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삼백의 고장, 상주지역 답사기

道雨 2007. 6. 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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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백(三白)의 고장, 상주지역 답사기

                                                                                                                  오 봉 렬

 

 

 

 

 

 


  경상도(慶尙道)라는 이름이 경주(慶州)와 상주(尙州)로부터 비롯되었을 만큼, 상주는 오래된 고을이며, 또한 큰 고을이었다. ‘태조왕건’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태수로 있던 사벌주가 지금의 상주이며, 역내에는 지금도 사벌이란 지명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예로부터 삼백(쌀, 누에고치, 곶감)의 고장으로 유명하였으며, 누에고치는 누에가루와 동충하초로, 곶감은 건시와 반건시로 바뀌어 지금도 상주의 특산품으로 되어 있다. 또한 상주는 자전거박물관까지 건립되어 있을 정도로 자전거가 많기로 유명하며, 어떤 이는 자전거의 은륜(銀輪)을 합하여 사백(四白)의 고장으로 될 만하다고 하였다.

  일요일 하룻동안 될 수록 많은 것을 돌아보기 위해 토요일 저녁에 출발하여 상주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 복룡동 석불좌상 


  일요일 아침이 되었다. 시내 길에 익숙하지 않아 헤매다가 첫 예정지를 뒤로 하고 두 번째 답사지인 복룡동 석불좌상부터 찾았다. 원래 있었던 복룡동 제자리를 떠나 시내 중심가에 있는 왕산공원 내에 있는데 많이 파손되어 있고 뒤로 젖혀진 듯한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그 가치가 약간 의심스럽다. 이에 앞서 공원입구에 있는 선정비들을 받치고 있는 비받침 중에 철책 밑으로 고개를 쑥 내민 거북머리의 얼굴이 민화풍으로 조각되어 있는 것이 더 정겹게 느껴졌다.

 

 

* 철책 밖으로 나온 비석의 받침. 무척이나 해학적이고 능청스럽다는 느낌이다. 

 


  다음에 찾아간 곳이 첫 번째 답사지로 예정되었 있었던 천인석각상인데, 남산공원 안에 있었다. 공원 안에 기상대가 있고, 항일의거기념탑이 있으며, 그 뒤쪽 한적한 곳에 비각이 있고 그 안에 2구의 석각천인상이 있었다. 하나는 주악천인상이고 다른 하나는 공양하는 모습인데 돋을새김이 화려하고 선명하다. 아마도 탁본한 듯한 자국이 검게 있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원래는 아마도 석탑의 기단부나 몸돌에 새겨져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통일신라 전성기를 막 넘긴 시점의 조각일 것이라 하며, 크기는 작지만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고 조각한 솜씨가 그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1주일 뒤에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가니 그 안에 이 천인석각상을 탁본한 것이 전시되어 있어 더욱 반가웠다)


  다음에 찾은 곳이 양진당과 오작당. 이들은 모두 풍양조씨 문중의 오래된 건물들인데, 임진왜란 때 상주땅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던 조정(趙靖 : 1555 - 1636)이 지었다고 한다. 조정은 서애 류성룡의 제자이면서 학봉 김성일의 조카사위가 되어 퇴계학파의 맥을 이어받은 사람이다. 의성김씨 종가가 있는 안동의 임하에서 1년간 살다가 돌아왔으며, 처삼촌인 학봉 김성일이 양진당의 터를 잡아주었다고도 하고, 양진당 마룻도리에서 나온 상량문에 따르면 임하면 천전리 의성김씨 문중의 건물을 이곳으로 옮겨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지난 5월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안동지방 답사할 때 천전리의 의성김씨 종택을 갔다온 것이 생각나 더욱 친근한 느낌을 갖게 하였으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방치된 듯이 보여져 안타깝기도 하였다. 아마도 집안의 여름 수련회 장소로 쓰이는 듯 칠판과 책상 등이 쌓여 있었으며, 마당 한 켠에는 간이 샤워시설을 만들어 두었다. 양진당과 가까운 곳에 있는 오작당은 현재 사람이 살고 있어 안에 들어가 보지를 못하고 밖에서만 둘러보았다. 두 곳 모두 육중하게 보이는 중수기념비가 오히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다시 상주시내로 와서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길 옆에 차를 세우고 공판장에서 상주의 특산품인 반건시 곶감을 한포 사고 순대국밥집에 들어갔는데, 팥죽이 보여 오늘이 동지(冬至)임을 알았다. 상주 토박이라고 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훈훈한 인심에 집에서도 먹지 못하는 팥죽을 얻어먹고, 동지팥죽에 얽힌 벽사의 의미까지 주고 받으며, 순대국밥에 따뜻한 커피까지 마신 후, 건강하라는 고마운 덕담까지 등뒤에 들으며 다음 답사지로 발길을 옮겼다.

