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 연동형 유지와 병립형 회귀, 무엇이 대안인가?
윤 정부 폭주 막고 개혁 이룰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
민주적 선거제 가로막고 파괴한 국힘 비판이 우선
국힘이 병립형·위성정당 포기하면 문제 거의 해결
국힘 버티니 굴복하고 잘못된 선거제로 돌아가자?
30% 득표율로 40~50% 의석 못 얻으면 '손해'?
병립형 후퇴는 '더럽게 지는' 결과만 가져올 수도
총선이 다가오면서 선거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먼저 몇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첫째,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막고 진보적 개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더 큰 힘을 만들어 함께 싸워나갈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고, 어떤 선거제도냐의 문제는 그것과 연동된 문제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선거제도의 문제에서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서 표의 대표성과 등가성을 높이는 방식이 가장 좋은데, 여기서 가장 비판받아야 할 것은 국민의힘이라는 사실이다. 국민의힘은 그런 방향의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을 거듭 가로막았고, 겨우 만들어지자, 곧바로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그 취지와 효과를 파괴했다.
셋째, 지금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제도를 바라는 사람들이 가장 비판해야 하는 것도 국민의힘이다. 가까스로 만들어진 준연동형 선거제도를 다시 낡은 병립형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민주당을 압박하면서, 수틀리면 다시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겁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강조하며 시작하는 이유는, 마치 선거제도가 그 자체로 반윤석열 투쟁이나 다른 개혁 과제들과 비교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또 이 문제에서 가장 욕해야 하는 것이 마치 국민의힘보다도 민주당인 것처럼 보는 사람도 많아서다.
그래서 선거제 개혁을 가로막다가 먼저 위성정당을 만든 국민의힘보다, 오히려 그것에 대응해 어쩔 수 없이 위성정당을 만들거나 그런 정당에 들어가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던 정당과 정치인들이 더욱더 용납 못할 파렴치한 이들인 것처럼 비난과 배척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기막히게도 국민의힘과 족벌언론들은 시침 뚝 떼고 그런 비난과 배척에 함께 목소리를 보탰다. 이것은 공정하지도 옳지도 않다.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이 병립형 회귀를 포기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민주당이나 다른 진보정당들이 선거제에 대한 고민과 논쟁을 할 이유는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 '조선일보'와 국민의힘은 현재 병립형 회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 관련 사설 화면 갈무리
하지만 그러지를 않고, 그럴 리도 없으니 민주당이 병립형으로 돌아가거나,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은 불가피하고 현명한 타협일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선거제도는 경기의 룰이기 때문에 선수이며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만들기 어렵다’고 변명한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만약 수십 년 동안 1등과 2등을 번갈아 했던 두 선수가 자기들이 영원히 1~2등을 독점할 수 있게 둘이서 짜고 경기의 룰을 만든다면 그것이 공정하다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공정한 것은 경기의 룰을 다른 선수들과 특히 관객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그들이 참가해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양당이 멋대로 선거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 즉 고양이가 생선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해 왔다. 그래서 만들어진 제도 속에서 1, 2당은 지지율이 30%여도 40~50%의 의석을 나눠 가져갈 수 있었다. 지역주의를 부추겨 영남과 호남에서 의석을 싹쓸이했다.
소수 정당의 의석을 훔쳐 가고, 제3당의 싹을 잘라 버렸다. 4년 전 민주당이 진보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압박을 받고 통과시킨 (준)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는 이것을 일부 흔든 정치개혁이었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그것을 파괴하고 의석을 도둑질하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4년 전 국민의힘의 그 시도는 실패했다. 총선에서 그들의 정당특표율은 34.8%였고, 의석 수는 300석 중에 103석(34.3%)이었다.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국민의힘은 4년 전 위성정당 설립이라는 꼼수로 지지율 이상의 의석 수를 얻은 게 아니었다. 꼼수는 통하지 않았고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대패했다.
