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글

<주역>의 지도는 길만 보여주지 않는다. 길이 아닌 곳도 함께 보여준다.

道雨 2024. 2. 5. 11:26

<주역>의 지도는 길만 보여주지 않는다. 길이 아닌 곳도 함께 보여준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월 31일)

 

 

쎙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가끔 폭풍, 안개, 눈이 어를 괴롭힐 거야. 그럴 때마다 너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을 생각해 봐. 그리고 이렇게 말해봐.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쓰러진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는 문장이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인내와 망설임, 설움과 외로움, 그리고 마침내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갔을 때의 눈부신 쾌감을 생각하며, 끝까지 견디고 싶다.

 

벌써 2024년 1월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지난 한 달은 정말 알차게 보냈다. 헬스장에서 런닝 머신을 걷고 약간의 근육 운동 하기를 하루도 거르지 안 했다. 몸이 훨씬 유연해지고, 단단해 진 것 같다.

 

동시에 운동을 하면서, 도올 김용옥 교수의 <주역 강의>를 유튜브로 듣고 있다. 처음에는 매우 낯설었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강의를 듣고 그의 책, <<도올 주역 강해>>를 보면, 이해가 금방 된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오전에 도반들과 <<주역>> 원문을 함께 읽는다. 아직도 <중건괘>를 읽고 있다.

 

<<주역>>를 읽는 시간을 참 빨리 지나간다. 완전히 새롭다.

예를 들어, 공자가 말한 “자기가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예수가 말한 “네 원수를 사랑하라”,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 같은 말들을 들으면, 옳은 말인 줄 알지만,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큰 일 나겠다고 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역>>은 다르게 이야기 한다.

“네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당신을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사람들이 당신과 맞설 것이다.”

“너 자신을 제대로 알고 살아간다면 큰 허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멋대로 행동한다면 네 인생은 극심한 곤경에 빠질 것이다.”

“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면 네 인생의 적지 않은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면 네 인생을 갈등과 전쟁의 재앙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주역>>의 지혜는 우리 삶 깊숙이 개입해 들어온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삶과 실천을 대입해 읽어야 비로소 그 지혜가 빛을 발한다.

 

<<주역>>은 우리들의 삶의 지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주역>>의 지도는 길만 보여주지 않는다. 길이 아닌 곳도 함께 보여준다. <<주역>>은 그리로 가면 가시밭인데 왜 그리로 가느냐고 질문을 하는 책이다. 길이 아닌 가시밭에 치명적인 유혹이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주역>>은 우리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 깊숙이 개입하여 발언한다.

 

삶의 굽이마다 절박한 문제들이 돌멩이처럼 날아온다. 운명의 돌멩이가 날아들지 않는 인생은 그 어디에도 없다. 돌멩이가 날아올 때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방법은 3가지이다. 피하든가, 맨손으로 잡아내든가, 아미면 방망이로 후려치든가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돌멩이들은 내가 딛고 설 땅의 든든한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굽이마다 길함과 흉함은 양파처럼 여러 겹이다. 길한 일이나 흉한 일이나 모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인생에 틈입해 들어온다.

 

명나라 때의 문인 육소형은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하늘이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작은 복으로 그를 교만하게 만들어 그가 복을 받을 수 있는지를 본다. 하늘이 사람에게 복을 내리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작은 재앙으로 그를 경계하도록 만들어 그가 재앙을 구해낼 수 있는지를 본다”는 거다.

실제로, 살다 보면, 작은 행운을 얻었을 때 교만에 빠지면, 그 행운은 되레 큰 재앙을 불러들이는 통로로 변할 수 있다. 반면 작은 재앙이 닥쳤을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방비를 하면, 그 재앙이 되레 인생에 큰 복으로 변할 수 있다.

역경과 시련이 우리를 단련시켜주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저절로 단련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은 순전히 역경을 만난 사람의 몫이다.

 

유대인 속담에 “낯선 사람을 냉대하지 마라. 그들은 위장한 천사일 수도 있으니.”

 

이처럼, <<주역>>은 ‘궂은 일이 닥쳤다고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마라. 그 안에 당신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행운의 열쇠가 담겨 있을 수도 있으니, 작은 행운이 닥쳤다고 해서 너무 기뻐하거나 자만에 빠지지 마라. 그것이 당신을 거꾸러뜨리는 돌부리로 변할 수 있으니.’

남루한 차림으로 오는 행운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가오는 재앙의 유혹을 어떻게 간파할 것인가? <<주역>>은 바로 이런 안목을 계발하기 위해 고안해낸 책이라는 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새옹지마(塞翁之馬)’ 이야기처럼, 행운과 불행, 길함과 흉함이 양파껍질처럼 여러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이 인생이다.

‘새옹지마’ 이야기에는 인간의 실천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우리가 운명에 관심을 가지는 까닭은, 피할 수 있는 재앙은 피하고 취할 수 있는 행운은 잘 찾아내 손에 넣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새옹지마’ 이야기는 우리가 재앙을 피하고 행운을 쟁취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가를 일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거다.

 

<<주역>>은 모두 64 가지 이야기 실려 있다. 이 이야기들은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을 빼어내어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이든 예외 없이 길함과 흉함이 교차해 등장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주역>>은 어떤 면에서 64 가지의 ‘새옹지마’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주역>>은 반드시 인간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나를 흥미롭게 한다.

 

<<주역>>에서는 이 이야기 하나하나를 ‘괘(卦)'라고 한다. 총 64개의 ‘괘’가 있다. 각각의 ‘괘’는 우리가 인생의 어느 굽이에 선가 만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이든 선택하게 마련이다. 기다리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조차 선택이다.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카이로스(때)’의 순간들이다.
- 돌진(돌진)해야 할 때가 있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 헌신해야 할 때도 있고 치밀해야 할 때도 있다.
- 전쟁을 불사할 때도 있고, 사랑으로 감싸야 할 때도 있다.
- 번개처럼 움직여야 할 때도 있고 산처럼 버텨야 할 때도 있다.

 

<<주역>>은 각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면 길해지고 허물을 피해갈 수 있는지, 어떻게 행동하면 어려움에 처하고 흉해 질 것인지 보여주고자 한다. 길함과 흉함 사이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다는 거다.

이상수의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에서 얻어온 생각들이다. 본격적인 <<주역>> 독해를 위해 일고 있는 책이다.

 

그러고 보니,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문제는 우리가 때때로 ‘잘못된 선택’보다 ‘선택해야 할 시기에 선택을 회피’해서 불행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선택에 너무 신중하면 높은 매몰 비용 때문에 오히려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역설 때문에 ‘그냥’은 최선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남들이 뭐라든 그냥 선택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비록 그 선택이 성공은 아니어도, 실패는 종종 알을 깨고 또 다른 세계로 나가는 길이 된다. 삶은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선택의 과정이다.

 

올해는 <<주역>>을 잘 공부해, 내 남은 삶의 선택에 도움을 얻고, 그 선택에 따라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생각이다.

 

선택 문제를 다룬 좋은 시 한편 공유한다.

 

 

선택하기에

                          / 임영준

 

네가 서 있는 세상은
암담한 막장이 아니야
우리가 바라는 낙원은
아스라한 별이 아니야
깃드는 바람 따라
충만한 열망을 따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선택하기에 달린 거야

 

 

 

 

박한표 : 인문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