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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3·4호기 보조급수펌프 전원, 무단 설계 변경해 시공

道雨 2023. 1. 6. 09:51

신고리 3·4호기 보조급수펌프 전원, 무단 설계 변경해 시공

 

 

전문가 “용량 제한된 축전지에 의존…안전 우려”
그대로 따라간 신한울 1·2, 신고리 5·6호기도
원안위, 2년여 전 제보받아 알고도 조처 않다가
바뀐 설계에 맞춰 과거 허가서류 고쳐 뒤늦게 ‘추인’

 

 

* 울산시 울주군의 한국수력원자력 신고리 3호기(왼쪽)와 4호기(오른쪽) 모습. 이 두 원전에 설치된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의 전원이 건설허가 내용과 달리 비상디젤발전기에서 제한된 용량의 축전기로 구성돼 비상시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고리 3·4호기 이후 착공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도 마찬가지다. 연합뉴스

 

 

한국수력원자력이 첫 차세대 한국형 원전(APR1400)인 신고리 3·4호기의 터빈 구동 보조급수펌프의 전원‘비상디젤발전기’에서 ‘축전지’로 무단 설계 변경을 해 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리 3·4호기 설계를 그대로 따라 시공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도 같은 상태여서, 6개 원전의 안전에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한수원의 설계 변경이 절차 위반임을 인정하면서도, 지난해 9월 이것을 사실상 추인하는 행보를 보여 비판이 제기된다.

 

 

‘비상디젤발전기’는 7일, ‘축전지’는 8시간 전력 공급…“축전지로는 안전에 문제”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는 원전에 외부 전력 공급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증기발생기(원자로의 열을 이용해 증기를 발생시키는 설비)에 비상급수를 공급해 원자로를 냉각시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수소폭발 사고를 막는 안전 설비다. 원전의 비상디젤발전기는 추가 연료 보급 없이 이 펌프를 약 7일 동안 작동시킬 수 있다. 반면, 축전지는 다른 설비들에 대한 전력 공급을 차단해야 펌프에 8시간 가량 전력 공급이 가능한 한계가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미 2년 전부터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2020년 한 원전 설계 전문가의 제보로 이 무단 설계변경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처분 시효가 지났고, 안전에도 문제가 없다”며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9월 뒤늦게 신고리 3·4호기 운영허가 당시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를 수정해 설계 변경된 내용에 맞췄다. 그러나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의 같은 분석보고서는 미처 수정하지 못해, 여전히 실제 시공과 불일치하는 상태로 남아있다.

 

 

안전 위해 계란을 두 바구니에 나눠 담도록 허가받고, 실제는 한 바구니에 담은 시공

 

원자력 안전 규정은 다양한 사고와 고장 상황에서 원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안전 설비 설계에 ‘다중성’을 요구한다. 하나의 안전 설비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안전 설비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중층적인 안전 장치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원전이 외부 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사고에 대비해, 똑같은 ‘비상디젤발전기’를 두 대 갖추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증기발생기마다 비상급수를 하는 보조급수펌프를 전동기 구동형(전기로 작동·제어)과 터빈 구동형(증기로 작동하고 전기로 제어) 각 1대씩 모두 2대 설치하고, 각 펌프에 필요한 전력을 각기 다른 비상디젤발전기에서 공급하도록 설계한 것도 마찬가지다.

디젤발전기 둘 중 하나가 고장나더라도, 다른 쪽 발전기에 연결된 보조급수펌프를 통해 비상급수에 차질이 없게 한 것이다. 계란을 두 바구니에 나눠담은 셈이다.

또 보조급수펌프 2대 중 증기의 힘으로 돌아가 전력 소모가 적은 터빈 구동형에는 비상디젤발전기로 충전되는 축전지까지 연결해, 발전기 2대가 모두 고장나더라도 비상급수가 바로 중단되지는 않도록 하고 있다.

 

 

 

한수원은 이런 안전 개념을 적용해, 신고리 3·4호기에도 앞선 원전들처럼 보조급수펌프 2대(전동기구동, 터빈구동)에 각기 다른 비상디젤발전기를 연결한 설계로, 2008년 정부로부터 건설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2011년 설계를 무단 변경해, 보조급수펌프 2대를 모두 같은 비상디젤발전기 계열에 연결하는 형태로 전원망을 시공했다. 계란을 두 바구니에 나눠담도록 한 설계와 달리, 실제 시공에서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은 것이다.

 

2020년 원안위에 이 사실을 처음 제보한 정종한 원자력발전기술사는 “이런 상태로는 외부 전원이 끊기고 증기발생기 1대의 배관이 파손되는 설계기준사고 발생시 멀쩡한 증기발생기 쪽 비상디젤발전기에 고장이 발생할 경우,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가 고장이 발생하지 않은 다른 발전기로부터 전원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서, ‘다중성 요건 불만족’으로 원자로 시설 규칙을 위반한다”고 말했다.

