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영천, 청송, 포항 답사기

道雨 2007. 6. 8. 10:52
 

              봄의 계곡과 꽃, 그리고 푸르름

                                         ---   영천, 청송, 포항답사기 (2007. 4. 22)

                                                                             오  봉  렬


                            

                                    그림 1) 만휴정 가는 길 옆 과수원의 사과꽃

                 

  비가 오려는지 잔뜩 흐린 날씨 속에 우산까지 준비하고, 지금까지 그 어떤 답사보다 이른 시각인 일요일 새벽 5시 40분쯤 집을 나섰다. 교대역 앞에서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한 때문이다. 거의 지체 없이 정시 가까운 시각에 출발한 듯 하다.

  오랜만의 답사 나들이였고 또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의 답사에는 처음 참가하는 것이라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운전의 부담없이 편안하게 봄의 발진(發陳)을 느껴보고 구경하고자 하니, 차창 밖에는 가는 길 내내 푸르러 가는 산들과 과일나무의 화려한 파스텔톤의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하였다.


  처음에 도착한 곳이 영천의 은해사 거조암이었다.  팔공산의 다른 유명한 절집들은 한번쯤 가 보았는데, 내가 듣기론 거조암은 평소 개방을 하지 않는 곳으로 알고 있어서 찾아보지 못했기에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조암 영산전은 전각으로는 드물게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몇 안되는 고려시대의 목조건물로, 외관은 경판전과 비슷하며  봉정사 극락전과 흡사하지만 규모가 상당히 크다. 마당에서 한 장의 사진으로 다 나오게 찍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영산전 내부에는 500분이 넘는 나한상을 모시고 있는데, 각 나한 마다 ‘****존자’라는 이름이 있고, 각개의 나한별로 공양을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영산전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림 2) 거조암 영산전                                     그림 3) 영산전 내부의 나한상

 

  다음에 이른 곳은 묵계서원이다. 조선초기의 청백리로 유명한 寶白堂 김계행을 모신 서원이다. 서원은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주변에 큰 하천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진입로의 운치가 또한 그만이다. 서원 관리소의 건물이 추운 지방의 폐쇄적인 모습을 특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는데 현재사람이 살고 있어서인지 비교적 상태가 좋아 보였다.

  

   

 그림 4) 묵계서원에서 내려오는 길                   그림 6) 묵계서원의 누각

 

 

  

  그림 5) 묵계서원                                          그림 7) 만휴정 가는 길가의 조팝나무 군락

  

  김계행이 말년에 조정에서 물러나 정자를 짓고 보낸 곳이 근처에 있는 만휴정인데, 주변의 경치가 정말로 좋았다. 조팝나무 흰 꽃들이 피어 있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수려한 3단의 폭포와 펑퍼짐한 암반을 옆에 두고 나무다리를 건너는 곳에 만휴정이 있다. 정말 자연 속에 잘 어우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걸린 현판에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우리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은 오로지 맑고 깨끗함 뿐이다’라는 뜻)’이라 씌어 있는데, 보백당의 호가 여기에서 나왔는 듯 싶다. 폭포 옆의 암벽에도 보백당이라 새겨져 있다.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훌륭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림 8) 만휴정                                                그림 9) 만휴정 내 현판


  다음코스로는 주왕산으로 들어가서 주왕산에 어린 전설과 함께 달기약수 맛을 보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수달래식당에서 주인장의 풍성한 인심을 담은 산채부침을 곁들여 산내음이 풋풋한 산채비빔밥을 먹으면서, 수달래가 뭐냐고 물었더니 주왕산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진달래와 철쭉의 사촌 쯤 된단다. 이곳 주왕산에서 곧 수달래축제가 열릴 것이라 하였다.


  점심을 먹고 답사팀장님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절골계곡으로 갔는데 애석하게도 산불예방으로 4월 말 까지 입산금지 되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돌아나와서 주산지로 향했다.

