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분노와 공포
국민의힘 대표 선출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이른바 윤핵관들이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장면은,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낯설다.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총재 시절이 끝나고 각 정당이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선출하기 시작한 뒤 처음 보는 모습이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도 전당대회에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개입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옛날처럼 대통령이 대표를 그냥 임명하는 게 낫겠다’는 국민의힘 사람들의 푸념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이진복 정무수석이 “안-윤 연대라는 표현을 누가 썼나. 그건 정말 잘못된 표현이다. 대통령과 후보가 어떻게 동격이라고 이야기하나”라고 했다. 대통령실의 다른 관계자는 좀 더 노골적으로 “대통령하고 같이 놀자는 것이냐. 시건방진 소리다”라고 했다. ‘어딜 기어오르냐’는 얘기다. 이게 핵심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평생 검사를 한 사람이다. 검사들의 세계에 연대나 동격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시와 복종이 있을 뿐이다. 하극상을 저지른 검사는 한직으로 밀려나고 대개는 결국 옷을 벗는다.
윤석열 대통령도 겪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가 항명 파동에 휘말렸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맞섰다. 한직으로 쫓겨났다. 옷을 벗지 않고 버텼다. 그런 강직함을 문재인 대통령이 높이 사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다. 그 뒤 문재인 대통령과 맞짱을 뜨고 대통령이 됐다.
좀 이상한 게 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는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시절 부하들에게 충성을 요구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국민의힘 대표, 원내대표, 의원들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있다. 왜 그럴까?
첫째, 사람이 본래 그렇다. 내로남불은 인간의 본성이다.
부모에게 맞으면서 자란 사람이 “나는 이다음에 자식을 절대로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도, 실제로 부모가 돼서는 훈육을 명분으로 자식을 때린다. 폭력이 세습되는 이유다.
둘째,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두려움의 근원은 진실이다.
나경원 전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대사에서 ‘해임’된 직후 “전달 과정의 왜곡도 있었다”고 했다. 진실이다.
“대통령을 에워싸서 눈과 귀를 가리는 여당 지도부는 결국 대통령과 대통령 지지 세력을 서로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진실이다.
안철수 후보는 윤-안 연대가 아니었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될 수 없었다고 했다. 진실이다. 진실을 함부로 말하면 다치는 법이다. 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 후보는 눈치가 너무 없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정곡을 찔렀다. “윤 대통령 측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하여 여의도에 정치적 기반을 갖고 싶은데, 그게 여의치 않으니 짜증이 나오는 거다. 안철수 후보가 윤-안 연대를 거론한 것은 역린을 건드린 커다란 착각이었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대선주자다. 대선주자가 대표가 돼서 공천권을 행사하면 대통령은 바지저고리가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허수아비 대통령이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안철수 후보를 색깔론으로 공격한 것은 너무했다. <제이티비시>가 “윤석열 대통령이 안철수 의원을 겨냥해 ‘이념 정체성이 없다’는 말을 측근을 통해 전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티브이 조선>은 “윤석열 대통령은 안철수 의원이 신영복 교수에 대해 존경의 뜻을 밝힌 사실을 최근 알게 됐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리 알았다면 단일화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대통령실 핵심 고위 관계자의 말을 보도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이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런데 그 문제의 본질은 안철수 후보가 신영복 교수에 대해 그렇게 얘기했는지가 아니냐”고 했다. 비겁하고 졸렬하기 그지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 관철된다면 ‘어대현’(어차피 대표는 김기현)이다. 김기현 대표는 2024년 4·10 총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들의 뜻을 충실히 집행할 것이다. 비윤석열계 정치인들은 대거 공천에서 탈락할 것이다. 그 자리를 검사 출신 법조인들이나 친윤석열계 정치인들이 채울 것이다.
잘될까?
두고 볼 일이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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