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창 끝에 발라진 꿀, 감세 (펌글)

道雨 2007. 7. 19. 12:56

 

 

              창 끝에 발라진 꿀, 감세

           달콤하지만 핥으면 혀를 다치고, 끝내는 피를 흘려 죽게 되는…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1970년대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나라에 바친 세금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계도적인 표어가 실려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세금이 내 문제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린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가는 취약계층을 더 도와야 한다”는 대답이 많지만, 이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금도 세금을 너무 많이 걷는다”는 대답 또한 많이 나온다.


△ 감세를 통한 성장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레이건 행정부는 카터 행정부 때의 경제성장률도 달성하지 못했다.

 

레이건의 감세, 미국 재정을 망치다

  주기적인 공황을 거치면서 자본주의 시장의 불안정함이 드러나고, 시장이 결코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을 확인한 역사적 경험은,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복지국가’를 발전시켜왔다. 세금은 복지국가의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인지, 요즘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병’의 폐해를 강조한다. 세금을 줄이고, 공무원을 줄이고, 하는 일이 적은 ‘작은 정부’야말로 좋은 정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모든 세금을 원칙적으로 나쁜 것이라고 본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세금을 깎자는 주장은 그럴듯한 논거로도 뒷받침된다. 지나치게 높은 세율을 낮춰 세금을 줄이면 소비와 투자가 늘고, 그 결과 경기가 좋아져서 세금이 더 걷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서 래퍼 등의 이런 주장은 1970년대 미국에서 제법 널리 퍼졌다. 그럴듯하지만, 모든 문제를 기막히게 풀어줄 것 같은 이 이론을 지지한 경제학자는 별로 없었다.

  사실 지나치게 높은 세율이 오히려 세금을 덜 걷게 만들 수 있다고 먼저 말한 사람은 복지국가를 경제이론으로 뒷받침한 존 케인스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세율 수준이 과연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람은 없다. 또 세금을 계속해서 줄여나가지 않는 한 감세의 효과는 한 번에 그치고, 정부 재정 지출을 줄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에 감세는 함부로 시행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그러나 나중 일이야 어찌되든, 세금 깎아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드물고, 그런 정책이 인기가 있다.

  1980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감세를 통한 성장’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예비선거에서 레이건에 맞섰던 조지 부시(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는 “사람을 속이는 연기만 피워올릴 뿐 알맹이가 없는 주술 경제학”이라고 이를 비판했지만, 부통령 후보가 되자 입을 닫았다. 지미 카터 집권 아래의 지지부진한 경제 상황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카터를 4년 만에 대통령 자리에서 밀어내고, ’위대한 미국을 만들겠다’는 레이건을 새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레이건이 당선된 다음날 열린 미국 증시는 미국 증권 거래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7900만 주의 거래실적을 올렸다. 다우존스 지수는 16%나 뛰어올랐다. 세금은 부자들일수록 많이 내는데, 감세를 앞세운 레이건의 정책이 누구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것인지를 월가의 투자자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레이건은 의회에 1982년부터 3년간에 걸쳐 세율을 30% 내려줄 것을 요청했고, 의회는 이를 25%로 조정해 의결했다. 세금 삭감은 정부의 재정지출 삭감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레이건은 82년 예산안을 414억달러 깎아줄 것을 요청해 관철했다. 주로 복지예산이었다. ‘레이거노믹스’로 불린 레이건 경제정책의 결과는 어땠을까? 레이건 행정부 1기 4년간의 경제성장률은 10.3%로, 카터 행정부 때의 13.6%보다 낮았다. 반면, 실업률은 평균 8.6%로 카터 행정부 시절의 6.4%보다 높아졌다. 복지예산은 삭감하면서 국방예산은 대폭 늘려, 연방정부 재정적자도 1981년 58억달러에서 1985년에는 2천억달러로 늘어났다. 역대 행정부 재정적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것이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연방 예산국장을 지내다 1985년 그만둔 데이비드 스토크만은 1986년 <정치의 승리>라는 자서전에서 “20세기 미국 재정 역사상 이보다 심한 바보짓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결국 증시의 거품도 터져

  레이건의 정책은 세금을 많이 내는 부유층에게는 축복이었으나, 실업자와 무주택자 빈민층에게는 재앙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더불어 사는 미국’으로 미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면, 레이건은 그것을 다시 거꾸로 되돌렸다. 레이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줄이면서 ‘자립’을 강조했다. 미국의 소득 분배에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빈민은 늘어났다. 반면, 최상위 1%의 소득은 1980년 8%대에서 오르기 시작해 20세기가 끝날 무렵 14%까지 뛰어올랐다. 가장 가파르게 오른 시기는 레이건 정부 2기인 1980년대 후반이었다. 1960년대 이후 20년간은 계속 줄어오던 것이었다.

  레이건 시절 월스트리트는 행복했다. 물론 영원하지는 못했다. 1987년 10월19일 이른바 ‘블랙 먼데이’에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면서 다우지수가 508포인트(22.6%)나 폭락했다. 소수 부자들에게 쏠린 돈이 투자가 아닌 투기로 이어졌다가, 그렇게 거품이 터졌다. 세금은 깎아주기는 쉽지만 다시 올리기는 어렵다. 레이건이 연방재정 적자를 급격히 늘려놓으면서 미국은 이후 복지 시스템을 키울 길이 거의 막혀버렸다.

  감세의 유혹은 창끝에 발라진 꿀처럼 달콤하다. 핥으면 혀를 다치고, 끝내는 피를 많이 흘려 죽게 된다.