  주산지 가는 길 주변에 있는 과일나무 밑에 많은 민들레꽃이 피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민들레가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가 의문을 가졌는데, 과일나무 밑에 사람들이 재배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봄에 일손이 남을 때 민들레를 채취하여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민들레는 한방에서 약재로 쓰는데, 열을 내리고 해독하며 종기, 염증 등을 치료하는데 쓰인다.


  주산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영화내용 못지 않게 너무나 인상깊게 봤던 그 저수지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물 속에 잠겨 있는 왕버드나무들이 꽤 많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200여년을 물 속에 잠겨 있다 보니 일부는 죽어 썩어가는 것도 있었지만, 그 강인한 나무의 생명력에 또 다시 감탄이 아니 나올 수 없다.

 

   

 그림 10) 과수원의 민들레                            그림 11) 주산지의 물 속에 잠긴 왕버드나무


  다음으로 간 곳이 예정에 없었던 팔각산 옥계계곡과 침수정이다. 나는 강구로 가는 길이 아니라 길을 잘 못 들은 줄로 알았는데, 절골을 못 본 대신 다른 곳을 더 보게 하려는 답사팀장의 배려였다. 덕분에 팔각산 여러 봉우리를 먼 발치서 구경하고, 잠시 정신을 돌린 후에 계곡 입구 쪽에 버스를 세워 찾은 곳이 침수정이었다. 거대한 바위를 물길이 뚫어 기괴하고 감탄할 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언제고 풍부한 물은 여름철 피서에 최고일 듯하였다.

 

  

그림 12) 팔각산 옥계계곡                               그림 13) 침수정 계곡(1)

 

   

 그림 14) 침수정 계곡(2)                                  그림 15) 침수정 계곡(3)


  왔던 길을 돌아나가 강구를 지나고 포항 시내를 거쳐 호미곶에 이르는 길을 따라 바다 건너 맞은 편 땅과 파도치는 바다를 보며 가다 보니 호미곳 가까이 이르러 답사팀장은 또 버스를 세운다. 창 밖을 보니 온통 푸름 속에 일렁이는 청보리 밭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속에 사진 만 찍고 얼른 버스에 올랐는데 진짜 청보리밭이 지평선을 이룬 듯 넓고 푸르다. 이른 봄에 보기 힘든 아주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보리가 이렇게 푸르게 넘실대다니...

 

  

 그림 16) 호미곶 근처의 청보리밭                   그림 17) 호미곶의 풍차와 유채밭


  호미곶에 늦게 도착한 탓에 등대박물관은 들어가 보질 못하였지만, 거대한 풍차와 아직 꽃이 만발하지 않아 노랑보다는 푸름이 강한 유채밭 등이 우리를 맞았다. 그리고 호미곶이 해맞이로 유명하다 보니 네 곳(영일만 호미곶, 남태평양의 피지섬, 동해의 독도 일출 불씨, 변산반도 일몰 불씨 등)에서 채취한 꺼지지 않는 불을 만들어 놓은 것이 특이하게 보였다.

 

 

  

  그림 18) 영일만 오미곶 일출 불씨               그림 19) 독도와 남태평양 피지 일출 불씨

 

  호미곶을 출발하여 보리에 대하여, 또 멸치에 대하여, 또 거대한 괴산의 솥에 대하여 버스 안에서 재미있게 설명을 들으며 가는데 갑자기 버스를 돌려 돌아간다. 일행 중 한 분이 미처 타지 않은 것을 모르고 출발한 것이었다. 관광회사로 연락한 그 분의 재치로 빨리 연락을 받았기에 그래도 빨리 돌아갈 수 있었다. 본인은 굉장히 진땀을 뺐겠지만 답사 중 하나의 해프닝으로서 즐거운 추억이 되고,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것이니 손해볼 것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의 답사여행이었고 또한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만끽하는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답사를 이끌어준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관계자와 재미있게 얘기를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에 또 함께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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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0) 만휴정 앞에서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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