물론, 소수 정당들이 연동형의 정당한 성과를 맛보지는 못했다. 완전연동형이 아니라 준연동형이라는 한계가 있었고, 국민의힘의 의석 도둑질 시도를 막기 위해 민주당도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선거제 정치개혁의 효과는 빛이 바랬고, 어부지리를 얻은 것은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의 정당득표율은 34.4%였지만, 의석수는 300석 중에 무려 180석(60%)에 달했다. 실제 득표율을 넘어서는 너무 많은 의석은 꼭 이득은 아니었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들도 민주당 몫으로 의원이 됐고, 거품이 많이 낀 180석은 개혁의 동력이 아니라 ‘180석이나 가지고 제대로 개혁한 것이 뭐냐’고 비판받는 이유가 됐다.
지금 국민의힘이 병립형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에는 이런 배경과 이유가 있다. <조선일보>도 4년 전 만들어진 선거제를 “야바위, 엉터리 선거법”이라고 매도하면서, 그것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1, 2당이 30%의 지지율만으로도 40~50%의 의석을 싹쓸이할 수 있는 선거제만이 보수우파의 기득권과 권력 카르텔 등을 유지하기에 최상이라는 판단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일부 사람들이 ‘지금의 연동형 선거제를 유지하는 것은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돕고 과반을 보장해 주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안 맞다. 그러면 국민의힘과 <조선일보>가 스스로에게 유리한 선거제를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말이 된다.
필요한 것은 이제 ‘준’이 아니라 완전 연동형으로 가면서 위성정당도 방지하고,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보장하는 선거제 개혁으로 가는 일이다. 그것이 민주당이 약속해 온 민주적 정치개혁에 가장 부합하고 국민의힘과 보수우파가 싫어하는 일이다. 그런데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 민주당 일부에서는 오히려 거꾸로 가자고 한다.
복잡한 수식을 제시하면서, 이대로 가면 “국민의힘 과반 촉진법”으로 작용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있다. 그게 싫으면 국민의힘과 손잡고 병립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데, 국민의힘이 싫어서 국민의힘과 손잡고 원하는 대로 해주자는 것부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대한 거부감을 이용한 후퇴의 정당화이고 전형적인 반사이익 추구 수법이다. 이들이 정치개혁의 약속을 지키자는 이탄희 의원을 비판하면서 제시하는 어지러운 계산들은 마치 고차 방정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현실적 가정들을 당연한 전제처럼 두고서 단순한 덧셈과 뺄셈을 반복하는 내용이다.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선의와 순수한 의도는 좋지만 선거는 현실”이라며, ‘가치와 당위’는 내다 버리자는 말이다. 지금의 선거제에 따르면 득표율만큼만 의석을 얻을 수 있지만, 국민의힘과 손잡고 병립형으로 돌아가면 35%의 지지율 만으로 45%의 의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도 제시하고 있다.
정해진 결론을 위해 꿰어맞춘 이 시뮬레이션을 보면 군소정당은 10%의 지지율을 얻고도 고작 2%의 의석을 가져가는 것으로 나온다. 즉, 선거제를 개악해서 국민의힘과 함께 군소정당의 의석을 훔쳐 오자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하는 셈이다.
이러한 기묘한 선거공학에 따르면 득표율대로 정직하게 의석을 얻는 것은 손해나 “포기”이고, 득표율 이상으로 의석을 훔치는 것은 ‘현실적 대안’이라고 포장된다. 이런 후퇴와 야합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최병천 전 부원장이라는 것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최병천 전 부원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었고, 근래 경쟁과 시장 논리를 부추기는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을 써서 보수 언론들의 호평을 얻었다. <조선일보>에 나와서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을 공격하면서 “사회주의는 망했다. … 그런데 아직도 민주당의 운동권은 여기에 멈춰있다”고 매도했다.
