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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분리' 원칙에 사망 선고…'윤석열당' 완성됐다

道雨 2023. 3. 9. 10:40

'당정분리' 원칙에 사망 선고…'윤석열당' 완성됐다

 

 

김기현, 당대표 과반 득표…최고위원 전원 친윤계

윤석열-대통령실 노골적 개입해 '지명대회'로 전락

안철수, 나경원과 달리 완주했으나 상처뿐인 패배

지명도‧확장성 약한 당 간판, 총선 역효과 날 수도

정책과 비전 안 보이고 전형적 네거티브전 '진흙탕'

울산 땅 투기 의혹, 강승규 수석 고발 등 불씨 남겨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당은 정당 내부도 민주적 원리에 따라서 가동이 돼야 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으로서 무슨 당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일 출근길 문답에서 내놓은 발언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신청한 가처분이 법원에서 일부 인용되면서, 비대위 재구성 문제 등을 놓고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이에 한 대통령실 출입 기자가 "여당에서 윤심(尹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며, 심정을 묻자 "당무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실제 행동이 판이한 경우가 부지기수인 윤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여당 전당대회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대통령실 참모진과 윤핵관이라는 친위대를 통해 '이준석→유승민→나경원→안철수'를 차례로 축출하거나 무력화하는 과정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물론 당심(黨心)에도 심대한 영향을 줘 '당원 투표 100%'로 진행된 당대표 경선이 어떤 결과로 흘러갈지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었던 예정된 수순이었다.

8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1만여 명의 당원과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결국 김기현 후보가 선출됐다.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원과 윤심을 등에 업은 김 후보는, 과반인 52.93%의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해, 결선투표 없이 당대표로 확정됐다. '어대현'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뒤 처음 열린 이번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의 투표율은 모바일 투표와 ARS 투표를 합해 55.10%(선거인단 83만 7236명 중 46만 1313명)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21년 전당대회 최종 당원 투표율 45.36%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은 역대 최고치다.

이 때문에 수도권과 청년층 신규 당원들의 대거 투표로 조직표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일각의 전망도 있었지만, '안철수 이변'이나 '천하람 돌풍'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철수 후보는 23.37%, 천하람 후보는 14.98% 득표에 그쳤고, 김기현 후보의 울산 땅 투기 의혹을 집요하게 제기하며 사퇴까지 요구했던 황교안 후보는 8.72%로 꼴찌를 기록했다.

그 밖에 4명의 최고위원에는 김재원(17.55%)·김병민(16.10%)·조수진(13.18%)·태영호(13.11%)후보가, 1명인 청년최고위원에는 장예찬(55.16%) 후보가 선출됐다. 지난달 본선 진출자로 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 등 이준석계 후보 4명 전원이 당대표와 최고위원, 청년최고위원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해,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비윤계가 지도부를 상당 부분 차지하는 게 아니냐는 예측도 있었으나, 이들은 본선에서 전멸하고 지도부 전원이 친윤계 일색으로 채워졌다. 윤석열 대통령 '친정 체제'의 완성이다.

김기현 신임 당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당원 동지 여러분과 한 몸이 돼서 민생을 살려내 내년 총선 승리를 반드시 이끌어 내겠다"며 "하나로 똘똘 뭉쳐 내년 총선 압승을 이루자"고 말했다. 연설 뒤 기자회견에서도 "당원들께서 53%라는 굉장히 획기적인 지지로 결선 없이 1차에서 관문을 통과시켜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며 "확고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원팀을 만들어 내년 총선 압승을 끌어나가겠다"고 호언했다.

당초 지지율이 미미했던 김기현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집중 엄호가 없었다면 당선이 불가능했으리라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날도 윤 대통령은 전당대회 축사에서 "나라의 위기, 그리고 당의 위기를 자신의 정치적 기회로 악용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해, 막판까지 안철수 후보를 때리고 김기현 후보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자신의 정치적 기회로 악용' 운운하는 레토릭은, 나경원 전 의원에 이어 안철수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대통령실과 친윤계가 단골로 동원하던 수법이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초 안 후보를 겨냥해 "실체도 없는 '윤핵관' 표현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앞으로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초강경 발언을 한 바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지난달 5일 기자들에게 "국정 수행에 매진 중인 대통령을 후보 자신과 동일선상에 세워놓고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을 안철수 후보 또한 잘 아실 것"이라며 안 의원을 직격했었다.

