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동훈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와 주술이 된 한·미·일 안보협력

道雨 2023. 3. 10. 09:40

한동훈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와 주술이 된 한·미·일 안보협력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파국적인 충돌이 있을 것으로 믿는 것 같다.

2021년 3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필립 데이비드슨 당시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중국이 6년(2027년) 안에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밝혀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중국을 포위하고 압박하면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한다는 ‘중국몽’이 붕괴할 상황에 놓이게 되며, 중국은 더 이상의 추락을 막기 위해 대만을 상대로 공격적인 군사행동을 감행한다는 예언이다. 데이비드슨 전 사령관이 말한 2027년은 윤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다.

 

‘내 임기 중에 전쟁이 난다고? 그러면 핵미사일로 무장한 북한도 덩달아 도발할 가능성이 커질 것 아닌가. 전쟁이 임박했다면 우물쭈물할 것 없이 중국을 버리고 어차피 이길 미국 편에 하루라도 빨리 줄 서는 게 상책이다. 그래서 일본에 고개를 숙이고, 한·미·일 집단안보 체제를 구축하고,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중국 위협에 대한 한·미·일 삼국 공동계획을 수립하고, 성주의 사드 레이더를 일본의 레이더와 연동한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구축하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망설인단 말인가.’

 

이 상상은 순전히 필자의 추론에 불과할까.

 

* 지난달 19일(현지시각)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맨 왼쪽부터),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박진 외교부 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뮌헨/노지원 특파원

 

 

 

지난 7일 출국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들고 있던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는, 미국과 중국이 필연적으로 충돌할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하는 데 딱 들어맞는 책이다.

이 책으로부터 유래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은유는, 패권국과 이에 도전하는 신흥강대국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충돌이 벌어진다는 점을 설득한다.

책 결말에서 투키디데스는 “전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 ‘세력 전이’, 즉 힘의 역전 조짐이 보이면 양국은 전쟁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이 전쟁의 신을 부른다. 고대 그리스에서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바로 그 이유로 충돌했고, 그 이후 2500년 동안 큰 전쟁들도 그런 이유로 일어났으니, 권력 전환기에 미-중 충돌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거다.

 

한 장관이 이 책을 보여준 것은 동맹 앞으로 질주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심정적 응원이자 공감이다.이 정권의 핵심 세력들은 전쟁 불가피론이라는 일종의 주술에 포획돼, 국가의 자존과 정체성을 훼손하면서 미국과 일본에 협력한다.

 

어떤 사상이라도 비판적인 분석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서 다뤄지면 주술이 된다. 집권 당시부터 무속 논란에 연루된 이 정권은 이성의 용광로에서 낱낱이 해부되는, 국민에게 설명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공론과 숙의의 과정을 간편하게 생략해버린다.

도대체 목적과 실익이 불분명한 한·미·일 안보협력, 또는 한·미·일 집단안보 체제를 그처럼 급박하게 추종해야 할 무슨 논리적 설명이 있는가.

 

우리는 북한 위협 때문에 한·미·일 협력을 도모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미·일 협력은 북한이라는 닭 잡는 칼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소 잡는 칼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은유로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미-중 관계를 추상화하면 그게 바로 주술이다.

 

지금 미국의 동맹정책은 중국의 위협을 부풀려 동맹국에 두려움을 강요하고, 그 이면에서 동맹국으로부터 일자리와 자본을 약탈하는 자국우선주의로 치닫는다.

이 주술에 윤 대통령이 딱 걸려들었다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최근 죽음의 백조, 참수작전용 특수기, 스텔스 폭격기라는 군사 아이콘들이 한반도 상공을 누비고 있다. 스텔스 전투기와 미사일, 드론이 보편화한 현대전에서, 몇시간이나 걸리는 비행 동선이 모두 노출되는 구형 전략폭격기에 의존하는 전쟁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상하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을 끝으로 현대 전쟁에서 전략폭격이라는 건 사라졌다.

 

이번 한미연합훈련에서 한미연합상륙훈련 소식도 들린다. 사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구닥다리 상륙작전이란 도대체 어느 시대 이야기인가.

이런 훈련은 중후장대한 군사적 스펙터클을 구성해 영상 조회수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실제 전쟁 양상과는 동떨어진 호화 열병식이자 군사적 주술이다.

큰형님 미국은 이런 군사적 퍼포먼스로 동생 한국의 넋을 쏙 빼놓고, 그 틈에 동생 손에 든 과자봉지에 슬쩍 손을 집어넣는다.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가 든 그 과자봉지에 탐욕스러운 손을 말이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