* 족벌언론들에 자주 나와서 개혁을 발목 잡는 주장을 펴던 최병천 전 부원장이 병립형 회귀를 주장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즉, 최병천 전 부원장의 행보는 민주당이 단지 의석만 많다고 개혁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가진 어떤 사람들이 민주당을 주도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좋은 불평등>에서 교묘하게 ‘모든 불평등이 나쁜 것은 아니’라며 정당화하던 최병천 전 부원장은 이제 “좋은 양당제”를 말하고 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야합해 소수 정당의 몫을 훔쳐 나눠 가지며 다수 의석을 갖는 것이 ‘좋은 양당제’이고, 윤석열과 맞서 싸우며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좋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펼치고 있다. 물론 최병천 전 부원장 등의 이런 주장에 민주당 일부 지지자들이 솔깃하는 심정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승리를 막고 윤석열 신검부 정권의 폭정과 역주행을 막아내고 싶은 절박한 심정은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데 병립형 야합과 후퇴는 그런 목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민주당이 스스로 거듭해서 철석같이 약속하던 정치개혁과 위성정당 방지의 약속을 180도 뒤집게 되면, 거대한 역풍이 불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과 족벌언론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준 민주당에 감사하기는커녕, 이것을 빌미로 삼아서 ‘말 바꾸기와 내로남불’이라며 더욱더 거세게 민주당을 공격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심각한 분열과 갈등의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고,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와 진보적 개혁의 지지자들도 민주당을 맹비난하면서 더 이상 민주당을 믿을 수도 연대할 수도 없다며 비판할 것이 명백하다. 이 모든 반작용들이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악조건으로 작용해 선거 결과도 불리하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 국민의힘과 야햡하고 후퇴하면 내부 분열과 외부 반발과 비판 속에 심각한 후폭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1일 국회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 반대, 거대양당의 정치개악 밀실 담합 규탄 원내외 정당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3.9.1. 연합뉴스
즉, 정치개혁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멋있게 지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약속을 어기고 야합과 후퇴를 하는 것은 ‘더럽게 이기는’ 것이기는커녕 ‘더럽게 지는’ 결과만을 가져올 수 있다. 득표한 만큼의 의석을 갖는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상식에 불과하다. 이러한 기본과 상식을 어기고 불로소득을 얻으려는 욕심과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가 윤석열 정권에 반대하며 싸우는 것은 민주주의와 정치개혁 등의 목적을 위해서다. 국민의힘과 손잡고 선거제를 다시 개악하는 것은 그 목적을 버리자는 말이다. 그것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바꾸는 게 아니라, 수단을 위해 목적을 버리는 것이 된다. '선거를 위해 검찰 개혁을 포기하자'던 논리와 동일하다.
국민의힘은 선거제 개악을 추구하다가 실패하면 위성정당을 만들 것이고, 이러한 반개혁적 폭주와 꼼수는 역풍을 낳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왜 그 역풍을 거꾸로 민주당에게 가져오려고 애쓰는 것일까?
기득권 우파의 거짓 협박과 달리, '역풍'은 개혁을 추진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어기고 개혁을 포기할 때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지윤 편집위원misotolenin@gmail.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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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주장의 허술한 논리들…무엇이 더 중요한가
내년 총선의 본질은 무도한 윤석열 정권 견제
민주당만 겨냥해 벌어지는 병립형-연동형 갈등
최병천의 터무니없는 ‘아주 간단한 시뮬레이션’
국회마저 윤에 넘어간다면…그 절박한 위기감
약속 지키려 다리 기둥 끌어안고 죽은 어리석음
노무현 정신 제대로 모르는 이들의 이재명 비난
나는 내년 총선에 우리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으며 당연히 내 삶의 질도 그 선거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대승을 거두어 무지 무능 무책임 무도한 윤석열 정권을 견제할 수 있게 되기를 갈망한다. 검사들이 점령한 행정부뿐 아니라 사법부마저 ‘검판동일체’의 흉한 몰골을 보이고 있는 마당에 이제 삼권분립 민주체제에서 믿을 거라곤 국회밖에 없다. 탄핵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패스트트랙으로 검사정권의 시행령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것이 총선을 4개월 정도 앞둔 민주시민들의 소망이요, (그렇게 만들겠다는) 각오다.
