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새옹지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이 기르던 말이, 도망가서는(凶),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는데(吉),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고(禍), 그로 말미암아 징병(徵兵)을 면하여, 다른 사람처럼 전사(戰死) 하지 않고 살아났다(福)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 자신도 그 크기나 정도는 다를 지라도 일상생활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을 겪었기에 소개해 본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군대에서도 축구를 했고, 한의사가 되어서도 한의사회(축구팀) 소속으로 많은 경기(연습, 대회)에 참석했다. 그러던 중(2008년 경으로 생각된다) 울산종합운동장 보조구장(인조잔디)에서 다른 시도의 한의사회팀과 친선경기를 하던 중 무릎에 심한 부상(십자인대 파열)을 입었다.
나이도 있고(50대 초반), 근무 형편 상 여의치 않아 수술을 하지 않고 지내기로 했고, 그 이후로 축구 경기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후에는 팀의 감독으로 몇 년 간, 또 그 후에는 후원자로서 응원차 참석하는 경우였고, 지금은 축구팀에서 완전히 탈회한 상태이다.
축구로 부상당하기 전에 집사람과 함께 간혹 동네 탁구장에서 탁구를 한 적이 간혹 있었다. 집사람은 나보다 먼저 탁구를 배워 동호회 활동을 할 정도로 활발하게 치고 있었다.
축구를 그만 둔 후 나는 탁구를 새로 시작하기로 하였다. 무릎을 붕대와 보호대로 감싸매고, 가급적 무릎이나 허리를 덜 사용하는 자세로 탁구를 칠 수 밖에 없었다. 탁구를 치다가도 걸핏하면 무릎을 삐끗해 그때 마다 한동안씩 탁구를 쉬고는 하였다.
그래도 해운대 신시가지의 탁구장에 등록하여 자주 치면서 레슨도 받고 동호회 활동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집사람도 예전에 활동하던 동호회의 활동을 접고 나와 함께 탁구를 했다.
동호회 활동을 하다보니 여러 사람들과 알게 되고, 탁구장 자체 대회나 해운대구 또는 부산시 탁구대회에도 간혹 나가게 되고, 때로는 예상치 않게 상을 받기도 하는 등, 생활에 활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의욕이 앞선 채 탁구를 열심히 하다보면 어깨에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간혹 생긴다. 집사람과 나 또한 어깨에 부상을 당하고, 또 오십견도 생겨 한 동안 탁구를 쉴 수 밖에 없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 보니,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것 중, 식물(주로 꽃)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기로 했다.
명색이 한의사인데도 불구하고 식물들의 이름을 전혀 모르기에 한심하다고 생각해오던 중이었고, 손녀들 데리고 산책하는 중에도 이름을 몰라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 마음 속으로 부끄럽기도 하였다.
이 기회에 동네 골목이나 길가에 보이는 꽃들부터 이름이라도 알아보리라 마음먹었다. 사진을 찍고 비슷한 것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등 열심히 하다 보니, 지인이 '모야모'라는 앱도 알려주어 지금까지 매우 잘 활용하고있다.
야외로 나가면 늘 보이는 것들이 식물이다 보니, 자연 상태로 방치된 풀밭에 더욱 눈길이 가게 된다.
요즘은 울산들꽃학습원에 월 1~2회 정도 나들이 겸 꽃구경(배우기)을 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에 있는 싯귀처럼, 우리도 그렇게 느껴지고, 시인의 그 감동을 우리도 함께 느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또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풀꽃 시인(나태주)의 마음처럼, 우리도 작은 것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집사람과 나는 문화유산(박물관 포함)답사를 많이 다녔는데, 같은 장소를 여러 번 가기도 하지만, 그 횟수는 특정한 곳에 한하고, 또한 많아야 수 회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식물(주로 꽃이지만)은 같은 장소라도 갈 때마다 다른 모습과 다른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러 번을 가도 지겹지가 않고 수십 번을 가도 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곤 한다.
야생화(나무를 포함) 이름 알기에 관심을 가진 지 벌써 10년 정도 되었는데도, 아는 것은 너무 적고, 이름도 자꾸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우리 나들이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고 만족도가 높다.
