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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의 난장판 KBS…예상한 일, 예상 못한 일

道雨 2023. 11. 16. 12:02

박민의 난장판 KBS…예상한 일, 예상 못한 일

 

 

앵커 하차, 시사프로 폐지, '땡윤뉴스' 부활

"과거 KBS 불공정으로 신뢰하락" 폴더사과

국민신뢰 1~2위 지킨 KBS '불공정' 기준 뭔가

직원들 저항 뜻밖 소극적…"KBS 왜 조용한가"

언론인들 몸사리고 시민들만 비판 목청 높이나

 

 

 

박민 사장이 취임 하루 만에 공영방송사 KBS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인기 시사 프로 두 개를 단박에 폐지하고 진행자들을 집에 돌려보냈다. 프로를 제작하던 방송사 PD, 작가 등도 눈 떠보니 일거리가 사라져 쉬게 되거나 한직으로 옮겨질 처지가 됐다.

박 사장 취임 직전 뉴스 앵커들이 줄줄이 자리를 떠나더니, 취임 직후에는 메인 뉴스 앵커가 작별 인사도 없이 강제하차했다.

그 자리를 새로 물려받은 앵커는 첫 방송 진행에서 윤석열 대통령 ‘말씀’을 머리 뉴스로 보도했다. 40년전 ‘땡전뉴스’가 관뚜껑을 열고 부활‘땡윤뉴스’로 돌아온 것이다.

박민 사장의 공식 취임 인사는 느닷없는 ‘대국민 사과’였다.

“공영방송으로서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갑자기 기자회견장에서 폴더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과거 정부에서 ‘불공정 보도’ 사례를 나열하고, “불공정·편파 보도로 물의를 일으킨 기자나 PD는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고 징계하겠다”고 겁박했다.

그런데 사실 공영방송 KBS는 이전 정부에서 국민의 신뢰를 ‘듬뿍’ 받았다.

한국갤럽이 매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KBS는 2019년 신뢰 1위였던 JTBC를 제치고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언론매체 신뢰도 1위를 지켰다. 2023년은 MBC가 1위, KBS가 2위였다.

박민 사장이 어떤 이유에서 ‘KBS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KBS는 오히려 윤석열 정권의 부모쯤 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대선후보 캠프 출신의 사장이 내려와 정부 비판을 축소 보도케하고, 기자를 시켜 민주당을 도청하게 하는가 하면, 세월호 오보에 노조파업 관련 왜곡보도까지, 숱한 불공정·편향 보도를 일삼아 국민들로부터 ‘정권의 시녀방송’이란 오명을 들었던 흑역사를 갖고 있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 5년간은 거리낌 없이 정부를 비판해 국민 신뢰도가 크게 올랐다. 새로 취임한 사장이 국민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잣대 혹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잣대를 갖고 '공정한' 방송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KBS를 진짜 불공정하게 만들어 공영방송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길이다.

박민 사장 취임 직전과 직후 불과 며칠간 KBS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과연 이런 일이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무슨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반대파를 일거에 숙청하듯, 하루 아침에 뉴스 앵커와 시사프로 진행자를 몰아낸 것이다.

지금 벌어진 일들은 그가 취임 전에 이미 KBS 내부의 친정권 종업원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그림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그리 급했기에 취임 하루 만에 이런 일을 벌였을까? 총선이 다섯 달도 남지 않아 마음이 급했던 것일까? 그를 임명해준 용산의 인물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보답하고 충성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 등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13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박민 KBS 사장 후보자 임명안을 재가한 것을 두고 "또 한 명의 낙하산 인사가 공영방송 KBS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순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왼쪽부터 허숙정, 조승래, 고민정, 민형배 의원. 연합뉴스

 

 

 

그러나 박민 사장의 군사작전 벌이듯 한 이번 인사가 예측하지 못한 일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벌여온 그동안의 언론장악 작업과정을 떠올려보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인사청문회에서 박민 사장 후보는 ‘공영방송을 공정하게 만들겠다’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는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말을 마치 녹음기처럼 반복한 바 있다.

