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포털이 좌파에 장악됐다는 ‘개소리’

道雨 2024. 8. 23. 12:32

포털이 좌파에 장악됐다는 ‘개소리’

 

국힘당 "포탈 좌편향 바로잡겠다"며 TF 발족

"포털 제휴언론 선정하는 제평위 손보겠다"

그러나 포털 내 다수 언론은 좌파 아닌 보수·중도

언론지형 오래전부터 보수편향 '기울어진 운동장'

방송 장악 이어 '포털 장악' 노리고 하는 거짓말

 

점잖지 못하게 비속어인 ‘개소리’란 말을 쓰게 돼 유감이다.

‘개소리’는 미국 프린스턴대의 저명한 도덕철학자 해리 프랑크퍼트가 쓴 ‘개소리에 대하여’(원제 ‘On Bullshit’)에 나온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개소리’는 ‘거짓말’ ‘협잡(挾雜)’ '헛소리' 등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첫째, 거짓말, 협잡, 헛소리는 적어도 자기 말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진실에 대한 최소한 존중을 보이지만, ‘개소리’는 진실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전혀 없다.

둘째,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 떠드는 거짓말은 ‘개소리’다.

셋째, 거짓말은 그것이 거짓임이 들통나면 부끄러운 줄 알지만, ‘개소리’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요약하면, '개소리’란 거짓말 중에서도 특히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저 자기 이익만을 위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마구 떠드는 거짓말이다.

 

프랑크퍼트 교수는 책에서 ‘개소리’란 ‘언어타락 시대를 꿰뚫는 날카롭고 강력한 개념’이라고 썼다.

요즘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타락한 언어를 들어보면, ‘개소리’가 비속어라고 하더라도 이 말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또다시 “포털이 좌편향됐다”면서, 이를 바로잡겠다고 선포하고 나섰다.

미디어스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지난 12일 포털에 입점한 콘텐츠 제휴사의 편향성 문제를 바로잡겠다며, ‘포털 불공정 개혁TF’라는 조직을 발족했다. TF 위원장을 맡은 국힘당 강민국 의원은 “(네이버·다음이) 편향된 뉴스 유통 플랫폼 중심지라는 국민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뉴스제휴시스템 편향성 문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포털이 ‘좌파 언론’에 장악되어 편향되어 있고, 이를 고치기 위해 포털 입점 매체를 선정하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를 정부 입맛에 맞게 손보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 보는 네이버·다음 포털이 “좌파에 장악되어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두 포털 회사의 임직원이 좌파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포털이 제공하는 뉴스 중에 ‘좌편향’ 뉴스가 너무 많고, 또 포털에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사 중에도 ‘좌파’ 언론사가 훨씬 많다는 뜻으로 보인다. 혹은 ‘좌파’ 언론사의 ‘좌편향’ 기사의 포털 노출이 너무 많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 말은 사실인가?

 

네이버·다음 포털에 들어가 보자.

 

네이버의 ‘뉴스스탠드’와 ‘뉴스홈’을 클릭해 보면, 수많은 언론사 이름과 기사들이 뜬다. ‘뉴스스탠드’는 대략 100여개 안팎의 언론사 가운데 이용자가 구독하는 매체의 기사를 보는 방식이다. 각자 ‘구독’하는 언론사 기사나 언론사별로 기사가 뜨기 때문에, 보기 싫은 언론사 기사는 읽지 않아도 된다.

 

다음에서는 좀 다르다. 피씨에서 ‘주요뉴스’와 모바일에서 ‘이 시각 추천뉴스’가 화면에 노출되는 방식이다.

 

어쨌든 수많은 언론사의 기사들이 노출되는데, 국힘당의 주장에 따르면, 이 많은 언론사 중에 ‘좌파’ 언론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그래서 포털에 온통 ‘좌편향’ 기사가 넘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좌파 장악’ ‘좌파 편향’이라는 주장이 성립할 것이다.

 

그러나 포털 이용자들은 이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네이버에서는 내가 원하는 매체의 기사를 보면 그만인데다, ‘뉴스스탠드’에 입점해 있는 매체 중에는 ‘좌파’ 매체보다 그렇지 않은 매체가 더 많다. 뉴스 화면에 노출된 기사들도 ‘좌파 편향’으로 보기 힘든 기사들이 많다. 다음 포털에서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다음 포털에 ‘입점’되어 있는 언론사 중에 실제로 ‘좌파’나 ‘좌편향’ 언론사들이 그리 많지 않고, 그러니 포털 뉴스화면의 기사들이 ‘좌편향’ 기사로 물들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 네이버의 뉴스스탠드 화면 갈무리

 

 

포털에 윤 정부와 국힘당이 말하는 ‘좌파’ 언론사는 몇이나 될까?

포털 화면에 매체명과 기사가 노출되는 언론사, 즉 ‘콘텐츠 제휴언론사(CP사)’는 100여개 안팎이다.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와 경제지, 영자지, 인터넷신문, 주간지, 전문지, 지역신문, 지상파 방송, 뉴스전문채널, 종편 등이 포함된다.

이 언론사들의 성향을 모두 따져보긴 힘들지만, 이 가운데 국힘당이 ‘좌파 언론’로 지목한 매체는 한겨레, 경향, MBC,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뉴스타파 정도일 것이다. 100여개 ‘입점 언론사’ 중에 10분의 1도 안된다.

이 정도의 ‘좌파’ 언론사가 네이버·다음 두 포털을 온통 ‘장악’하고 ‘좌편향’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인가?

 

그럼 100여개 ‘입점 언론사’ 중 90%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언론사들은 어떤 언론사인가?

