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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수수 김건희 리스크'가 함정취재라는 '언론 리스크'

道雨 2023. 12. 4. 18:56

'명품수수 김건희 리스크'가 함정취재라는 '언론 리스크'

 

 

 

주류언론들, 함정취재 허용기준 알면서도 '딴청'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공익성·불가피성 제시

KBS·뉴욕타임스 "잠입·함정취재는 취재 방법"

언론인 스스로 만든 준칙에도 "공익위해 허용"

김건희씨 의혹 취재 '공익성' '불가피성' 해당

 

 

                              * '서울의 소리' 유튜브 화면 갈무리


 

 

김건희 씨가 지난해 여러차례 명품 선물을 받아챙겼다는 의혹이 영상을 통해 제기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주류 언론들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거의 모든 주류 언론들은 보도 자체를 하지 않거나 ‘함정취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사안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주류 언론들은 본질에서 벗어난 ‘함정취재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를 ‘함정취재 논란’으로 덮으려는 국민의힘과 입을 맞추고 있는 정치언론의 모습이다. 권력을 비호하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언론 자신이 뻔히 답을 알고 있는 ‘함정취재’ 논란을 가져와 본질을 덮으려 하는 것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함정취재’는 언론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취재방식일까?

‘서울의 소리’ 등이 공개한 김건희 씨의 명품선물 수수와 인사·국정개입 의혹 관련 동영상은, 정말로 금지된 ‘함정취재’의 결과라서 문제삼을 수 없는 보도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사안은 ‘언론이 해서는 안될 함정취재’ 논란으로 키울 사안이 아니다. ‘함정취재로 몰고가는 것’이야말로 이번 사안의 본질을 덮으려는 것이어서 언론이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른바 ‘함정취재’는 허용되는지, 어떤 경우에 허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학자들과 언론 스스로 고민과 논의를 거쳐 정해놓은 기준이 있다. 또 이런 기준에 따라 과거에도 잠입취재, 비밀녹음, 함정취재를 하나의 취재방식으로 활용해 왔다. 언론인들의 취재·보도 교과서라고 불리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빌 코바치·톰 로젠스틸, 2022년 개정4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취재원을 오도하는 특별한 범주의 행동이 있다. 이러한 행동은 신분위장이라고 말한다...20세기 초 넬리 블라이 같은 추문 폭로자들은 때로 정신병 환자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으로 위장해 들어가 정신병자들에 대한 실태를 폭로했다. 그 때 이들은 위장 취재 기법을 사용했다. 오늘날은 텔레비전이 자주 위장 취재 기법과 소형 몰래 카메라를 사용해 비리를 폭로하곤 한다.”

위장취재, 잠입취재, 함정취재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현실 속에서 용인되고 활용되어온 취재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이 교과서는 다음과 같이 위장 취재 혹은 함정취재가 허용되는 세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정보는 속임수를 정당화할 만큼 공공의 이익에 충분히 중요한 내용이어야 한다.

둘째. 기사에 접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어야 한다.

셋째, 기자는 취재원을 오도해 정보를 얻을 때마다 그 사실을 수용자에게 알려야 한다.

공익성, 불가피성, 수용자에 대한 설명이 있을 경우, 함정취재, 잠입취재, 위장취재가 허용된다는 뜻이다.

 

언론인 교육기관이기도 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1년 11월 발간한 월간지 ‘신문과 방송’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있다. 심석태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쓴 ‘기만·함정취재, 공익적 목적에서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제목의 칼럼이다.

“KBS는 ‘방송제작가이드라인’에서 비밀 촬영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도, ‘범죄나 비리현장을 고발한다든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등, 중대한 공익적 가치가 있는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심 교수는 “어떤 단체나 행사 등에 기자 신분을 속이고 몰래 들어가거나, 아예 취업해서 내부 상황을 취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내부를 촬영하는 등의 추가적인 행위가 있다면 더욱 높은 수준의 공익성, 필요성, 긴급성 등을 따져봐야 한다...그 정도로 중대한 공적 필요가 있고, 달리 대안이 없거나 긴급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현직 기자들이 번역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1년 발간한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업계 내부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위장 취업을 하는 경우와 같이 조직적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수행하는 취재가 지속되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가짜 신분을 꾸며내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부서장 및 최고위 에디터들과 상의를 거쳐야 그와 같은 취재에 돌입할 수 있다.”(101쪽)

공영방송 KBS와 미국 뉴욕타임스의 ‘가이드라인’에서도 ‘잠입취재’ 또는 ‘함정취재’를 취재의 한 방법으로 인정하면서, 그 기준을 ‘공익성’ ‘필요성’ ‘긴급성’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인들이 스스로 작성해 준수할 것을 명시한 ‘신문윤리실천요강’도 마찬가지다.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가 작성한 이 요강(2016년 개정)의 제2조 ‘취재준칙’은 아래와 같다.

