004년 대구 아이 영양실조 사망
그제서야 ‘긴급복지지원제도’ 도입
2014년 ‘송파 세 모녀’ 세상 떠나
위기가구 발굴·부양의무자 완화

 

 

 

* 질병과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발인이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죽음 위에 죽음이 쌓였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있기 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스러졌다. 벼랑 끝 경계에서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수급자가 되어 벼랑 끝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성긴 사회복지망은, 어느 길로 가든 죽음에 다다르게 했다.

죽음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뒤늦은 대책을 내놓았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뒤 한국의 공공부조 22년은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에 빚진 역사인 셈이다.

 

 

* 20년 빈곤 사각지대 죽음과 대책.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죽음 위에 만들어진 제도들

 

2004년 12월, 대구 동구 불로동 한 단칸방 장롱 안에서 4살짜리 아이의 주검이 발견됐다. 영양실조로 인해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났고, 함께 발견된 여동생도 영양실조 상태였다.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됐지만, 엄격한 소득·재산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혜자가 적었던 탓이었다. 이를 계기로 주 소득자의 사망 등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우면 우선 생계비를 지원하는 ‘긴급복지지원제도’가 도입됐다.

 

10년이 지난 2014년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사망했다. 단독주택 반지하에 세들어 살던 이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집세와 공과금 70만원, 그리고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다.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등이 ‘송파 세 모녀 법’이라는 이름으로 잇따라 제·개정됐다.

 

정부의 대책은 위기가구 발굴 확대와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완화에 집중됐다. 2015년 단전, 단수, 보험료 체납 등 18종의 위기가구 관련 정보를 입수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정비했다. 입수 정보는 34종까지 늘었으며, 수원 세 모녀 죽음을 계기로 9월부터는 39종으로 확대한다.

 

 

발굴돼도 기초생활보장은 2.4%뿐
 

또 죽음이 쌓였다. 2018년 4월 충북 증평군에서 40대 여성이 세살 난 딸과 숨졌는데, 남편의 사망 이후 빚 독촉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해 5월 경북 구미시 한 원룸에서 20대 남성과 생후 16개월 추정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됐다. 두 가구 모두 복지급여를 신청한 기록은 없어, 신청주의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됐다.

 

2019년 7월 서울 관악구에서 탈북 모자가 사망했다. 아동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세차례나 지역 주민센터를 방문했지만, 다른 복지제도는 안내받지 못했다. 이후 정부는 고위험 위기가구 실태조사를 정례화하고 명예 사회복지공무원을 활성화했다. 그러나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2020년 발달장애인 아들과 살던 60대 여성이 숨진 지 반년 만에 발견됐다(‘방배동 모자’ 사건). 주거급여 수급자였지만, 어려운 사정이 오래전 이혼한 배우자(부양의무자) 등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 생계·의료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복지 수급 가구를 정기 방문하는 ‘위기가구 방문 모니터링’ 점검망을 만들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2001년 142만명, 인구 대비 3.2%였다가 2019년까지 2%대 후반~3%대 초반의 수급률을 유지해왔다. 2020년이 돼서야 수급률이 4.1%(213만4천명)로 늘었다. 2021년 수급률은 4.6%(236만명)이다. 중소도시 4인가구 기준으로 2001년 80만5000원이던 생계급여는 2013년 102만1126원으로 올랐다. 2021년을 기준으로는 146만2887원이 됐다.

 

수급자 비중이 큰 폭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위기가구가 발굴되더라도 높은 문턱 탓에 극소수만 기초생활수급제도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사업을 시행해 고위험 대상자 458만3673명을 찾아냈지만, 지원은 188만863명(41%)에게만 돌아갔다. 물품 지원이나 민간서비스 연계 등이 대부분이었고, 기초생활보장제도는 2.4%(11만869명), 긴급복지지원제도는 1.2%(5만8787명)에 그쳤다.

 

 

‘낙인’ 강화해온 복지 대책사
 

때론 정부 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태롭게 했다. 2010년 사회복지통합전산망 을 도입한 뒤 정부는 수급자와 부양의무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고, 경남 남해와 충북 청주 등에서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노인들이 잇따라 숨졌다. 2014년 정부는 ‘부정수급 통합 콜센터’를 운영하며 “100일 만에 100억원대 부정수급을 적발했다”고 홍보했지만, 대부분 병원장, 시설장 등 복지기관의 부정이었다. 그러나 ‘부정수급자’ ‘방만한 사용’ 등 부정적 인식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계속 따라붙었다.

 

생계급여의 근로능력 평가 강화도 수급자를 옥죄었다. 심장 대동맥을 인공혈관으로 치환하는 수술을 받은 뒤 2005년부터 근로능력이 없는 일반 수급 자격을 유지하던 최인기씨는, 2013년 11월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았다. 2014년 8월, 급여 삭감을 우려해 청소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그는 이식 혈관 감염으로 숨졌다. 

2012년 지자체에서 국민연금공단으로 평가 업무가 위탁된 뒤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기존 5%에서 2014년 14.2%까지 3배가량 늘어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의 공공부조에는 사람을 살리는 제도와 사람을 죽이는 제도가 공존하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죽음과 대책이 쌓여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34조 1항)가 실현될지, 수원 세 모녀는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