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마이너스 최악 위기, 한국 경제 대수술 기회로
미 신뢰 하락과 세계 무역 위축 사태 속 한국의 살 길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미국이 100년 전 사용했던 정책이다. 1920년대 압도적 지지를 받는 미국 공화당 정부는 친기업, 부자 감세, 관세 인상, 고립주의를 기치로 하는 정책을 편다. 현재 상·하원을 미국 공화당이 장악한 가운데 친기업, 부자 감세, 관세 인상, 미국우선주의를 펴는 트럼프 정부의 모습과 판박이처럼 보인다.
진보시대에 대한 반발이 친기업, 감세, 고율 관세 정책 불러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직면한 미국에서는 개혁의 바람이 불었고, 이를 미국 역사에서는 ‘진보시대(Progressive Era)’라 부른다. 진보시대는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 절정에 달했다. 이 시기 연방준비제도(미국 중앙은행)가 창설되고, 반독점법 강화,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이 제정됐다. 1차 세계대전 참전과 승리, 민족자결주의 선언 등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반면 피로감은 쌓이고, 전쟁 후유증과 여전한 정치 부패에 대한 실망이 겹치면서 윌슨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윌슨이 주창한 국제연맹은 상원에서 부결됐고, 윌슨 자신도 정책 홍보 순회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후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됐다.
당시 공화당 지도부는 최약체로 평가받던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 워렌 하딩을 후보로 지명했고, 하딩은 ‘정상으로의 복귀(Return to Normalcy)’를 내세워 무난히 당선되었으나 측근들의 부패 스캔들에 괴로워하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병사했다.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쿨리지, 후버로 이어지는 12년 간의 공화당 정권은 친기업, 감세, 고율 관세 정책을 펼쳤다. 이 시기 미국은 전기 보급, 라디오 발명, 자동차 대량생산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는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대공황을 악화시킨 스무트-홀리 관세법
고속 성장과 규제 완화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거품을 불러왔고, 1929년 10월 ‘검은 목요일’의 주식시장 붕괴로 대공황이 시작됐다. 농민 보호 명분으로 관세를 인상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기업들의 강력한 로비로 관세 인상 품목이 대폭 확대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통과됐다. 1000여 명의 경제학자들이 반대 성명을 냈을 정도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후버 대통령은 마지못해 법안에 서명했다.
곧 유럽 각국이 보복 관세로 맞섰고, 세계 교역량이 3분의 2까지 줄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무역이 위축되어 전 세계 경제는 극심한 피해를 겪게 되고, 이로 인해 대공황은 전무후무한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금본위제도를 폐지하고 선별적 관세로 대응한 스웨덴, 대영제국 내 관세 인하로 무역 감소를 막은 영국 등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반면, 1차 세계대전 배상금 문제로 경제가 파탄난 독일은 이중고를 겪으며 나치가 부상했고, 군비 확장으로 경제난을 타개하려다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됐다.
대공황의 교훈은 경제학자뿐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깊이 남아, 1920년대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본 따 친기업·규제완화·감세를 내세웠던 레이건 정부조차 관세 인상에는 신중했다. 미국은 강달러 정책과 서비스·자본수지 흑자로 무역적자를 상쇄하며, 소비자 후생을 크게 증대시켜 왔다.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해서도 강달러 정책이 선호됐다.
트럼프 정부 관세 정책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이런 미국의 전통과 상이하게 트럼프 정부는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내걸고, 고율 관세를 협상 지렛대로 삼아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을 낮추고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려 한다. 하지만 이 정책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글로벌 공급망이 극도로 분절화됐다. 예컨대 애플의 휴대폰은 중국에서 조립하지만, 부품은 세계 각지에서 공급된다. 관세는 이런 효율적 공급망을 교란해 세계 교역을 위축시킬 것이며 기업 투자를 저해할 것이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정책 변화는 장기적 투자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트럼프 정부가 내세운 제조업 부흥은 단기간에 달성할 수 없다. 미국은 이미 생산기반이 상당 부분 해외로 이전되어 제조업 공장이 없는 공동화 현상이 오래 지속되어 왔다. 처음부터 제조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 관세 정책이 장기적으로 유지된다는 보장 없이는 기업 투자가 쉽지 않다.
