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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난민들을 환영해야 하는 이유

道雨 2023. 2. 1. 09:30

러시아 난민들을 환영해야 하는 이유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세상은 참 이상합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러시아 사람들에게 침략전쟁에 참여하지 말라, 푸틴 정권의 침략을 거부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처럼 침략전쟁에 동원되기를 행동으로 거부하면 선뜻 받아주는 데가 없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왜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르죠?”

 

내게 이 말을 했던 사람은 시베리아 출신 러시아인 알렉산드르(30)다. 그는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병역거부자’와는 꽤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실은 그가 ‘병역’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군 특수부대에서 병역을 수행하고 예편한 젊은이다. 한데 가족이 우크라이나 출신인 그는, 왜 자신이 조상의 고향인 우크라이나에 가서 러시아를 위협한 적이 없었던 형제자매들을 죽여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현재 러시아에서 수감 중인 재야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따르는 민주화 운동가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뿐만 아니라 교육·복지예산 삭감,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양산, 그리고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탄압 등 푸틴 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인 국가주의 정책 전체를 비판적으로 본다. 그가 본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와 같은 반민주·반민중적 정책의 일환이다. 그래서 지난 10월 전쟁 동원을 의미하는 입영통지서를 받자마자, 그는 비밀리에 국경을 넘어 ‘투쟁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알려진 민주주의 나라 한국으로 향했다.

이 ‘민주주의 선진국’ 한국에서, 그는 입국조차 거부당한 채 인천국제공항에서 노숙 생활 중이다.

 

잠시 한국에서 머물던 나는 지난달 15일 서울을 떠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그를 잠깐 만났다. 내가 탈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던 출구와 그가 머무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기약 없이 터미널에서 사는 러시아 국적자로 코카서스 출신인 자샤르와 부랴트 자치공화국 출신인 블라디미르 등 몇명이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러시아의 소수 종족 출신이었다.

 

나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눈 23살 대학생 블라디미르는, 푸틴 정권의 인종차별에 분노했다.

그의 고향인 부랴트 공화국 출신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장 간섭이 시작된 2014년부터 계속해서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 전투에 동원됐다. 러시아 권력자들에게 그들은 ‘값싼 총알받이’ 대접을 받아온 것이다.

소수자가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데에는 경제적 배경도 있었다. 부랴트 같은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변방지역들은 투자에서 소외되는 차별을 겪어온 탓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군이 거의 ‘유일한 고용주’로 군림한다.

 

소수민족 거주 지역 차별이 푸틴 독재의 속성과 유기적으로 결부돼 있다는 점을 알아차린 블라디미르는, 비록 예비역 출신이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역시 비밀리에 출국해 몽골 등을 거쳐, 모든 희망을 걸고 ‘민주주의 국가’ 한국에 왔다. 다른 나라에도 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자랑스러운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가진 한국이 자신을 도와주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한국행에 명운을 걸었던 그들의 기대는 하나하나 차례로 무너졌다. 그들은 일단 입국심사대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알렉산드르는 반정부 시위 경력과 경찰로부터 구타당한 경험 등 자신이 말한 이야기들이 제대로 통역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침략전쟁과 인종차별 등을 포함한 독재정권의 만행에 반대해 한국에 왔지만, 법무부는 그들을 단순한 ‘징집 기피자’로 여겨 “징집 기피는 난민 지위 부여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심사받을 기회 자체를 부여받지 못한 그들은 이의를 제기하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사이 본인들 표현대로 “동물원의 동물처럼” 터미널에 갇혀 노숙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민주주의의 나라’로 여겨졌던 한국은,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환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블라디미르는 “끝까지 참고 견딤으로써 우리가 단순히 부자 나라에서 살아보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고 진정한 정치 망명자임을 증명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지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몇개월 동안 공항에 갇혀 사는 것은 감옥살이와 과연 얼마나 다를까.

 

그들과 헤어지고 비행기를 탄 뒤에도, 그들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나는 계속 반추했다. 그들 얘기대로, 지금 우리에게 자랑인 한국 민주주의는 처절한 투쟁 속에서 태어났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한국의 많은 민주투사는 불가불 공항에 갇힌 이 러시아 난민들처럼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1982~85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나중에 한국방송(KBS) 이사장 등을 지낸 지명관 전 한림대 교수는 1972~1993년 망명지인 일본에 체류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전세계에 알렸다.

훗날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 된 남민전 활동가 출신 홍세화는 1979~2002년 프랑스에서 망명객으로 지내야 했다.

김대중, 지명관, 홍세화가 민주화된 조국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바로 망명지에서 그들이 받은 ‘지원’과 ‘연대’였다.

이런 역사를 지니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외부자들에게 지원과 연대를 베풀어주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책무’ 아닐까?

 

인천국제공항에 갇힌 러시아 난민들은 단순히 민주화만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침략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해서 한국에 왔다. 이야기하자면 일제 학도병에 강제 징집됐다가 결국 탈출에 성공한 김준엽이나 장준하와 같은 한국 현대사의 영웅들도 일제가 중국에서 벌인 침략전쟁 참여를 행동으로 거부한 이들 아닌가. 김준엽이나 장준하, 아니면 베트남에서의 침략전쟁을 비판한 리영희 같은 한국의 양심적 언론인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는 역사 인물들이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온 침략전쟁 거부자들을 우리는 왜 이렇게 문전박대하는가?

 

민주주의나 제국주의 침략 반대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역사적 가치들이다. 이 가치들은 국내외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의 침략반대자와 민주화 운동가에 대한 박대는 우리로서는 ‘자기 배신’에 해당한다.

민주주의 국가 한국의 역사에, 왜 이런 오점을 남기려 하는가?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