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무지…미래는 ‘식물 대통령’
“대통령께서는 뉴라이트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계실 정도로 이 문제와 무관하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달 2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런 답변을 내놨을 때, 잠시 헷갈렸다. 속된 말로 윤석열 대통령을 ‘실드’ 친 것일 텐데, 이보다 심한 ‘디스’가 없다 싶었다. 뉴라이트 의미도 모르는 이가 대통령이라고 핵심 참모가 실토했다.
이틀 뒤 모든 게 명쾌해졌다. 생중계한 지난달 29일 기자와의 질의응답에서 윤 대통령 스스로 무지를 인정했다.
“뉴라이트 얘기가 요새 많이 나오는데, 저는 솔직히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릅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이후 뉴라이트 인사들이 등용된다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우리 정부의 인사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 그 직책을 맡을 수 있는 역량, 이 두가지를 보고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무슨 뉴라이트냐 뭐냐 이런 거, 그런 것 안 따지고 그렇게 하고 있고요”라고 강조했다.
씁쓸했다. 인사 참사 비밀을 대통령 입으로 온 세상에 공표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땐 충성심, 역량은 물론, 어떤 역사 인식을 갖고 어떤 언행을 하며 살았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독립기념관장, 국가인권위원장 등 상징성이 큰 곳은 더욱 그래야 마땅하다. 민족 자주 독립정신의 산실인 독립기념관장이라면 “일제강점기 국민 국적은 일본” “건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시작해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됐다”고 주장한 이는 걸러내야 한다. 그게 윤 대통령이 잘 모르는 뉴라이트의 핵심 논리다.
국가인권위원장은 발 벗고 나서 인권의 지평을 넓힐 인물인지 따져보는 게 기본이다. 그게 어렵다면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동성애가 질병을 확산한다는 수준 미달자라도 피해 가야 한다.
법인카드를 마구 쓰며 제가 몸담았던 방송사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태극기 부대 수준의 반노동적 발언을 일삼는 김문수 노동장관까지, 잇따라 함량 미달 논란에 휩싸인 건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르는” 대통령이 “뉴라이트냐 뭐냐 그런 것 안 따지고” 인사를 한 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되레 공정한 인사의 증거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한 대통령 곁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참모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김태효 차장 같은 이가 외교·안보 정책을 좌우하는 요직에 포진했다. 남북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강제징용 배상 제3자 변제’,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등 이른바 ‘친일 외교 논란’이 불거진 건, 그가 윤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잡은 탓이라 보는 이들이 많다. 세간에선 이종찬 광복회장이 말한 “용산에 있는 밀정”으로 그를 지목하기도 한다.
더 근심스러운 건 윤 대통령이 잘 모르는 게 뉴라이트 개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정 브리핑에서 블룸버그 보도를 인용해 “한국 경제 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는 윤 대통령이 현실 경제도 잘 모른다는 게 하루 만에 증명됐다.
다음날인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산업 생산 지수는 전달보다 0.4% 감소해 3개월 연속 감소 추세를 보이는 등, 각종 지표가 그의 말과 달랐다.
“의료 현장, 지역 종합병원 좀 가보시고”라며 “비상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는 윤 대통령의 진단은, 그가 국민과 얼마나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지 상징하는 어록이 됐다.
“새벽에 이마가 깨졌는데, 응급실 22곳에서 거절당했다”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보며, 국민은 “힘 있는 이도 저 지경인데, 내 부모, 어린아이가 응급실에 가야 한다면 어쩌지…” 걱정이 태산이다.
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의료 현장에 가본 게 언제인지를.
정치에 대한 무지는 차고 넘친다.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며 국회를 탓한 윤 대통령은,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첫 대통령이다. 제1 야당을 무시하고, 여당 대표조차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밥 먹자던 약속까지 깨버리는 ‘밴댕이 정치’, 거부권과 ‘전 정권, 야당 표적 수사’에 기대어 남은 2년9개월을 버틸 심산인 듯하다.
총선 패배, 20%대 낮은 국정 지지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앞날엔 ‘식물 대통령’이 기다릴 뿐이다.
용산에 진짜 참모가 남아 있다면, 대통령 귀를 잡고 “중요한 건 국민의 마음”이라고 지겹도록 외치기 바란다.
신승근 뉴스총괄부국장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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