셋째, 제조업의 핵심인 기능인력이 부족하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기능인력 양성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서비스업의 높은 임금에 상응하는 제조업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는 해외 기업들의 미국 투자도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역시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 정책 불확실성 높아지면서 경기 침체 가능성
역사적으로 볼 때,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냉전 이후 동맹국과의 협력을 중시해온 미국이 유럽, 멕시코, 캐나다 등 우방국까지 적대시하는 정책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협상의 기술’로 포장하지만, 타국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장기적으로는 매우 큰 비용을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으로의 여행객이 급감하는 등, 트럼프 정부의 일방주의로 인한 경제적 부작용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수준에서 봉합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신뢰 하락과 함께, 각국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을 우려한다. 무역 분쟁의 승자는 자국 기업과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별적 대응국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 무역 자체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혁신과 생산성 중심 경제로 전환해야 할 마지막 기회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글로벌 경기 침체 신호가 있을 때마다 투자자들의 ‘현금인출기’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으로 세계 무역이 급감하면, 한국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대표적 국가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 성장률이 1%대에 머물 것이라 전망했고, 주요 투자은행들도 1% 미만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국 경제는 가계·기업·부동산 부채 등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오랜 기간 부동산 산업에 의존해온 탓에 산업 경쟁력도 약화됐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내수 침체,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저가 상품의 대량 유입 등은 한국 기업에 큰 부담이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이익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곧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우리는 계엄과 탄핵 사태라는 정치적 격랑 속에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전례 없는 충격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의 뿌리는 단지 정치적 사건에만 있지 않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은 지난 수십 년간 부채주도, 부동산주도 성장에 기대며 점차 약화돼 왔다. 이제는 과거의 성장 방식에 더 이상 기대서는 안 된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부채와 부동산 중심의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서 혁신과 생산성 중심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경제가 구조적 대수술에 나설 마지막 기회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haasim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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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금융위기, 시간 끌수록 비용 급증할 것
한국경제에 금융위기가 온다 ➁

지난 번 칼럼에서 금융위기는 ➀구조적 문제로 성장률이 하락할 때 ➁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늘리면 ➂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위험한 대출을 하다가 ➃부실채권을 감추려고 추가적인 대출을 남발하고 ➄이 과정에서 대규모로 좀비기업이 발생한다. ➅결국 한계에 달해 가계와 기업,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파산하게 되는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장기침체나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3단계까지 설명했다.
4단계 : 기업과 가계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폰지 경제
폰지 경제는 과도한 부채로 인해 정상적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경제를 말한다. 빚을 얻어서 빚을 갚아야 하는 경제이다. 한국과 같이 대출이 부동산에 편중되어 있을 때 거품이 일어난다. 방만한 부채로 커진 거품이 무한정 유지될 수는 없기 때문에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서서히 가계와 기업의 부실이 드러나게 된다.
부동산 관련 대출을 중심으로 급증한 가계대출은 소득상환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방만하게 이루어졌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2/4분기 기준으로 전체 가계대출을 받은 1978만 명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39.9%에 달했다. 소득의 40%를 빚갚는데 쓴다는 의미이다.
그 중에서 DSR이 70%가 넘는 채무자가 295만 명에 달하고, 여러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 채무자 448만 명의 평균 DSR은 61.5%에 달한다. 정상적인 소득으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는 채무자들이 많아서, 추가적으로 대출을 받지 못하면 빚을 상환할 수 없다. 과도한 대출의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채무자가 많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이익으로 대출 이자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은 이자보상배율로 판단한다. 이 비율이 1보다 낮으면 이익으로 이자도 갚을 수 없는 상태이며, 이 경우 이자를 갚기 위해 추가로 대출을 받아야 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한국 중소기업의 평균 이자보상배율은 –0.2인데, 이는 평균적으로 적자 상태임을 의미한다. 중소기업 중에서 이자보상배율이 1이 안 되는 기업의 비율은 60%에 달한다. 한계 상황에 처해 있는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코로나와 내수침체의 타격을 받은 자영업자도 버티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대략 300만 명 이상의 자영업자가 개인사업자 대출과 가계대출을 합쳐 1000조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에서 부동산 담보대출 비중이 70%가 넘었으며, 다중 채무자의 비율 역시 70%를 넘었다. 특히 심각한 것은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만기 1년 미만의 대출 비중이 70%가 넘는다. 내수침체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대출을 상환하기는 불가능하다.
5단계 : 늘어나는 좀비 자영업자와 기업
소매판매액도 줄고 있는데, 대형 인터넷 판매가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이다. 수익이 줄어든 자영업자들이 과도하게 늘어난 대출을 갚기는 어렵다. 버티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하면서, 상가의 공실률이 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부실채권을 감추기 위해 상각하거나 매각하는데, 2024년에는 은행만 7조 원에 달하는 부실채권을 정리한 바 있다.