 

 

* 충의사 안 유물관에 있는 정기룡 장군의 유품. 

 


  화달리 3층석탑을 찾아가는 길에 충의사가 보였다. 충의사에는 임진왜란 때 ‘뭍의 이순신’으로 불리웠던 매헌 정기룡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과 그의 유품(보물로 지정되어 있다)을 전시하고 있는 유물관이 있었다. 이곳은 대체로 잘 관리되어 있고 방명록도 비치되어 있어서 호감이 갔는데, 학생들에게 향토사 교육과 함께 자기 고장에 대한 자긍심도 길러줄 수 있는 좋은 교육장으로 잘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화달리 삼층석탑. 

 

화달리 3층석탑은 충의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지방의 특징인 단층기단이지만 전형적인 신라탑의 모습을 지니고 듬직하게 서 있는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전(傳) 사벌왕릉. 일단의 가족답사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3층석탑의 바로 옆에는 사벌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이 있다. 사벌국은 3세기 후반에 신라에 복속된 진한의 소국이며, 이 일대가 사벌면에 속한다. 왕릉치고는 작은 규모인데 두 개의 석물이 뽑혀나간 흔적이 있어 가까운 충의사 관리실에 가서 신고하였는데, 근무자가 관계되는 곳에 알아본 결과 금년 6월에 도난당하여 아직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내가 가지고 간 ‘답사여행의 길잡이’ 책의 사진에는 잃어버린 석물이 나와 있다)

 

* 공갈못. 

 

 

  다음에 찾아간 곳은 이름도 특이한 공갈못이다. 수년 전 서울가는 도중 이길로 지나갈 적에 공갈못휴게소가 있어 참 특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했고, 그 후 자료를 찾아보니 공갈못이라는 오랜 역사성을 지닌(고령가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짐) 거대한 연못이 있다고 하였다. 공갈못 휴게소에서 길을 물어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는데, 그 규모의 초라함에 다시 한번 실망을 하고 말았다. 공갈치는(허풍 또는 거짓말하는) 연못이라고 해석해야 맞을 것 같다.

 

* 전(傳) 고령가야왕릉. 문의 현판에는 '太祖王陵'이라고 씌여있다. 

 

  함창에는 고령가야 왕릉과 왕비릉이 있다. 1592년에 ‘고령국태조 가야왕릉’이라고 음각된 묘비를 찾아내 알려지게 됐으며, 이후 왕명으로 묘비와 석물 등이 건립되어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다. 안내도에 보면 왕비릉이 바로 옆에 있는 듯하여 걸어서 찾아 나섰다가 찾지를 못하고 시간에 쫓겨 돌아왔다.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하다.

 

* 용화사 석불상. 

 

 

  용화사 석불상은 고령왕릉에서 가깝다. 용화사의 본전인 미륵전에 두 석불이 같이 모셔져 있다. 하나는 입상이고 하나는 좌상인데 모두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각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좌상은 비교적 위엄이 있지만 입상은 많이 훼손되고 마모되어 있다.

 

 

 

* 남장사 보광전의 철조비로자나불상과 뒷편의 목각탱. 


