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벽을 보고 이야기해서야

道雨 2023. 1. 19. 09:16

벽을 보고 이야기해서야

 

 

 

가끔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벽을 보고 대화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정성스럽게 말하고 설득해봤자 소용없고, 참자니 속이 터진다. 그럴 때면 당황스럽고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당황스러울 이유도, 기분 나쁠 필요도 없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그런 사람과 대화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일이 생겼다고 적당히 둘러대고 일찍 자리를 뜨면 그만이다. 어쩔 수 없는 일로 엮이지만 않는다면, 그런 사람과 다시 만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벽처럼 느껴지는’ 그 사람이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고, 그와 대화하는 상대가 국민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국민이 비판하고 요구해도 대통령이 “벽”처럼 반응한다면, 그런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국민이 소수라도 마찬가지다.

백번 양보해 비민주적 사회라고 해도 국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적어도 듣는 척은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국민이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이 아무리 비판하고 이야기해도 대통령이 제대로 반응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대통령과 정치인이 국민의 이야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대통령이 국민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흉내조차 내지 않는 상황은 좀처럼 없었던 것 같다. 비판하고 요구하는 국민을 오히려 불법을 자행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체제전복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유족이 “정부의 책임 인정, 진정성 있는 사과,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해를 넘겨도 대통령과 정부의 반응은 한결같다. 대통령은 유족들이 바라는 진정성 있는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진상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여러차례 유가족에게 심심한 사과의 입장을 전했고 정부는 노력하고 있다”는 대답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태원 참사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도, 화물연대 등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이 모색하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은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직접보상”이라는 피해 당사자의 가장 중요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도 노동자가 왜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파업노동자의 삶이 어떤지에 관해서는 관심 없고 귀 기울이지도 않았다. 대신 파업노동자를 “선동과 협박을 일삼는 세력”으로 간주하고, 파업은 “섬뜩한 국가 파괴 선동”이라고 비난했다.

 

대통령의 반응은 더 강경했다. 지난달 13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폭력, 갈취, 고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이 산업현장에 만연한 조직적인 불법행위 또한 확실히 뿌리 뽑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진실을 중시해야 한다. 선동가가 아닌 전문가에게 국정을 맡기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노동자 파업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도 논란의 여지가 매우 크지만, 국정을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는 발상은 정말이지 우려스럽다. 만약 대통령의 말처럼 국정을 전문가에게 맡길 거라면, 국민이 대통령을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통령이 국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국민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치인을 사법시험과 같은 시험을 통해 선발하지 않는 이유다.

 

어려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올라가고 괜찮은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소득과 자산 불평등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는 노동자와 저소득 계층이 고물가와 저성장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지금처럼 평범하거나 사회적 약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외면한다면 국민의 삶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어려운 시기에 윤석열 정부가 여러 다양한 국민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을 느끼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면 적어도 국민이 이야기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