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진짜 범인은 감옥 밖에 있다

道雨 2022. 8. 31. 10:19

진짜 범인은 감옥 밖에 있다

 

 

 

 

거의 40년 전, 중학교 절친은 대학에 가서 소위 운동권 학생이 됐고, 나는 그저 소심한 의대생으로 살았다. 그를 구치소 면회하고 온 날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그 녀석은 면회실 안쪽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진정 갇힌 이는 그인가 나인가?”

 

며칠 전, 수원 12평 월셋집에서 빚 독촉에 시달리던 난소암 투병 어머니와 잦은 경련에 시달리는 희귀병을 가진 두 딸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8년 전 “정말 죄송하다”며,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떠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2018년 관악구 탈북 모자 사건, 2019년 성북구 네 모녀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건, 다시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큰비에 쇠창살이 있는 반지하 집에 갇혀 살던 홍아무개씨와 딸, 장애를 가진 언니도 쏟아져 들어오는 빗물에 익사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치던 정치인들은 지금 모두 감옥 밖에 있다. 요즘엔 한술 더 떠 마지막 사회안전망인 공공·복지부문 예산을 줄이면서 부자감세에 혈안이 돼 있다.

 

갇혀 죽어가는 이들이 이뿐이랴. 우리나라 장애인 평균 시설거주기간은 약 19년에 이른다. 하지만 수십년째 이를 방치하고 있는 정치·행정·의료 전문가들도 감옥 밖에 있다. 엄마를 만나러 기차를 탔던 어린 남매, 길 가던 청년들을 이유 없이 끌고 가 가두고 구타와 성폭행도 모자라 657명이나 죽인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이 최근 추가로 규명됐지만, 이 범죄의 공범인 군인, 행정관료, 정치인 대다수는 감옥 문턱에도 가지 않았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하청노동자 유최안씨는 가로·세로·높이 각 1m인 쇠창살에 스스로 자신을 가뒀다. 하지만 고용주들은 공범인 거대 로펌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손실부담금을 청구하고 휴가를 떠났다.

 

좁은 공간에 갇혀 고통받는 이는 아프고 가난한 이들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 상당수도 학원이 끝나는 밤 10시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밖에서 문을 잠그는 소위 ‘자물쇠반’ 교실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그 학원장, 그곳으로 자식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모두 감옥 밖에 있다.

 

얼마 전 모 대학 교수회의 표절논문 검증회의 결과를 보니, 일찍이 조지훈 시인이 수유리 4·19묘지에 누워 있는 이들 중 교수는 한명도 없고 왜 모두 젊은 학생들뿐인가 통탄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늘날 바른말 하고 감옥 가는 교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한해 최소 210만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전세계 곡물가격이 20% 이상 급등한 상황에서 23~100%의 기록적인 매출 증가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세계 4대 곡물회사 경영자들, 빈곤국의 20.9%만이 겨우 한번 이상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을 때, 백신이 남아돌아 폐기하기에 바쁜 부자나라 관료들과 천문학적 규모의 수익을 남기는 다국적 제약회사 경영자들도 감옥 밖에 있다. 지난 3년 코로나19 유행으로 세계 인구 99%가 소득이 줄어드는 동안 자산을 2배로 불린 10대 부자들도 모두 감옥 밖에 있다.

 

국제구호개발단체인 옥스팜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부터 인구 상위 1%가 하위 50%보다 약 20배 더 많은 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부유한 억만장자 20명이 가장 가난한 10억명보다 평균 8000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불평등으로 인해 4초마다 1명, 하루에 2만1300명이 사망하고 있지만 이 가해자들도 감옥 밖에 있다.

 

며칠 전부터 한반도에서 연합훈련이란 이름으로 다시 외국의 탱크와 폭격기가 굉음을 내며 우리 땅에 상륙하고 우리 상공을 가로질러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남북관계를 50년 전 7·4남북공동선언 때보다 후퇴시켜, 오랜 평화의 꿈을 깨뜨리고 전쟁 기운을 고조시키고 있는 세력들, 전쟁을 벌인 자도, 벌이려 하는 자들도 모두 감옥 밖에 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감옥 밖에 있다면 그들의 공범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감옥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을 쓴 한 철학자의 말을 조금 비틀어 요약하면 “근대 지배권력은 반대자를 감옥에 가둠으로써가 아니라 감옥 밖에 머물게 함으로써 작동한다”.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 시절 같은 난세에 희망의 불씨는 늘 감옥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 하지만 전쟁, 기후와 환경 위기 등으로 인류의 종말까지 심심찮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오늘날, 감옥 밖에 있는 이들이 너무 많다.

 

이쯤 되는 칼럼을 쓰면 나도 감옥에 갈 수 있을까?

그래서 감옥 밖에서 살아온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벗을 수 있을까?

진짜 범인은 감옥 밖에 있다.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