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탄압하면 움츠러들 것이라는 착각

道雨 2023. 5. 17. 09:07

탄압하면 움츠러들 것이라는 착각

 

 

 

* 노조 탄압을 규탄하며 분신 사망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양회동 지대장을 추모하는 촛불문화제가 2일 저녁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들머리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촛불을 켠 채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강압수사가 건설노동자의 분신을 부추겼다”고 주장하며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주변의 거듭된 권유를 받은 한 사진작가가 아내의 암 투병을 위해 마련한 ‘사진과 삶, 30년 그 어느 날들’ 전시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주말인데도 서울 서대문역 부근 고개에서 길이 막혀 한참이나 차가 서 있었다.

문득 2007년 봄 촛불집회가 한창이었을 무렵, 그 고개를 넘어 광화문까지 달려갔던 일이 생각났다. 사진 전시회에서 받은 감흥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미국대사관 앞에 수천명의 대오가 모였는데, 내 뒤의 젊은 여성이 하는 말이 들렸다.

“서대문역이 집결지라는 ‘택’을 받고 서대문역에서 내렸잖아. 경찰이 어떻게 알고 지하철 출구를 다 막은 거야. 난감했어. 그런데 어떤 언니가 앞에서 ‘금속노조 앞으로 와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저 뒤에서부터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그 왜 ‘와다다다’ 하는 군홧발 소리 같은 거 있잖아. 그 발걸음 소리가 지하철 역사 안이 온통 떠나갈 듯 울리더라고. 그러더니 정말 경찰 봉쇄가 뚫리는 거야. 그날 광화문까지 오는 동안 금속노조가 앞에서 경찰 봉쇄를 몇번이나 뚫었어. 우리는 그냥 그 뒤만 따라왔다니까….”

 

미대사관 앞에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이기는 내 기억으로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금속노조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만큼 혹심한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식칼테러’라는 말이 그 탄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용역회사에서 동원된 경비들이 갖고 왔던 살벌한 무기들을 보면, 사진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 용역 경비들과 싸워 끝내 이긴 적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조직력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파업 양상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에 앞서 훨씬 더 폭력적인 탄압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노동자들의 ‘각목’보다 용역 경비들의 ‘식칼’이 먼저였다.

 

그 전통을 이어받은 조직이 건설노조다.

한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들의 허술한 농성 천막을 철거하자, 건설노동자들이 비계용 쇠파이프를 트럭에 싣고 와 튼튼하게 ‘만년묵기’ 농성장을 설치해준 적이 있다. 비계용 쇠파이프들이 트럭에서 마당에 내려질 때 울려 퍼지는 굉음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은 감히 범접하기 어렵다.

 

그 노동자들을 한번 가까이에서 보자.

 

건설노조 간부에게 “노동조합 활동 하고 나서 달라진 것이 뭐가 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늙수그레한 노동자가 답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달라졌지요. 노동조합이 아니었으면 언제 우리가 역사와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었겠소? 노동조합을 알고 우선 우리 자신이 달라졌지요.”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유독 노동조합에 자부심이 큰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노동조합이야말로 자신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노동자를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준 조직인 것이다.

 

지난 노동절에 분신한 양회동 열사는 늘 자신을 “자랑스러운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양회동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라는 유서 내용에 절절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12일 새벽 경찰이 건설노조 대전충청세종전기지부 지부장과 사무국장 자택 및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 사유를 요약해 정리하면 “협박 또는 해악 등을 가한 사실이 없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전임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그러한 행동으로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 수 있는 정황이 충분히 예상되고, 노조원들의 고용을 촉구하거나 절연복 등 작업복을 제공하는 단체협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게끔 하는 고압적 요구 형태 등으로 보아 회사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동료 노동자들의 고용을 촉구하거나 작업복 제공을 요구하는 노동조합 활동을 ‘공갈’로 취급하는 이런 행태가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열사 분신 며칠 뒤 막연한 사유로 집행된 압수수색은 “그렇게 저항한다고 물러설 우리가 아니다”라는 권력의 의지를 보여준다.

 

부당한 권력의 공통점은, 선한 의지를 탄압하면 저항이 움츠러들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더 많은 투사를 양산할 뿐이다.

가택수색 당하고 구속된 노동자와 그의 ‘동지’들이 어떻게 앞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수많은 양심 세력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면서까지 안간힘 썼던 군사독재 정권도 끝내 무너졌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