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느닷없는 '자유민주주의' 끼워넣기, 이것 때문인가? MB정부 시즌2

道雨 2022. 11. 14. 10:39

느닷없는 '자유민주주의' 끼워넣기, 이것 때문인가

[아이들은 나의 스승] 보편적인 '민주주의' 지우기... 건국절 앞세운 MB정부 시즌2

 
 

 

중고등학교의 사회와 한국사 교과서에서 '민주주의' 앞에 '자유'가 수식어처럼 붙게 됐다. 앞으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고쳐 불러야 할 판이다. 나아가 전에 없던 문구까지 추가될 예정이다. 예컨대, 고등학교 한국사 성취기준에 명시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으로 바뀌게 된다.

지난 9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가 명시된 헌법 전문과 헌법재판소 결정문, 역대 교육과정의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정"이라며, 교과서 내용 수정의 취지를 설명했다. 22번이나 '자유'를 외친 대통령의 UN 연설에 대한 교육부의 응답인 셈이다.
 
"선생님, 대체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가 뭐예요?"
"민주주의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식의 정의가 자유민주주의다."

느닷없는 한 아이의 질문에 농담 삼아 대답했다. 지난 6개월간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으로 미루어 아예 틀린 말도 아닌 성싶다. 대통령의 인터뷰와 연설 등을 일일이 헤아려보진 않았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되뇐 '자유'에 견줘 보면 '민주주의'를 언급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 왔는데, 이를 모르지 않을 교육부는 되레 훼방을 놓는 형국이다. 마치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대립하는 개념인 양 왜곡된 인식이 퍼지고 있다. 교육부는 앞선 아이들의 질문에 뭐라고 답할 텐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가 뭔가요?"

지금도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뭐냐고 물으면, 공산주의라고 답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이는 6.25 전쟁과 분단의 모순이 가져온 완고한 편견일 뿐, 학문적 기준을 떠나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정치적 개념인 민주주의와 경제적 개념인 공산주의를 동등 비교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일본을 거쳐 우리말화한 '주의'라는 단어가 혼선을 빚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한 영미권에서는 둘의 차이가 확연하다. 민주주의는 'Democracy'고, 공산주의는 'Communism'이다. 둘을 반대말로 상정하는 건, 마치 '정치'의 반대말을 '반정치'가 아닌, '경제'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공식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잖아요. 공산주의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인 양 가장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는 방증이 아닐까요?"

아이들로부터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반론을 마주할 때는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싶다. 현재 북한이 민주주의 체제가 아님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공산주의의 반대말이라는 근거가 될 순 없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표방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세습하고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 체제라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곧,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굳이 대라면 독재 체제라고 해야 옳다. 공산당이 집권하든, 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하든, 권력이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공권력에 의존해 권위주의적 통치를 일삼는다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독재 국가인 북한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는지부터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답하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정의일 뿐이다. 아이들조차 북한을 거울상으로 삼은 탓이다. 우리 정부의 무능을 비판할라치면, 어김없이 '종북 좌파' 운운하며 북한으로 가라고 대꾸한다. '일베'의 막무가내식 대응이 아이들 사이에 가랑비에 옷 젖듯 퍼진 결과다.



자유민주주의 강조한 정부 보며 떠오른 장면 하나

 

뿌리 깊은 분단의 모순 속에 맹목적인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교사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땀을 흘려 왔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수업 자료를 개발했고, 자발적 연수를 통해 다른 교사들과 공유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도록 교육했고 실천했다.

그런데, 정부가 격려는 못 할망정 민주시민교육을 부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9월, 교육부의 직제 개편으로 민주시민교육과가 전격 폐지된 것이다. 체육예술교육지원팀과 함께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통합됐다. 부서 명칭만 놓고 보면, 정부가 민주시민교육을 인성교육 차원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결국 지역 교육청에서도 민주시민교육과가 도미노처럼 문을 닫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빅 픽처'를 그리고 있었던 셈이다. 민주시민교육과 폐지의 다음 수순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지금껏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웠다면, 이제 인성체육예술교육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배우게 됐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을 독재 체제라고, 공산주의의 반대말을 자본주의라고 분명하게 답하는 아이들이 시나브로 느는 게 두려웠던 걸까. 굳이 의미조차 모호한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욱여넣으려는 의도를 당최 모르겠다. 아이들을 볼모로 낡은 이념 갈등을 부추겨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술책이라면 너무 천박하지 않나.

