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사법독재의 시대

道雨 2023. 2. 9. 09:56

사법독재의 시대

 

 

 

검찰과 법원의 협업 없이 윤석열의 집권이 가능했을까?

시간의 자오선을 거꾸로 돌려서 복기해보자! 윤석열 대통령을 가능케 한 두 개의 국가기관은 단연 검찰과 법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언론의 공헌을 누락시키면 매우 불공정한 일이겠지만,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언론이 검찰과 법원의 위에 자리하긴 어려울 것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국힘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조국 일가에 대한 강제수사 및 기소, 정경심 교수에 대한 유죄판결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문명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가형벌권에 관해 전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지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조국 일가에 대해 사실상 무제한에 가깝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준 곳도, 정경심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해 준 곳도, 정경심 교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 곳이 모두 법원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즉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검찰총장 윤석열의 의지는 법원을 통해 궁극적으로 관철된 것이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정경심 교수 사건과 최근 조국 전 장관에 대한 1심 판결 선고는 속한 진영이 어디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건 간에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대한민국 헌법과 형사소송의 대원칙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는 느낌을 물씬 주기 때문이다.

정경심 사건 판결과 조국 사건 판결은 '무죄추정의 원칙', '의심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 '입증책임의 원칙', '증거재판주의 원칙', '위법수집증거배제 원칙',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원칙' 등,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피고인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공들여 만든 원칙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무죄추정’이 ‘유죄추정’에게, 검사의 유죄 입증책임이 피고인의 무죄 입증책임에게, '의심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가 '의심될 때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에게 각각 자리를 빼앗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정경심 사건과 조국 사건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검찰과 법원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대한민국에 범죄자가 되지 않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선 ‘일상의 사법화’이며 사법독재의 전조(前兆)이기도 하다.

검찰권과 사법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긴절

주지하다시피 87년 체제는 열광과 낙담,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와 반동 정부로의 퇴행이라는 영겁회귀에 갇혀 있다. 이는 민주당의 실력부족과 의지박약에도 상당부분 기인하지만 본질적으로는 87년 체제, 더 정확히 말하면 6공화국 헌법의 내재적 한계에도 일정 부분 연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의 집권을 선거의 외피를 쓴 연성쿠데타의 성공이라고 규정할 때 문재인 정부의 한심함과는 별개로 검찰, 법원 등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사실상 전무했던 6공화국 헌법의 공백에서 가능했던 측면이 분명히 있다. 즉 6공화국 헌법은 군부독재의 재현 예방에만 골몰한 나머지 법복 입은 귀족들이 법을 무기로 법치주의를 참칭(僭稱)하면서 주권자의 주권을 일상적으로 강탈하는 것을 저지할 장치가 사실상 부재했다.

87년 헌법은 법관들에게 너무나 많은 권한과 재량을 부여했다. 군사깡패들의 위세에 눌려 법관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들은 사법권을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도록 해주면 법관들이 스스로 알아서 기본권 보장과 민주적 기본질서 수호의 최후 보루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믿었다.

기대가 환멸로 바뀌고, 믿음이 배반에 자리를 내주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권자들이 피투성이 싸움 끝에 군사깡패들과 인간백정들과 반란군 두목들을 축출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회복시키고 법원에 사법권을 속하게 만들자, 민주화에 손톱만한 기여(기여는커녕 훼방만 놓았다)도 하지 않은 법관들이 민주화의 과실을 독식하며 사법권을 마치 사유물처럼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헌법의 주요 기본원리 중 하나인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관의 지배'로 완벽히 전락했다. 헌법기관도 아니면서 초헌법적 기관으로 군림 중인 검찰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근래 우리가 신물나게 경험 중인 것은 직업법관들로 구성된 법원에게만 사법권을 속하게 할 경우, 직업검사들로 구성된 검찰에 검찰권을 독점시킬 경우, 어떤 파멸적 결과들이 초래되는가이다. 법원의 구성·재판 과정·법관에 대한 탄핵 등 사법의 전 과정에 대한 주권자의 민주적 통제가, 검찰의 구성·검찰의 권한 조정·기소 과정·검사에 대한 탄핵 등의 검찰권 구성 및 행사의 전 과정에 대한 주권자의 민주적 통제가 담보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사법독재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법률로 가능한 것은 그것대로, 헌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그것대로 각각 준비하고 추진해 법원에 속한 사법권과 검찰에 속한 검찰권을 원래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알량한 시험 한 번 합격한 것으로 웃기지도 않는 신(神) 행세를 하고 있는 법관과 검사들에게 ‘너희들도 어김없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보잘것없는 인간’임을 상기시켜 줘야 한다.

 

 

 

이태경 칼럼mindle@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