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환국 2

김만중(金萬重)

김만중(金萬重) - 1637(인조 15) 한성에서 출생, 1692(숙종 18) 남해 유배지에서 사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숙(重淑),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자이자, 김집(金集)의 손자이다. 아버지 익겸은 병자호란 당시 김상용(청음 김상헌의 형)을 따라 강화도에서 순절하여, 유복자로 태어났다. 1665년(현종 6)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부수찬이 되고, 헌납·사서 등을 거쳤다. 1679년(숙종 5)에 다시 등용되어 대제학·대사헌에 이르렀으나, 1687년(숙종 13) 경연에서 장숙의 일가를 둘러싼 언사로 인해 선천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왕자(후에 경종)의 탄생으로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몰락하게 되자, 그도..

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 조선의 주자 vs 사문난적 # 보수의 세기, 주자학의 광기(狂氣) 조선의 유학사를 말할 때, 대개 율곡 이이의 학통은 사계(沙溪) 김장생 → 신독재(愼獨齋) 김집 → 동춘당(同春堂) 송준길 → 우암(尤庵) 송시열로 전승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율곡은 ‘경장(更張)’과 ‘안민(安民)’을 정치의 최우선적 가치로 여긴 개혁적 성향의 성리학자였던 반면, 김장생 이후 김집과 송시열에 이르기까지 서인(특히 노론 계열) 세력은 ‘신분 질서’와 ‘춘추의리(春秋義理, 중화를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를 정치와 사상의 최고 가치로 삼은 보수적 성향의 주자학자였다. 율곡의 성리학 사상과 정치 철학이 집약되어 있는 『성학집요(聖學輯要)』를 살펴보면, 그는 시무(時務)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마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