정부가 느닷없이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나섰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다. 부산항에 정박한 배의 갑판 위에서 환송 나온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앳된 국군 장병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 그들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전쟁이 한창이었던 베트남의 정글로 떠나는 청년들이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애꿎은 군인들 수만 명을 파병하며 내세운 명분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영원한 우방 미국을 도와 선량한 베트남 국민을 공산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나도록 목숨 바쳐 싸우자고 부추겼다. 그것은 우리 국민을 기만한 것이었고, 5천 명이 넘는 청춘들이 타국에서 스러졌다. 물론, 국군에 의해 희생된 베트남 국민도 부지기수다.

우리의 대규모 파병은 '돈' 때문이었고, 베트남 국민 다수가 지지한 공산주의 세력이 끝내 미국을 패퇴시켰다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참전군인과 베트남 국민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여전히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당시 정권은 해될 게 없었다. 그로 인해 경제가 성장했고, '반공'이 권력 유지를 위한 전가의 보도로 자리매김했다.

윤석열 정권이 MB 시즌2라 불리는 이유

민주주의를 지우고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운 게 여전히 반공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라면 억측일까. 얼마 전 대통령은 "북을 따르는 주사파는 반헌법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고 명토 박았다.

다시 우리 국민을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무장시키려면 어릴 적 학교 교육부터 손봐야 한다고 여긴 듯하다. 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인 용어보다, 자연스럽게 반공을 떠올리게 되는 자유민주주의가 교과서에 더 적합하다고 본 걸까. 교육과정 개편, 교육 격차 해소, 대학 교육 개혁 등 그러잖아도 할 일이 태산인 교육부가 총대를 메고 자유민주주의를 부르대는 모습이 처연하다.

이명박 정권 때는 '건국절 논란'으로 역사학계와 학교 교육을 벌집 쑤시듯 해놓더니,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때아닌 '자유민주주의 논란'으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실상 두 논란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앞에 굳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이라는 표현을 삽입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윤석열 정권이 '이명박 정권 시즌 2'라고 불리는 이유다.

 

 

 

서부원(ernesto)

 

 

************************************************************************************************************

 

 

윤석열 정부의 선택적 '자유민주주의', 나쁜 의도 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입법예고에 등장한 '자유민주주의'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일 교육부가 교육 방향과 교과서 서술에 영향을 줄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을 입법예고했다. 이달 29일까지 국민 의견 수렴 이후 국가교육위원회 심의·의결과 교육부 장관 확정·고시를 거치게 될 교육과정 개정안을 예고한 것이다.

이번 입법예고에서는 한국 현대사 교육 방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놓도록 했다.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물론이고 교육과정 연구진의 의견마저 묵살한 채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집어넣은 것이다.

 


입법예고된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의 역사 과목 부분은 '근·현대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대목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화 양상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사회 전반에 걸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착 과정과 과제를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둔다"라는 방침을 제시했다.

함께 입법예고된 '고등학교 교육과정 시안'의 한국사 과목 부분은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대목에서 "냉전체제가 한반도 정세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을 탐색한다", "6월 민주항쟁 이후 각 분야에서 전개된 민주화에 기반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정착되고 시민운동이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라는 지침을 내놓았다.

'민주'를 '자유민주'로 수정한 이 조치를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강행했다는 점은 교육과정 연구진의 반발에서도 나타난다. 역사 과목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은 9일 성명을 통해 "교육부는 연구진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수정한 행정예고안을 철회하라"라고 항의했다. 연구진 동의도 없이 '자유민주'를 끼워넣었던 것이다.

교육부는 연구진뿐 아니라 교육부 기구인 교육과정심의회 내부 이견도 묵살했다. 반대 의견이 제기됐는데도, 심의회 표결 없이 입법예고를 강행한 것이다.