여론시장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주류 언론’ 중에 조중동,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의 전국단위 종합일간지가 있다. 조중동은 ‘극우’나 ‘극보수’로 분류되고, 한국일보는 자칭 ‘중도’, 서울신문은 조선일보의 ‘아류’ 정도의 논조다. 순복음교회와 통일교 같은 보수적 종교기관이 주인인 국민일보, 세계일보도 ‘보수’ 성향이 당연하다.

대기업과 건설회사가 주인인 경제신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기업이 운영하는 SBS, YTN, MBN, 국가기간 통신사인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좌파’일 리 없다. 특히 공영방송 KBS는 윤 정부 들어 이승만 다큐를 방영할 정도로 극우로 전향했고, 조선, 동아가 운영하는 두 종편TV는 모회사와 똑같은 ‘극우’또는 ‘보수’ 매체일 뿐이다. 인터넷신문 중에도 데일리안 따위의 몇몇 매체들은 ‘보수’를 넘어 ‘극우’ 매체로 분류된다.

수많은 지역 언론, 전문지들을 ‘좌파’라고 부르면 당장 항의가 쇄도할 것이다. 이들은 ‘좌파’라기보다는 ‘보수’이거나 ‘중도’ 혹은 ‘무늬만 중도인 보수’라고 보면 맞다.

 

이 정도면 포털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좌파’가 아니라 ‘극우’나 ‘보수’세력이라고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와 국힘당은 포털 입점 매체의 90%에 해당하는 많은 ‘극우’ ‘보수’ 혹은 ‘무늬만 중도인 보수’ 언론들이 매일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데도, 짐짓 모른 척하며 거꾸로 ‘좌파가 포털을 장악’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진실에 대한 존중도 없고, 굳이 진실을 따지려 하지도 않으며, 부끄러움도 모른 채 그저 우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언론사 기자 1만2천명이 가입한 최대 언론단체인 기자협회를 ‘좌파 언론단체’라고 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저명한 도덕철학자가 명명한 ‘개소리(bullshit)’인 것이다. 

 

* 다음의 뉴스포털 첫 화면 갈무리

 

 

 

혹시 윤 정부와 국힘당이 ‘포털 입점 매체들 다수가 좌파 편향은 아닐지라도, (알고리즘에 의해) 좌편향 뉴스가 너무 많이 노출되고 있으니 그것이 좌파에게 장악된 것’이라고 우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 역시 ‘개소리’다. 포털에서 그런 일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거니와, 포털 뉴스가 이용자 개인의 정치적 편향에 의존한 알고리즘 탓에 편향되게 노출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좌파의 포털 장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2017년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개인화된 뉴스소비가 양극화를 초래할 가능성은 높지만, 포털뉴스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주장은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MBC 탐사보도인 ‘스트레이트’가 2020년 보도한 바에 따르면, 네이버에서는 52.2%, 다음에서는 47.5%가 보수언론의 뉴스였다. 보수적이거나 비교적 중도 성향인 통신사 뉴스 20%를 합치면, 두 포털의 보수·중도 성향의 뉴스는 70%가 넘는다.

 

한국의 여론시장이 ‘보수언론’ 편향으로 기울어진 지는 오래 전부터다. ‘보수’ 세력이 오랜 세월 정권을 잡고 기득권을 유지해온 탓에, 언론도 대부분 ‘보수’의 편에 서 왔다. ‘보수’ 정권이나 ‘보수 카르텔’의 한 축인 재벌 대기업을 비판하다 ‘좌파 언론’으로 몰려 광고가 끊어지면 회사 문을 닫아야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언론사도 기업이라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주류 언론들의 이런 ‘보수’ 일색 경향은 포털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언론이 갖고 있는 ‘보수 편향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민주당 정권 시절과 국힘당 계열의 ‘보수’ 정권 시절 언론보도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는 주류 언론으로부터 무한정의 찬양과 지지를 받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주류 언론들은 당당히 정권을 찬양하고, 반대로 비리와 무능은 덮어주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숱한 비리를 눈감아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형광등 100개를 켠 아우라’를 비유하면서까지 찬송가를 불렀다.

 

가정법이긴 하지만, 주류 언론들이 찬송과 지지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의 무능을 제대로 견제했다면, IMF사태를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 박근혜 정부를 잘 감시했다면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보수 편향’의 언론으로부터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거의 모든 주류 언론들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와 국힘당은 왜 이렇게 사실도 아니고 근거도 없는 뻔뻔한 거짓말, 즉 ‘개소리’를 계속 하는 것일까?

윤 정부는 출범 직전과 올해 4월 총선 직전에도 똑같은 주장을 했는데, 총선에서 국민의 처절한 심판을 받고도 전혀 바뀐 게 없다. 윤 대통령과 국힘당은 총선 참패가 국정운영의 총체적 실패가 아닌 ‘홍보 실패 탓’이나 ‘언론을 장악하지 못한 탓’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정부와 국힘당은 다수의 국민들이 방송과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부 비판적 목소리가 방송에서 나오지 않도록 방송장악을 추진해왔다.

공영방송 KBS는 지난해 장악 완료했으니, 남은 MBC도 장악하려고 ‘극우’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명을 밀어붙이고, 군사작전하듯 MBC 대주주 방문진 이사를 교체했다.

이번에는 포털에서 정부 비판 언론사를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KBS·MBC가 좌파노조에 장악됐다”는 헛소리에 이어 “포털이 좌파에 장악됐다”는 ‘개소리’는, 포털 장악을 노리고 나온 말이다.

이 정부와 국힘당은 언론을 온통 ‘극우’와 ‘어용’으로 전락시킬 생각뿐이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