  다음으로 찾은 곳이 남장사인데, 아마 상주지방의 답사처 중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곳이 아닌가 싶다. 국도에서 절까지 이르는 길 옆의 창고형 건물에는 수많은 곶감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상주 지방에서도 특히 이 남장사 일대가 곶감을 많이 만든다고 한다.

  남장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로서 보기 드문 보물을 3점 지니고 있다. 보광전의 본존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고려말 고승인 나옹화상이 조성했다고 하며, 이 철불상이 땀을 흘리면 변란이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철불 뒤에는 목각 후불탱이 있는데 철불과 함께 각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남장사 관음전의 목각탱. 

 

  남장사의 부속암자인 관음전에 있는 목각탱은 예천 용문사의 목각탱과 함께 우리나라 목각탱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수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관음전 안에 참선하는 사람이 있어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는데, 그 조각의 섬세함이 놀라웠다. 목각탱은 우리나라에서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그 숫자가 적다고 하는데, 이곳 남장사에서 2점이나 보았으니 이번의 답사는 이것만 해도 큰 수확이 아닌가 싶다.

  절에 답사올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전각 안에 절을 하는 신도가 있는 경우에는 건물 안을 살펴보기가 미안하기 그지없다. 요즘같이 날씨가 추울 때는 문을 닫아 놓으니 밖에서 볼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방해를 하게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는데 나 같은 사람이 들어서면 정성이 흩어질 것만 같아 죄송스럽다.

 

* 남장사 돌장승.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책에 소개되어 있는 돌장승을 찾았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책 뒷 표지에 사진으로 나와 있을 만큼 해학적으로 생겼다.

 

* 자전거박물관. 

 

  남장사에서 내려오는 길, 국도에 이르기 얼마 전에 자전거 박물관이 있다. 자전거의 구조 및 역사, 이색자전거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월드컵 홍보시 사용했던 축구공자전거도 있었다. 자전거의 도시다운 시설이라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뒤로 하고 우산동천을 찾아 출발했다.


  우산동천은 우복 정경세와 관련된 유적 몇 곳이 모여 있는 곳이다. 우복 정경세는 상주에서 태어나 상주목사로 부임한 서애 류성룡의 문하에 들어가 영남학파 중 서애 류성룡의 학맥을 잇는 수제자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으로 활동하였고, 기호학파의 김장생과 함께 17세기 조선사회의 사상적 중심에 섰던 사람이다.

  우산동천에는 대산루라는 정사와 우산서원, 우복종택 등이 함께 모여 있는데 지금 한창 보수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하였다.

 

  상주에는 이외에도 상오리 7층석탑, 견훤산성 등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데,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고 시간이 부족하여 그만 차를 돌려야만 하였다.


  올해 여러 가지로 일이 겹쳐 답사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는데, 지난번의 선산지역 답사와 함께 좋은 의미로 다가왔다. 부산에서는 비교적 좀 먼 곳이기는 해도 앞으로 틈나는대로 자주 답사에 나설 것을 집사람과 약속하였으며, 함께 여행하고 또 미흡하지만 답사기도 같이 엮어볼까 한다.

 

 

***  위의 답사기는 2002년 가을에 상주 지역을 답사한 후에 쓴 답사기인데,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 없어 애석하기 그지 없었다.

 

  2008년 5월 11일, 다시 상주를 찾았다. 그동안 야외 공간이 멋지게 디자인 된 상주박물관이 생겼다. 남산공원 안에 있던 석각천인상은 상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있었다.

  양진당, 오작당, 우산동천 등은 답사코스에서 제외했고, 첫번째 답사 때 찾지 못했던 고령가야왕비릉을 찾아보았으며, 임란북천전적지, 정기룡신도비, 상오리7층석탑, 견훤산성 등을 추가로 답사하였다.

 

  위의 답사기에 실린 사진은 2008년 5월의 두번째 답사 때 찍은 것을 삽입한 것임을 밝혀둔다.

 

***  두번째 상주지역 답사사진은 별도의 카테고리(답사사진 카테고리 : 상주지역 답사사진)에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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