그런데 나와 같은 정치 성향을 가진 분들 중에서도 시국 인식에 있어 나와 온도차가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내년 총선에 적용될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지켜보노라면, 윤석열 정권을 쫓아내거나 최소한 견제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죽을 것 같다는 절박함보다 소수정당 육성, 다당제를 통한 정치 발전 등을 더 염두에 두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민주당만 대상으로 벌어지는 병립형과 연동형의 갈등
이들 중에는 내가 존경하는 분들도 많다. 이분들이 윤 정권에 대해 내리고 있는 평가가 나와 근본적으로 다를 리 없다. 다만 이들은 민주당 홀로가 아니라 여럿이 힘을 모아야 더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대적 공생’을 유일한 생존 수단으로 삼고 있는 듯한 양당제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국힘당에 대한 혐오 못지않게 민주당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는다. 민주당은 몸집만 크지 미련하고 게으르고 욕심만 많으므로 윤석열 정권과 제대로 싸우지 못할 것 같으니 똑똑하고 강인한 제3의 진보정치세력이 외부에서 견인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이분들은 민주당이 최소한 지난번 총선 때 시행했던 준연동형 비례제 정도는 지켜야 하며, 민주당이 그때처럼 위성정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이렇게 선거제도 개편 논란은 민주당만을 중심으로, 야당 성향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여러 걸음 떨어져서 팔짱을 낀 채 이 논란을 즐기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국민의힘의 선택은 일찌감치 병립형이고 연동형을 할 경우 자신들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연동형의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원튼 원치 않든 이 논란의 주인공이 돼버린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선거라는 것은 여러분도 너무 잘 아시지만 승부 아닙니까? 이상적인 주장,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병립형 비례제에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왜 아니랴! 그는 누구보다도 윤석열 정권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클 것이며, 그런 윤 정권에 대한 ‘구국투쟁’에 있어 자신이 대표로 있는 민주당을 이끌고 맨 앞에 서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이런 입장을 가진 데에는 아마도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같은 정치공학자들의 분석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민주당의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내기도 했다는 최 소장은 최근 이러저러한 매체들을 통해, 현행 준연동형 선거제도를 그대로 내년 총선에도 적용한다면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하고 있다.
너무 터무니없는 ‘아주 간단한 시뮬레이션’
그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지역구에서 120석, 정당 득표율은 둘 다 40%로 가정하는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은 민주당은 127석,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국민의힘은 147석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지역구 당선자도, 정당 득표율도 똑같은데 20석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비례의석수 중 병립형에 해당하는 17석 중 7석을 얻을 것인데 국민의힘 위성정당은 연동형에 해당하는 30석 중 27석을 석권할 것이라는 분석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비례 47석을 전부 연동형으로 할 경우 120(민주당)-152(국민의힘)라는 더 끔찍한 결과를 예고한다.
터무니없는 분석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똑같이 40% 득표율을 올리고 똑같이 120석을 가져간다는 것은 ‘간단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미안한 말씀이긴 한데) 엉터리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 소장은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고자 1987년 이후 역대 9번의 총선에서 민주당이 3승 6패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내년 총선 승부를 반반으로 보는 것이 결코 억지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3승 6패가 아니라 1승 8패를 했더라도 내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대승을 거둘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지역구에서만 163석을 얻은 2020년 총선 못지않은, 최소 과반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지역구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지금 민심은 폭발 직전이다. 믿을만한 여론조사들에서는 한결같이 내년 총선을 정권심판 구도로 보고 있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30%대 초반에서 언제 20%대로 떨어질지 모르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에 왜 겁을 먹으라는 건가. 각종 믿을 만한 여론조사에서 한결같이 30% 중반에서 허덕이고 있는 정당과 40% 초중반을 오르내리는 정당 지지율을 왜 굳이 40%에 맞춰 놓고 계산을 시작하라는 건가.