 

정 기술사는 “이런 설계 변경은 결국 비상디젤발전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축전지를 전원으로 사용하게 한 것”이라며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가 용량이 제한된 축전지 전원에 의존하는 상태로는 설계기준사고시 원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기술사는 원자력발전기술사와 산업기계설비기술사 자격까지 보유하고, 원전설계업체인 한국전력기술과 한수원 등에서 원전 설계·검증 업무를 하다 은퇴한 원전 전문가다.

 

 

“안전에 문제 없다”는 원안위, 전문가 “축전지에 의존하다가는 재앙” 반박
 

원안위 관계자는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는 300도 정도인 원자로 냉각재 온도가 또다른 비상냉각시스템인 ‘정지냉각계통’이 작동하게 되는 온도인 170도까지 내려갈 때까지만 작동하면 되기 때문에, 8시간 가용한 축전지로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 기술사는 이에 대해 “정지냉각계통이 작동을 시작할 때까지 보조급수펌프를 축전지로 돌리려면, 운전원이 축전지 전원의 잔량을 확인하며 비필수 설비들의 부하를 수동 차단해야 하는데, 설계 변경이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다보니 비상운전절차서(매뉴얼)에 이런 확인·조치 관련 내용이 없고, 원자력품질보증요건에 따른 축전지 가용시간 계산 결과물도 없다”며 “얼마 동안 공급될지도 모르는 축전지 전원에 의존해 깜깜이 운전을 하다가는, 후쿠시마 원전처럼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는 재앙을 맞는다”고 반박했다.

 

설계 변경 이유에 대해 한수원은 “비상디젤발전기·보조급수펌프·충전펌프 등이 설치된 보조건물을 2개로 구획한 기존 표준원전(OPR1000)과 달리, 보조건물을 4개 구역으로 세분해 화재, 침수 등에 따른 상호 영향을 더 제한하는 4분면 배치 개념을 적용하면서 건설허가 뒤 전원을 변경했다”며 “이 변경 사항은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에 반영해 운영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또 “축전지 전원으로도 필요한 시간 동안 전력공급이 가능하고, 대체교류발전기·이동형발전차 등 다양한 백업 전원공급설비도 활용할 수 있다”며,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원안위는 이 설계 변경으로 안전이 더 강화된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신고리 3·4호기부터 4개 분면 설계 개념을 적용하면서, 보조급수펌프에 제어 전력을 공급하는 것도 바뀌게 됐다. 전체적으로 조금 더 안전하게끔 설계가 간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이 부분만 딱 놓고 보면 기존 설계하고 지금 설계하고 안전성 부분에서 이게(지금 설계) 더 우위의 그런 개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전 설계 전문가인 원자력안전과미래 이정윤 대표는 “4개 분면 분할 설계는 물리적·공간적 분할 개념인데, 이것을 규제요건이 적용되는 안전등급 전원 구성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다 실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 전원이 제한된 용량의 축전지에 의존하게 된 것은 안전 측면에서 분명한 후퇴”라고 짚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비상전원 작동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축전지의 가용시간 이후 비상 냉각기능이 상실되는 일이 발생해 원전사고 완화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설계와 검토의 오류 여지는 현 정부가 급하게 추진 중인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과 같은 안전 문제에 대한 신뢰성까지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원안위 ‘절차 위반’ 인정하면서도, 지난해 9월 축전지 활용 근거 넣어 사실상 ‘추인’

원안위는 한수원의 2011년 설계 변경이 절차 위반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위반 처분은 시효가 지났고, 2015년 운영허가 심사에 변경 내용을 반영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운영허가에 첨부된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를 보면, 원안위의 이런 해명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보고서 본문에 여전히 건설허가 때 내용 그대로 비상디젤발전기가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 전원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시공 상태와 다른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 내용이 운영허가 때도 걸러지지 않은 것이다.

 

원안위는 지난해 9월 뒤늦게 이 보고서를 수정해, 축전지를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 전원으로 사용하는 근거를 만들었다. 원안위 관계자는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 본문이 설계와 다르게 된 것은 보고서 작성 과정의 실수로 보인다”며 “관할 지역사무소에서 한수원의 경미한 사항 변경신고를 받아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심사를 거쳐 신고 수리해 처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기술사는 “원안위가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에서 삭제했다는 부분은, 어떤 설계기준사고 시에도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에 공급 시간 제한이 없는 전원을 공급하라는 규제요건”이라며 “이 요건을 위반한 상태를 바로잡지 않고, 위반 사항에 맞춰 인허가 요건을 개정한 것은 무단 설계변경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