이처럼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적나라한 개입으로 점철됐다. 전당대회가 아니라 '지명대회'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없애고 당원 투표 100%로 선출하는 '게임의 룰' 변경을 의원총회 한번 없이 밀어붙인 건 유승민 전 의원이 당선되지 못하게 하려는 포석이었고, 나경원 전 의원에게 대통령실과 친윤계가 벌떼같이 달려들어 "반윤의 우두머리"라고 황당한 프레임을 씌운 것 역시 나 전 의원을 강제로 주저앉히려는 조직적 팀플레이였다.

나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실 개입 이전까지 국민의힘 지지층 대상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던 안철수 의원도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 "도를 넘은 무례의 극치"라는 낙인이 찍힌 뒤로 속절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이 '김기현 일병 구하기'를 위해 연달아 출전한 것이다. 안 의원은 쏟아지는 십자포화 속에서도 나 전 의원처럼 중도 포기하지는 않고 전당대회를 완주하는 맷집을 보이긴 했으나, '대선 1등 공신'임에도 여전히 비주류로서 취약하기만 한 당내 기반을 뼈저리게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번 전당대회는 행정권력이 입법권력까지 장악하는 '대통령의 사당화' '당정분리 파괴' 행태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공포정치를 수반한 윤 대통령의 막가파식 당권 개입은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하던 전근대적 권위주의 시절로의 퇴행을 의미한다. 기초적인 정당민주주의마저 실종된 채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한 수구보수 집권당의 현주소를 새삼 확인시켰음은 물론이다.

김기현 대표가 윤 대통령의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움직이면서 내년 총선을 앞둔 공천 작업에도 윤 대통령 입김이 거의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는 점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공통된 예상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공천권 행사에만 눈이 멀어 대중적 지명도와 확장성이 약한 김 대표를 당의 간판으로 내세운 선택이 총선에서 악수(惡手)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에서는 "중도층과 수도권 표심 공략을 고려하면 유승민·나경원·안철수가 아닌 김기현이 당대표가 되는 게 우리한테 가장 유리하다"고 공공연히 얘기해왔다.

'윤석열당'의 완성이라는 측면 외에도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정책과 비전은 안 보이고 갖가지 낡은 색깔론과 폭로전 등 전형적인 네거티브전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도 정치적 후진성을 낱낱이 노출했다.

친윤계는 안철수 의원을 향해 "공산주의자 신영복을 존경하는 사람"이라며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몰아붙였고, 최고위원 후보인 태영호 의원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면서 역사적 사실과 배치된 망발을 되풀이했다. 보수극우 지지층 표심을 노린 태 의원의 '노이즈 마케팅'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이 돼 탈북민 출신 최초로 여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조수진 최고위원이 친이준석계 후보 4인방을 일컫는 '천아용인'이란 용어가 대장동 사건 관련 '천화동인'과 어감이 비슷하다고 깎아내리자 천하람 후보는 "조수진 최고위원을 보면 조선중앙방송 아나운서가 떠오른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장예찬 청년 최고위원은 연예인 아이유‧김혜수 씨를 연상시키는 선정적 웹소설과 불법 레이싱 모임 활동 의혹 등으로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며 경쟁 후보 측의 사퇴 요구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최대 이슈로 부상했던 김기현 대표의 울산 땅 투기 의혹은 전당대회가 끝났어도 좀처럼 가라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안철수 두 후보가 총력을 기울여 KTX 노선 변경과 관련한 외압 의혹 등을 공론화했던 이 문제는 이미 민주당에서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파헤치는 중이며, 총선 때 뇌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아울러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실 행정관의 '김기현 후보 홍보물 전파 요청' 사건과 관련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 것도 심상치 않은 불씨를 남긴 상태다. 공수처 수사에 따라 대통령실의 선거 개입 문제가 단순한 '말폭탄'이 아닌 '조직적 실행'으로서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당 내부에서조차 '진흙탕 싸움'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보다 못한 유흥수 전당대회 선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깊은 유감과 엄중 경고를 표출했던 집권여당의 막장 대회는 당정분리와 정당민주주의의 사망을 고하며 막을 내렸다.

 

 

 

김호경 에디터haojing610@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