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캐나디아노와 동맹 그리고 탈미국

道雨 2025. 4. 21. 09:04

캐나디아노와 동맹 그리고 탈미국

 

 

 

미국은 캐나다를 두번 침략했다. 북아메리카 동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퀘벡에도 그 흔적이 남았다. 미국은 1775년 독립전쟁을 벌이면서 퀘벡을 침공했다. 유럽풍의 성벽은 방어 요새였다. 37년 뒤 미국이 재차 공격했지만 캐나다가 다시 막아냈다.

20세기 두 나라 간 국경이 사실상 없어지고, 공항에서는 미국인과 캐나다인 구분 없이 같은 입국 심사대를 통과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미국은 캐나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절대 깨질 것 같지 않던 두 나라의 신뢰에 크게 금이 갔다. 한때 서로 총칼을 겨눴던 200년 전 역사마저 소환된다. 트럼프는 캐나다를 향해 미국의 51번째 주라 모욕하고, 관세가 없다시피 한 캐나다산 물품에 25%의 관세를 매겼다.

대포와 총알은 아니지만, 갑작스레 높은 관세 장벽을 세우고, 캐나다 주권마저 무시하는 듯한 트럼프의 도발에, 캐나다도 맞받아쳤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미국이 더는 신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며 ‘관계가 끝났다’고 말했다. 캐나다인 넷 가운데 하나는 미국을 ‘적대국’으로 본다는 조사도 나왔다. 캐나다 카페 메뉴판에 아메리카노를 지우고 캐나디아노를 파는 곳이 늘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2차 세계대전 뒤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했다. 세계화는 기실 미국화를 뜻했다. 미국식 가치와 기준의 확산이었다. 줄긴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 총생산 4분의 1과 국방비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압도적 힘을 바탕으로 전후 자국 중심 세계 질서를 설계했던 미국이, 이제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스스로 ‘탈미국화’를 재촉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는 동맹국에 비용을 더 지불하라고 압박한다. 국방비 증액도 요구했다. 서구와 러시아의 대리전 성격을 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원조를 중단했다. 동맹국에 에누리 없이 관세전쟁을 선포하고, 정책을 변덕스럽게 바꿔가면서 미국은 신뢰를 잃었다.

 

 

미국으로부터 원심력이 커지면서, 유럽은 자주 노선 강화를 꾀한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총리는 “미국이 우리 편에 머물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도 비슷한 분위기다. 곧 독일 총리가 될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가능한 한 빨리 유럽을 강하게 해, 단계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이루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럽의 결연함은 재무장 움직임을 가속하고 있다. 대서양 동맹의 균열이 다시 봉합되더라도, 미국이 필요 없거나 존재감이 크게 준 때를 앞당길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에게 동맹이란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쉬운 거래 상대로 보일 수 있다. 그는 종종 적보다 우방이 더 나쁘다고 말한다. 심지어 동맹이 미국을 착취한다고 본다. 100년 만에 가장 높이 세워진 관세 장벽을 정당화한 논리다.

하지만 정작 동맹의 정의와 가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미국이다. 힘의 절대적 우위를 등지고 동맹마저 부당하게 대우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트럼프가 가장 가까운 우방국과 관세전쟁을 벌이면서 되레 이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피하려 한국과 일본, 대만의 거대 자본과 정부가 앞다퉈 수백조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지만, 예외는 없었다. 특히 미국의 환심을 사려 제일 먼저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한 일본의 배신감이 크다.

한국을 향해서도 25%의 높은 관세를 매겼고, 하루아침에 자유무역협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지난 몇년 동안 한국 기업이 엄청난 대미 투자를 약속했거나 이미 공장을 짓고 있지만, 방위비 추가 분담 요구와 연계한 관세 협상에 미국이 원하는 선물 보따리를 더 준비해야 할 판이다.

 

‘현금 자판기’라고 부를 만큼 한국을 만만한 상대로 보는 트럼프와 90일 관세 유예란 시간표에 쫓겨 협상해서는 안 된다. 40일 남짓 남은 한덕수 대행 체제가 섣불리 매듭을 짓기보다, 새 정부에 그 권한과 책임을 넘겨야 한다.

다음 정부는 미국의 신뢰가 크게 약해지면서 동시에 커지는 탈미국화 흐름도 읽어가면서 전략을 짜야 한다.

지금 세계정세와도 전혀 맞지 않는 윤석열 정부의 가치동맹 외교란 이름 아래 펴온 미국 일변도 정책의 재편도 필요하다.

마크롱 총리의 말을 빌리면, 미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미국이 우리 편이 아닐 때도 대비해야 한다.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적도 없지만 영원한 동맹도 없다.

 

 

 

 

류이근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