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만 있고 책임이 사라진 사회
“법이 할 수 없는 일.” 용산참사가 벌어진 2009년 쓰인 한 칼럼 제목이다. 처벌을 위한 진상 규명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내용이다.
한가한 주장이라는 비판은 가능하다. 유가족의 애끓는 절규에도 처벌(법적 책임)을 위한 진상 규명조차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기 일쑤다. ‘기껏해야’가 아니라 ‘언감생심’이다.
그럼에도 위 칼럼은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현실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따지고 묻는 일이다.”
법이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그 할 수 없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 하지만 정치가 사법화되고, 사회가 사법화된 사회에서 ‘법이 할 수 없는 일’은 쪼그라져 왔다. 사회가 없어지고 법정만이 남았다.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다음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실관계 자체도 틀렸지만, 방향은 더더욱 틀렸다. 국가의 실패와 치안의 실패를 인정하고(사과), 처벌을 전제로 한 수사 절차로 국한되지 않는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진실 규명), 피해자에 대한 조치(피해 회복),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밝혔어야 했다. 그것이 생때같은 목숨이 도시 한복판에서 죽어간 초유의 사태에 대해 장관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이다. 그런데 장관은 직무유기나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니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을 뿐이다.
이후 정부와 여당은 책임을 묻는 질문에 ‘경찰 수사 이후’라고만 답했다. 범죄로 인정되는 행위의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경찰은 범죄로 의심되는 행위에 대해서만 수사할 수 있을 뿐, 구조의 결함이나 인식의 부재에 대해 조사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다. 그러나 참사 이후 경찰만이 온전히 작동했고, 진상 규명도 정의 구현도 경찰의 몫이었다. 누가 조사를 받았고, 누구에게 영장이 발부되었는지 따위의 뉴스로 수개월이 흐르며 처벌 이외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처벌의 범위와 책임의 범위가 동일시되면서, 비판하는 쪽은 ‘꼬리 자르기다, 윗선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그 반대쪽은 ‘무죄다, 정치적 공세다’라고 싸울 뿐이었다.
처벌 이외의 책임이 사라진 사회에서 책임의 주체들은 ‘유죄면 책임지겠다’고 한다. ‘유죄가 아니면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해 11월1일 “수사 결과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처신을 하겠다”고 했다. 지난 6일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국회에서 사퇴 의사를 묻는 질문에 “사법부의 엄중한 판단과 조사에 의해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본인들에게 어떤 부족함이 있었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본인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4만 경찰의 최고책임자가, 23만 용산구민의 자치행정 책임자가 그저 수사 결과에, 재판 결과에 따르겠다고 답변을 하는 것 자체가 자격 없음의 자백이다.
처벌이 아닌 책임은 무엇인가. 법이 할 수 없고,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보장해야 할 ‘안전’의 수준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현재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2022년 10월29일 이태원에서는 어땠는지, 만약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떠한 보완이 필요한지를 정치가 살펴야 한다. 국가의 예산과 인력을 투여해 신속하게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 제도의 변화까지 구현해야 한다.
참사 생존자와 유족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세밀하게 구분하여 최우선 대응과 중장기 대응으로 나눠 그들에게 약속하고, 사회적으로도 공표해야 한다.
이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권력에 처벌보다 더 큰 불이익이 있어야 하지만, 불행히 우리의 눈과 귀는 처벌만을 좇고 있다.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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