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윤석열의 ‘졌잘싸’ 외교

道雨 2023. 12. 5. 11:13

윤석열의 ‘졌잘싸’ 외교

 

 

 

윤석열 정부의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 동원된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고충을 토로했다. 회사의 현업을 작파하고, 배당된 국가들을 순회하면서 난감한 요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해당 국가의 정부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한국은 나랏일을 떠맡아서 해줄 기업들이 있어서 좋겠다”면서, 부산 엑스포를 지지하면 무엇을 해줄 것이냐는 압박을 받았다. 대규모 투자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방문하는 국가마다 이런 투자 요구에 응해줄 수는 당연히 없었다. 한국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기업을 내보낸 순간부터, 해당 국가들은 이 기업에 사례를 요구한 것도 당연하다.

 

한국이 기업까지 동원해 공격적인 유치 활동을 벌이자,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기업들은 엑스포 유치를 위한 국가 방문 일정을 기밀에 부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방문한 소식이 전해지면, 즉각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 국가를 상대로 추가적인 대응을 했다. 기업들이 방문한 국가에 울며 겨자 먹기로 무언가를 약속한 사실이 알려지면, 사우디가 즉각 이를 상쇄하는 대가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기업까지 동원한 유치 시도가 오히려 한국을 지지한다던 국가들마저 사우디의 공략 대상으로 만들어서 넘어가게 했다고 기업 쪽에서 얘기가 나온다. 로키(low key)로 대응했다면 부산 엑스포를 지지하던 기존 표 40표 정도는 지켰는데, 오히려 29표로 줄었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2030년 엑스포는 사우디의 몫이었다. 2025년 엑스포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데, 차기 엑스포를 옆에 있는 부산에 개최하는 것은 대륙별 균형을 봐서라도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제 한국은 국제행사 유치로 성장이나 개발을 자극할 개도국이 아니다.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 등 대형 국제행사의 경제적 효과는 최근 들어서 회의를 자아내고, 특히 선진국에서는 애물덩어리가 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11월29일, ‘간과됐던 위기―오사카 박람회까지 500일’이라는 특집 시리즈물 중 하나인, ‘엑스포가 기념품에서 폭탄이 될 때까지도 기시다는 위기감이 약하다’라는 기사에서, 엑스포 참가국 대부분이 전시관 건설을 미루고 있어 연기설이 거론되는 위기라고 전했다. 10개국 정도만이 전시관을 지을 건설사를 확정했고, 나머지 국가들은 비용 문제 등으로 전시관 건설을 미루면서, 사실상 일본 정부에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8월31일 엑스포 관련 회의 뒤 성명을 내고 “엑스포 준비는 가슴 아픈 상황이며, 저는 정부의 최전선에 서겠다”고 발표해야만 했다.

 

신문은 “‘엑스포는 위험할 것 같다’는 인식(총리 보좌관)이 급속히 확대”되고, “고위 관료들은 ‘언제, 누가 우리에게 연기하라고 말할까’라며 겁먹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일본국제박람회협회에 재무성과 외무성 고위 관계자를 파견해, 건설비와 운영비 외에 별개로 새롭게 발생하는 경비 비용 등을 전액 국비로 부담하기로 했다. 참가국들의 다른 비용도 일본 정부가 더 덮어쓸 것이 분명하다.

 

오사카가 엑스포 유치를 한 배경은 부산과 비슷하다. 도쿄에 비해 오사카 지역이 낙후하니, 엑스포를 통해서 경기와 성장을 자극하자는 의도였다. 자민당 정부는 오사카 지역 표 관리를 위해 유치에 적극 나섰고, 이제 발목이 잡히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엑스포 유치 무산에 대한 사과 성명에서 엑스포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열망을 목격하고, 또 정부에서 좀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과 무관심에 대한 실망감도 느꼈다”며 “서울과 부산을 두개 축으로 해서 우리나라의 균형 발전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말했다.

국제행사를 통해 해당 지역의 표 관리와 발전을 이루겠다는 점은 오사카나 부산이나 다를 바가 없다.

 

국제행사 유치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한물간 쌍팔년대 수법에 국력과 외교를 올인하는데다, 그 과정에서도 객관적인 정세 판단이 차단됐다.

여권에서조차 외교부나 기업들의 객관적인 정세 보고가 대통령 주변이 아니라 대통령 자신에 의해 차단됐다는 한탄이 나온다.

 

한국이 얻은 1표당 무려 200억원을 날리면서 ‘졌지만 잘 싸돌아다녔다’(졌잘싸)라는 비아냥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윤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중국에 대해 막말을 하다가, 지난 11월 중순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으로부터 양국 정상회담을 퇴짜맞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취임 이후 외국 순방만 나가면 벌어졌던 외교적 실례와 참사는 해프닝이 아니다. 객관적인 현실, 이에 대한 정세 판단이 아니라, 한물간 가치와 이념에 바탕한 희망사항을 정신승리로 관철하려 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