현재 정부와 금융권에서는 금융기관의 건전성만 관심을 두고 있지만, 이미 가계와 기업, 자영업자의 부실은 크게 늘었다. 은행이 부실채권을 매각했다면, 정리를 전문으로 하는 추심기관이 사들였을 것이다. 채권 추심의 대상이 되는 가계와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자보상배율이 1이 안 되는 기업들이 많은 폰지 경제는 정상적인 경제가 아니다.
이처럼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기업과 가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서민 가계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심각한데, 정부는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6단계 : 가계와 기업,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
한국 경제는 금융위기의 6단계에 접어들었다. 금융기관의 대출은 외형적으로 건전해 보이지만, 대출 건전성의 원천인 가계와 기업 부문의 부실은 심각한 수준이다. 가계와 기업, 자영업자의 부실이 심각한데 금융기관이 건전할 수는 없다. 현재 대부분 금융기관 건전성 지표는 형식적으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실사하면 운영이 어려운 금융기관이 속출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미 과도하게 늘어난 가계와 기업 대출을 정상화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경제의 금융위기는 불가피해 보인다.
IMF사태 당시에도 재벌 계열사 간 채무보증으로 외형적으로 건전해 보이던 대출이 나중에 대부분 상환이 불가능한 대출로 판명되었다. 결국 재벌 그룹 전체가 동시에 무너지면서 금융기관들도 파산을 면치 못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2006년쯤부터 미국 전역에서 대출을 갚지못해 경매로 넘어간 주택들이 크게 늘었고,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로 이어졌다. 리만 브라더스가 넘어간 2008년에 많은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에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되었다.

30년 만에 다시 겪게 될 금융위기
금융위기가 코 앞에 다가왔으나 놀랍게도 현재 한국 경제에서 이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조정을 시도할 수 있는 주체가 없다. 부실기업을 정리하게 되면 책임이 수반되는데, 현재 그 비난을 무릅쓰고 부실기업을 정리할 공무원도 없고 정치인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수술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문제를 덮거나 회피하기에 급급한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문제가 불거지다보니, 발빠른 지자체는 토지와 관련된 규제를 풀고,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를 사겠다고 나서고 있다. DSR규제를 완화하고 이자율을 낮추라는 정치권이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문제를 풀기보다는 대부분 문제를 악화시키는 대책들이다. 금융위기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속성이 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지불할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중이다.
치욕적인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방만한 기업 대출로 온 국민이 피해를 입은 기억을 잊은 채, 한국 경제는 다시 거품에 취해 부동산 대출을 늘려왔다. 필자는 한국 경제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20여 년간 위기를 경고해 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홍종학 경제스케치haasim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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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 부동산 금융 줄여 금융위기 피해야
현실 직시하면 방법은 있고 아직 늦지 않았다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돈이 비정상적으로 부동산에만 쏠려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세 가지 비정상적인 모습이 있다. 한국은행의 보고서에서도 부동산 금융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부동산 금융의 세 가지 비정상
한국의 부동산 금융에는 세 가지 비정상적인 모습이 뚜렷하다.
첫째, 총 신용의 거의 절반(49.7%)이 부동산 금융이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이 빌린 돈(민간 신용) 총액 1932.5조 원이 부동산 부문에 들어가 있다. 이는 전체 민간 신용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한정된 금융자원이 부가가치 비중에 비해 부동산 부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정상 중의 비정상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매년 100조 원 넘게, 연평균 8.1%씩 폭발적으로 늘어온 결과다.
둘째, 기업 신용의 30%가 부동산 관련 업종 대출이다. 기업이 빌린 돈 중에서도 부동산 업종 및 건설업 대출 비중이 크게 늘어, 2024년 말 기준 32.7%에 달한다. 기업 신용의 30%가 부동산 관련 업종에 집중되는 것 역시 비정상이다. 부동산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투자된 자본 대비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가장 낮다. 돈이 이런 곳에 묶이면 우리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성장 동력이 약화된다. 인공지능 시대에 한정된 자금을 부동산에 넣고서, 경쟁력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것이다.
셋째, 지난 10여 년 간 한국은행이 돈을 풀면 생산적인 곳이 아니라 부동산으로만 몰린 것이다. 경기 둔화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고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이 돈이 생산성 높은 기술 개발이나 제조업 같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부동산 금융으로만 몰려간다.