말뜻과 관계없이,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냉전세력·독재세력·재벌세력의 이익을 옹호하고 이들의 사회 지배를 합리화하는 데 악용됐다. 이 세력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한다는 미명 하에 평화운동·민주화운동·노동운동을 탄압했다.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은 그 같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엉뚱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이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라고 말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면 이런 체제가 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엉뚱한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은 거의 없다. 이런 이념이 사회적 의제가 되지도 못했고, 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세력화를 이루지도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민주·사회민주에 대항하고자 국가적 역량을 동원하고 학교 교육을 개편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 이는 냉전세력·독재세력·재벌세력을 옹호하는 정치적 구체제를 온존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논리적 허술함이 곳곳에 산재

이번에 입법예고된 교육과정 시안을 살펴보면, 윤석열 정권이 '자유민주' 표현을 성급하게 넣다 보니 논리를 매끄럽게 정비하지 못한 대목들이 발견된다. 정치적 의도에 매몰돼 합리적 의견수렴도 없이 강행하다 보니 논리적 허술함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우선, 한국 현대사와 관련해 '민주'를 '자유민주'로 바꾸는 데 신경을 쓰다 보니, 한국 민주주의와 세계 민주주의의 연속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한국 민주주의에는 한국 고유의 독자적 측면도 담겨 있지만,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같은 세계 민주주의 흐름의 영향을 받은 측면도 적지 않게 반영돼 있다.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를 서술할 때는 세계 민주주의의 보편성도 당연히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번 시안은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하면서도, 미국 민주주의와 프랑스 민주주의는 그냥 '민주주의'로 규정했다. 한국 민주주의와 세계 민주주의가 개념상 서로 다른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이다.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정치체제의 확립 시도가 이루어졌음을 이해하고, 혁명이 아이티 등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 끼친 영향을 파악한다"라고 서술했다. 또 "서유럽 각국의 민주주의 확대'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이처럼 이번 시안은 현대 세계의 민주주의 모델로 평가되는 미국과 서유럽과 관련해서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유'를 뺀 민주주의는 위험하다는 윤 정권 논리에 따르면, 미국·서유럽 민주주의도 위험한 민주주의라는 말이 된다. 사회적 반발을 무릅쓰고 서둘러 수정하다 보니, 한국 민주주의와 세계 민주주의의 연속성 부분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일관성 결여는 한국 현대사에 관한 교육 지침에서도 나타난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데서 나타나듯이, 이번 시안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의 한국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설명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1948년 이후에 발생한 정치적 모순을 '자유민주주의의 모순'으로 규정해야 타당하다. 그런데 이번 시안은 독재정권의 부조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부분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해설하는 대목에서 "이 성취 기준은 4·19 혁명에서 6월 민주항쟁에 이르는 과정을 독재정치로 인한 민주주의의 시련과 국민적 저항에 기반한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도록 설정하였다"라고 설명한다.

1960년 4·19혁명부터 1987년 6월항쟁 사이에 발생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시련'이라 하지 않고 그냥 '민주주의의 시련'이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이뤄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와 관련해서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일관성 결여를 초래한 원인
 

 2021년 6월 29일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라고 주장하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맞선 시민혁명이나 반독재 투쟁을 설명할 때도 그 같은 일관성 결여가 나타난다. 이번 시안은 '자유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시민혁명이나 민주화 투쟁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이런 표현을 회피했다.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현된 형태가 시민혁명이나 민주화 투쟁인데도, 정작 이런 것에 대해서는 '자유민주'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민주주의와 시민'이라는 대목에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이념과 원리를 실현하고자 한 사례(예: 4·19 혁명, 6월항쟁)을 찾아보도록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는 지침을 제시한다. 4·19와 6월항쟁 같은 저항운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민주주의'를 두 번이나 언급하면서도 그 앞에 '자유'를 붙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 한국이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라면, 한국 민주주의 꽃인 시민혁명이나 민주화투쟁에 대해서도 '자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논리적이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6월 민주항쟁", "민주화"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화 양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으로 통일하기로 했다면 '6월 자유민주항쟁', '자유민주화' 같은 표현을 사용해야 논리적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넣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위험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의 부조리를 설명할 때와 시민혁명과 민주화투쟁을 설명할 때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역사 교육과정 개정의 실제 의도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를 옹호하는 데 있다는 의심을 자초할 만한 일이다. 또 시민혁명과 민주화투쟁을 자유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추천하기를 꺼리는 심리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시민혁명이나 민주화투쟁을 자유민주주의에 넣게 되면, 그 반대편에 있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을 자유민주주의 정권에 포함시키기 힘든 난점이 발생한다.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 등을 자유민주혁명으로 규정하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가 반자유민주주의였음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이것이 이번 시안의 일관성 결여를 초래한 한 가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고집한 이번 시안은, 윤석열 정권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를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드러냈다. 동시에, 시민혁명과 민주화투쟁에 대한 거부감도 함께 노출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