과반 뺏길 것 같아 연동형 포기하자는 것 아니다
그렇게 총선 대승을 예측하는 내가 왜 민주당에게 병립형으로의 회귀를 주저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싶은 것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지금 윤석열 치하의 대한민국은 한 치의 방심이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엄중한 상황이라는 점. 낙관적인 총선 예측은 그냥 예측일 뿐, 만일 불의의 사태로 다수당 위치를 뺏겨 국회마저 넘어가 버린다면 대한민국은 그냥 그날로 망해버릴 것이라는 절박한 위기감. 그러므로 가능성 100만 분의 1의 위험 요소라도 피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단순히 과반을 얻는다거나 다수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180석 혹은 200석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야만 국회가 제대로 검사독재정권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이런 절박한 소망에 비해 (준)연동형을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너무 빈약하고 허술하다. 우선 이탄희 의원이 연동형 비례제의 조건으로 내세운 ‘위성정당 방지법안’만 해도 그렇다. 이 법안이 소수정당 육성, 다당제를 통한 정치발전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민주당뿐 아니라 국힘당의 위성정당을 ‘완벽하게’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47석(혹은 준연동제 30석)이 골고루 소수정당에 갈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법안 자체의 위헌성 여부를 떠나, 국힘당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터에 조목조목 너무도 허술하다.
국힘당과 위성정당이 합당할 경우 국고보조금을 삭감한다고 하지만 글쎄다. 그 정도 페널티 때문에 눈앞에 굴러다니는 의석을 포기할 국힘당인가. 국힘당과 위성정당 두 당이 합당하지 않은 채 찰떡공조 정치를 하면 어쩌지? 만일 그들이 다수당이 될 경우 보조금 삭감을 무효화하는 입법을 하면 또 어쩌나? 위성정당이 소속 위원들을 차례로 제명하고 이들이 재깍재깍 국힘당에 입당한다면?
설사 민주당이 큰 단안을 내려 민주당만 위성정당을 포기하더라도 그 의석수를 영양가 있는 진보민주정치세력들만 차지하리라는 보장은 있는가. 과거 병립형에서도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투표는 정의당을 찍는 전략적 투표가 이루어지곤 했다. 만일 이번 총선에서도 의미 있는 정치세력이 이준석 등 국힘당 계열이든, 용혜인 등 진보정치세력이든, 의미 있게 뭉쳐 실체를 갖추게 된다면 지역구 투표에서 거대 양당 후보를 택했던 유권자들이 비례투표에서 이들을 택할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약속 지키려 다리 기둥 끌어안고 죽은 어리석음
이탄희 의원 말고도 연동형 비례제를 옹호하며 이재명 대표를 압박하는 어떤 정치인은 ‘국민과의 약속’을 들먹이며 “신뢰를 지키면 국민이 보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이 약속했던) 연동형을 포기하면 참패할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민주당이 연동형 때문에 소수당이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들이겠지만 만일 소수당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나락에 떨어지고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경고는 누가 하나.
상황의 변화를 살피지 않는 약속의 어리석음과 허망함을 잘 설명해 주는 중국 이야기가 있다. 옛날 미생이란 사람이 어느 날 사랑스러운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만나기로 한 그날 미생이 다리 밑에서 여인을 기다리는 중 갑자기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순식간에 개울물이 불어났다. 하지만 미생은 그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 기둥을 붙잡고 버티다가 흙탕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죽음으로써 약속을 지킨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신의를 지킨 데 대한 칭송이 아니라 미련하다는 야유와 경멸뿐이었다.
어떤 이는 이재명 대표에게 노무현을 존경한다면서 왜 노무현 정신을 따르지 않느냐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노무현 정신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승부사’로 불리기도 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더 의미 있는 정치를 위해 자기 개인의 안위와 이득 한도 내에서 승부수를 던졌을 뿐,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도 지금 같은 무도한 정권을 만나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더라면 어떻게든 자신의 정당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진보정치를 키워야 하고 다당제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지 않은가. 한때 ‘눈 떠보니 선진국’이었던 나라가 어느새 후진국으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경제가 폭망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에 전쟁의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국격 자체가 거덜나고 있는 판이다.
이런 판국에 진보정치며 다당제를 운위하는 것은, 내 귀에는 마치 산사태가 임박한 계곡 위에 지금 당장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저쪽으로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 그러나 지금 그 계곡에는 돌덩어리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지, 민주주의를 걸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강기석 칼럼kks54223@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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