자신을 사장으로 추천해 준 이동관 방통위가, KBS 이사회는 물론이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 EBS 이사회 등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례를 보라. 그때도 마치 군사작전 벌이듯 이사들을 내쫓고, 검증절차를 하루 만에 끝낸 뒤, 새 이사들을 내려꽂았다. 박민 사장은 이동관 위원장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KBS에서 똑같이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측하지 못했던 일도 있다.

국민신뢰도 1위의 KBS가 하루 아침에 난장판이 되어도, 또 박민 사장 취임 직후의 ‘땡윤뉴스’가 보여주는 것처럼 불공정한 공영방송의 흑역사를 쓰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어찌 된 일인지 당사자인 KBS 내부는 조용하다.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그의 취임 직후 항의 성명을 냈다는 소식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뿐이다. 공영방송의 위기 앞에서 종업원들의 다수가 파업으로 맞서겠다든지, 한 목소리로 그의 취임과 이번 인사를 비판한다는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라 이해하기도 힘들다. 과문한 탓인가, 부질없는 기대를 한 탓인가?

윤석열 정권이 KBS 수신료를 분리징수토록 해 공영방송의 재원을 흔들겠다고 했을 때도, 임기가 남은 KBS 이사장과 이사들을 억지로 내쫓겠다고 했을 때도 큰 반발은 나오지 않았다. ‘윤비어천가’ 칼럼을 열심히 쓰다 갑자기 취임한 사장이, 지난 몇 년간 자신들이 제작하고 보도한 뉴스와 시사 프로를 ‘불공정·편파’ 보도였다고 폄훼해도 크게 화를 내지 않는다. 

10여년 전 이명박 정권의 방송법 개악 당시, 언론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한 총파업에 동참하며 “KBS 안죽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피켓을 들었던 젊은 기자와 PD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대선후보 캠프 출신 사장이 취임할 때 출근을 저지하며 몸싸움을 벌이던 직원들의 고함소리도 그렇다.

이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공영방송 종사자로서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또 어디로 갔을까?

KBS 종업원들뿐 아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MBC, SBS, YTN 등 방송사의 ‘동지’들은 정권의 방송장악이 이제 남의 일이 된 것인가?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위법·위헌적 언론탄압과 언론자유 침해에 대해 야당이 탄핵을 추진하자, ‘이동관 위원장이 무슨 큰 잘못을 했냐’는 식의 사설을 낸 언론도 많다. 시민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 언론인들에 대한 압수수색, 고소고발, 방송장악과 언론검열 등 언론자유 침해가 수없이 벌어져도, 왜 당사자인 언론인들의 저항은 이렇게 소극적인지 의아해한다.

방송사 종업원들과 기자들을 대신해 소수의 언론과 언론학자, 그리고 몇몇 시민단체들이 윤석열 정권의 방송장악·언론탄압에 항의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SNS와 인터넷 댓글에는 박민 사장의 폭력적 KBS 인사 사태를 비판하는 시민들의 글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퇴직하고 연로한 언론인들의 단체가 윤석열 정권의 방송장악에 항의하고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있다.

윤석열 정권과 이동관 방통위의 언론탄압·방송장악은 이제 시작이다. 정작 탄압받고 장악당한 당사자인 언론인들이 숨죽이고 고개를 숙인다면, 화난 시민들의 항의와 저항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촛불을 들어 저항했던 시민들은, 공영방송의 위기 앞에서 이번에도 또 온전히 그 힘든 싸움을 도맡아야 하는 걸까?

KBS에서 시사 프로를 진행했던 최욱씨는 이번에 강제 하차된 뒤, 한 유튜브 방송에 나가 “그런데 KBS는 왜 이렇게 조용한가”라고 물었다. 질문일까 조롱일까? 

* KBS 사원행동 소속 언론 노조원들이 2008년 12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노조 총파업 3차 결의대회’에 참석해 손팻말을 들고 언론법안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위). KBS사원행동 양승동 대표와 사원들이 2008년 8월 여의도 KBS 본사 앞에서 이병순 사장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아래). 연합뉴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