나는 노래를 듣거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친척들이나 지인들, 친구들과도 노래방에 자주 다녔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성대를 상했는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늘 부르던 노래도 고음 저음 모두 잘 안되고, 중간음도 음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음이 제대로 안 되니, 노래방 가는 것도 시들하게 되고, 그만큼 활력도 줄어들며, 늙는다는 것이 실감나게 느껴지게 되었다.
집사람은 오래전부터 기타를 쳤다. 일정 기간 레슨도 받았으나 지속적으로 하질 못했는데, 몇 년 전에 잠시 다시 레슨 받을 기회가 생겨 다녔는데, 이 역시 코로나로 인해 중지되었다.
나는 젊었을 때(30대 때) 잠시 기타에 도전해봤으나 실패했고, 십년 쯤 전에 하모니카를 사두긴 했지만 전혀 연습하지 않았고, 그 뒤로 내 자신이 악기와는 인연(적성)이 없는 것이라 여겨 전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의 손녀들(현재 중3, 중1)은 초등학생 때 부터 방과후 활동도 하고, 학교 관악부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악기들을 익혔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오게 되면서 하모니카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생들과 농담하면서 환갑이나 칠순 때 악기 연주를 해주자는 말도 있었지만, 누구도 제대로 익히지를 못했는데, 몇 년 만에 한 동기생은 색소폰을 불 수 있었고, 또 다른 동기생(이*구)은 대금을 불 수 있었다.
어느 날 동기생이 부친상을 당하여 문상을 갔는데, 이 동기생(정*식)이 하모니카를 능숙하게 분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도 문뜩 하모니카를 배워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집에 하모니카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악기에 비해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고, 강좌도 많이 한다. 하모니카에 관심이 생겼기에 유튜브를 찾아보니 하모니카도 유튜브 강좌가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 하모니카의 음의 위치도 알 수 있게 되었고, 하모니카 악보가 따로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본격적으로 하모니카에 도전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하모니카 연습에 돌입했다.
인터넷으로 하모니카악보를 한 권 샀는데, 내가 볼 만한 것이 못되고, 잘못 작성된 것 처럼 이해하기도 어렵고, 수록된 곡들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유튜브를 보고 동요부터 가곡, 쉬운 가요 등 순으로 내가 사용할 하모니카 악보를 만들고, 연습을 시작했다. 집사람은 기타를 치면서 반주를 해주니 박자를 맞추게 되어 하모니카 연습이 훨씬 잘 되었다.
2023년 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하여 오늘(2024년 10월 6일)로서 약 1년 8개월 째에 이른다. 우리가 연습하는 곡들을 녹음하여, 차를 타고 장거리 다닐 때 듣기도 하고, 한의원에 틀어놓기도 한다.
지난 4월 처가집 모임(음악회 겸) 때 연주도 했고, '기하의 꿈' 이름도 짓고, 부끄럽게 랜선 연주회도 했다.
돌아오는 토요일(10월 12일)에도 처가집에서 장모님 생신에 음악회를 겸하게 되었고, 우리도 연주하기 위해 연습 중이다.
한의원 진료를 마치고는, 지하(한의원 지하 창고에 탁구대가 하나 있다)에서 집사람과 탁구를 치고, 다시 한의원에 올라와 저녁을 먹고, 그 이후에 둘이 기타와 하모니카 연습을 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휴일에는 들꽃학습원과 수목원, 박물관, 유적지 등에 답사를 가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도 함께 보내고, 시골에 혼자 계시는 장모님을 찾아뵙기도 한다.
단조로울지 몰랐을 인생의 황혼(느지막)에 다양하고 활력을 주는 고마운 나날들이다. 탁구, 야생화 공부, 하모니카 등이 모두 내 인생에서 부분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대체하듯이 자리잡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비록 일상생활의 작은 것이지만) 내 삶에서는 새옹지마라 불릴만 하다고 생각되어, '내 인생의 새옹지마'라고 소개한다.
*** 참고로 나의 두 아들(공진, 범진) 모두 축구를 하다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았는데, 큰 아들은 전공의 과정 중에, 작은 아들은 동의 한의대 재학 중에 부상당했다. 지금은 일생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 듯 하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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