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검폭’들의 전성시대

道雨 2023. 3. 7. 16:20

‘검폭’들의 전성시대

 

 

 

미국의 역대 대통령 45명 중, 조 바이든 대통령 등 절반 이상인 27명이 법조인이다. 미국의 상·하원 의원 535명 중 175명이 법조인이다. 1964년 1월5일 <뉴욕 타임스>의 ‘의회에 법조인이 너무 많나’라는 기사는 535명의 상·하원 의원 중 315명이 법조인이라고 보도했다. 정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정책을 만들고, 법률을 통해 구현된다. 법률을 다룬 경험은 정치인이 되는 좋은 조건이다.

 

한국에서는 판사·변호사와 함께 법조 3륜에 속한다는 검사 출신 정치인이 미국에서는 드물다. 미국의 법조인 출신 대통령은 대부분 변호사나 판사 경력이다. 민주당의 아버지로 불리는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 21살 때 검사로 임용된 경력이 있으나, 독립전쟁 장군 경력이 대통령이 된 자산이다.

 

검사 경력 의원도 대부분은 주 검찰총장 등 선출직, 고위 정무직 검사를 하거나, 다른 활동을 통해서 정계로 진출했다. 미국변호사협회(ABA)가 펴낸 법조인 출신 의원 리스트를 보니,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인 연방검사 출신도 민주당의 셸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 정도였다.

 

검사 경력만으로 의원, 대통령이 된 사례는 한국이 독보적이다. 한국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형화된 직역이 됐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검사라는 직역은 한국만큼 권한이 크지 않은데다 진출입 통로가 다양해, 한 지붕 밑의 이권집단 의식이 없다. 한국 검사는 권한과 속성 때문에 최고 권력자들에게 좋은 도구였다. 검찰과 검사는 ‘권력의 주구’라는 비아냥을 받았으나, 권력 그 자체는 아니었다. 눈치를 보기는 했다. 모양새를 갖추려고 소극적 저항의 표시를 남기거나, 권력의 말기가 되면 권력에 칼질을 하기도 했다.

 

검찰과 검사는 이제 권력 그 자체가 되자, 눈치를 안 보는 정도가 아니라 후안무치해졌다. 윤석열 정부 이후 온갖 권력직을 검사 출신이 꿰찬 것을 열거할 필요가 없다. 정치권 수사는 군사정권 때에도 볼 수 없던 편향성이다.

 

검사 출신 정순신은 아들의 학교폭력으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물러나면서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판결”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서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자는 공리보다는, 수사와 기소 대상을 기어코 감옥 보내야 한다는 한국 검사의 ‘멘탈’이다. 그런 멘탈이었기에, 자기 아들 학폭 문제에서 끝장 소송을 통해서 피해자를 괴롭히고 아들을 구조하려는 작태를 벌였다.

 

검찰 인권감독관이 법기술로 그런 인권침해를 저질러서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 상관이던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몰랐는지, 모른 척했는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눈치 보지 않고 그를 발탁했다. 그는 검찰에서 막판에 법무연수원 분원장으로 발령났다. 법조계에서는 아들의 학폭 소송이 작용된 인사라고 짐작되고 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윤 대통령 등 검찰 권력자들은 정순신이 억울하게 고생했다고 발탁해준 정황이라고 지적한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이 조어한 ‘건폭’에 비유해서, ‘검폭’이라고 해야 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검사는 주인공에게 “난 니가 깡팬지 아닌지 관심이 없어 이 새끼야. 넌 내가 그냥 깡패라고 하면, 그냥 깡패야”라며 손찌검한다. 영화에서 조폭들은 구역 다툼을 할 때도 명분을 찾는 모의를 하는 데 비해, 검사는 더 조폭스럽다. 이런 영화의 장면을 우리는 지금 목격한다.

 

나올 때까지 털겠다는 압수수색, 끝없는 소환, 쪼개기 영장 청구가 남발된다. “넌 내가 그냥 범인이라고 하면, 그냥 범인이야”이다. ‘경찰은 때려 조지고, 검찰은 불러 조지고, 법원은 미뤄 조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 검사가 그 역할에 가장 충실하다. “찌르되 비틀지 마라”, “신속히 환부만 도려내라”는 심재륜 전 검사의 유명한 수사원칙이다. 검찰정권은 지금 ‘찔러서 비틀고 휘저어 내장까지 끄집어 내어’, ‘병이 중하다’고 떠든다.

이 검폭 정권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검사 출신으로 유명한 미국 정치인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주지사를 빼먹었다. 금융가 수사로 월가의 보안관으로 불린 그는 2008년 취임 2년도 안돼, 고액 매춘 서비스를 받은 것이 드러나 사임했다. 그는 함정수사로 관계를 맺은 매춘조직의 서비스를 이용했다. 비리가 드러난 배경은 검사 때 버릇을 못 버렸기 때문이다. 정적들을 감시하려고 주 경찰을 동원했고, 재판을 법원이 아니라 언론을 통해 벌이는 검사 때의 언론플레이로 일관하다가 주변의 분노를 샀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지금 한국의 검찰 권력이 시현하는 것들이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