이는 부동산 가격과 토지 가격을 밀어 올려,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콘크리트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경쟁력을 높일 수는 없다. 부동산 금융은 결국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경제성장률 낮추고 금융산업 경쟁력 약화시키는 부동산 금융
한국은행 보고서는 이 세 가지 비정상이 우리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먼저 경제 성장이 느려진다. 부동산에 돈이 쏠릴수록,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이 되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의 민간 신용은 이미 성장에 부담이 되는 임계치를 초과했다.
또한 금융안정성을 해쳐 금융 시스템이 위험해진다. 집값이나 땅값이 떨어지면 빚을 못 갚는 가계와 기업이 늘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부실해져 연쇄적으로 무너질 위험이 커진다. 특히 최근 비은행 금융기관의 부동산 관련 기업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이런 위험을 키우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더불어 후진적인 금융기관들이 쉬운 부동산 대출에만 안주하게 되어, 금융산업 자체의 경쟁력도 약해진다.
왜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되었나?
이런 비정상적인 부동산 쏠림은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 사람들의 강한 부동산 선호와 집값 상승 기대, 부동산업 사업체 증가 및 외부 자금 의존도 증가 같은 수요 측면 요인이 있다. 은행들은 이자 장사하기 쉬운 부동산 담보 대출에 집중하고, 비은행권은 위험한 부동산 관련 대출을 늘려왔다.
정책 대출 확대 등 문제 덮기에만 급급한 금융당국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정책 측면에서는 BIS 자본 규제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 위험도를 낮게 잡아,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대출을 간접적으로 장려한 측면이 있다.
금융권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된 부동산 대출 규제가 부족했던 점에서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부동산 금융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졌음에도, 한국은행과 금융위는 여전히 부동산 금융을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제대로 된 대책을 펴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정부나 금융 당국의 대책은, 이런 비정상을 근본적으로 고치기보다 당장 문제가 터지는 것만 막으려는 임시방편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지분형 주택 금융이나 CR리츠는,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임으로,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반대로 비정상적으로 커져 버린 부동산업과 건설업 비중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이렇듯 부실을 제대로 털어내지 않고 돈을 부어 생명만 연장하는 '에버그리닝'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만기를 늘리거나 정책 대출을 확대하는 편법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건 마치 중환자에게 수술 대신 산소호흡기만 달아주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미루면, 결국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해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인데도 어디에서도 아무런 경고음이 들리지 않고 있다.
여전히 집값을 올리기 위해 영끌을 조장하는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정치권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 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자신이 낸 보고서를 부정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금융위는 온갖 편법으로 부동산 금융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으니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라
우리 경제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금융 구조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해결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한국은행과 BIS 보고서 같은 곳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알려진 대책들을 용기 있게 실행하는 것이다.
먼저 부동산에 묶인 돈의 총량을 줄이고,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바꿔야 한다. 정부 재정도 국토부 예산이 혁신 부서 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비정상적인 예산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소득을 기반으로 한 대출 능력 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을 예외 없이,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도 소득 기반 규제가 차입자 회복력을 키우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 강조한다. 만기 연장 같은 규제 회피 수단들을 막고, 정책 대출 규모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거시 건전성 정책을 통해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대출을 함부로 늘리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부동산 대출의 위험 가중치를 높여 은행의 자기자본 부담을 늘리는 방식이 있다. DSR기준에 따라 위험 가중치를 선별적으로 적용하거나, 동시에 생산적인 기업 대출에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으로 인한 유동성 공급이 부동산으로 더 이상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비정상을 강화할 뿐이다.
아프다고 수술 미루고 30년을 잃어버린 일본, 그 뒤를 좇는 한국
일본 역시 버블경제 대처에 늦는 바람에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다.
비정상적인 금융을 해결하는 대책들은, 단기적으로 집값 하락이나 관련 산업의 어려움 같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실행하기 쉽지 않다. 수술의 고통이 두려워 수술을 미루는 것과 같다.
집값 하락을 막으려 문제 해결을 미루고, 심지어 청년 돕는다고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정책은, 결국 비정상적인 상황을 고착화하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더 어둡게 할 뿐이다.
일본은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는데, 그것을 생생히 목격한 한국 경제가 그 뒤를 좇고 있음은 한심한 일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릴 용기가 필요하다.
금융위기가 눈앞에 와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haasim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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