“①항(신분사칭, 위장 및 문서반출 금지) 기자는 신분을 위장하거나 사칭하여 취재해서는 안 되며, 문서, 자료, 컴퓨터 등에 입력된 전자정보, 사진 기타 영상물을 소유주나 관리자의 승인 없이 검색하거나 반출해서는 안 된다. 다만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로 할 수 있다.”

신분 위장이나 사칭을 ‘원칙적으로’는 금지하지만,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예외로 두고 있는 것이다. ‘공익’에 대해서도 제6조에서 ‘반사회적인 범죄 또는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④항)라고 명시해두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언론학계는 물론이고, 언론인들 스스로 ‘함정취재’ ‘위장취재’ ‘잠입취재’ 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취재의 한 방법으로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함정취재’ 등에 대해 특별히 그 기준까지 명확히 정해놓기도 했다.

이런 기준을 언론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도 위장취재, 잠입취재, 함정취재를 통해 불법·비리를 고발하는 보도를 해왔다. 병원이나 식당, 정부 공공기관, 조직폭력배 등의 불법·비리를 취재할 때 기자들은 신분을 감추고 잠입해 취재하거나 함정취재를 통해 이를 보도한 사례는 많다.

이런 보도가 공익에 부합할 뿐 아니라, 신분과 취재 목적을 드러내고 취재한다면 취재 자체가 불가능하고, 심지어 기자의 안전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서울의 소리’ 등이 보도한 김건희 씨 명품 수수와 인사·국정개입 의혹 취재의 경우는 어떠한가?

 

첫째, 대통령 부인의 명품 선물을 받고 인사·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공익성’에 해당한다. 대통령 부인의 비리·불법·부적절 언행을 감시하는 것이 언론의 당연한 공익적 취재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둘째, ‘서울의 소리’가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녹음·녹화한 뒤 공개하는 것은, 대통령 부인처럼 접근이 어려운 취재원을 취재하기 위한 불가피한 취재방식이었다. 대통령 부인의 비리 의혹을 취재하기 위해 접근하는 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함정취재 논란’을 강조하며 딴청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 정권의 아킬레스건 같은 김건희 씨 비리를 감추고 싶은 이유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땡윤뉴스’로 전락한 공영방송 KBS 등이 관련 기사를 일체 다루지 않고 있는 한편, 조선일보 등 ‘친윤매체’는 함정취재를 강조하면서 이 사안의 본질을 덮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조선일보는 12월2일자 “이른바 ‘응징 언론’의 몰카 함정 취재”(박정훈 칼럼)에서 “더 큰 쟁점은 함정취재 논란”이라면서 함정취재가 단지 ‘불법’이라는 점만을 강조하고 있다. 언론학자는 물론 언론인들 스스로가 명시한 함정취재 허용 사례는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인사청탁을 취재하겠다면서 명품을 미끼로 다른 함정을 팠다. 함정 아니면 없었을 사실을 만들어 낸 것”이라는 궤변을 내놓았다. 김건희 씨 명품 수수와 인사·국정 개입 의혹이 영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공개됐는데도, ‘함정 아니면 없었을 사실’이라는 것이다. 마치 ‘취재를 안했으면 그런 사실은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적극적인 취재를 통해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 아닌가?

언론에게 이렇게 특별히 허용된 취재 방식까지 스스로 부정하면서 권력의 애완견 노릇을 하고 싶은 것일까? 김건희씨 모친의 은행잔고 조작 실형선고, 주가조작 의혹, 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의혹에 이어, 명품선물 수수와 인사·국정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대한민국의 ‘김건희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언론이 ‘함정취재’를 핑계로 본질을 감추고 진실을 호도한다면, 민주주의를 위기로 빠뜨리는 ‘언론 리스크’도 더욱 커질 것이다. 

 

                                 * 조선일보 12월2일 박정훈 칼럼 갈무리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